기자 이미지

강현창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현창 기자 입니다.
  • 자본시장부
  • khc@ekn.kr

전체기사

SK, ‘선경실록’ 복원…故최종현 회장 경영 철학 총망라

SK그룹이 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철학과 기업 활동이 담긴 방대한 기록을 디지털로 복원했다. 이는 SK의 기업사뿐 아니라, 한국 산업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사료로 주목된다. SK는 27년간 보관해 온 13만여 건의 아날로그 기록물을 디지털로 전환해 보존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최근 완료했다고 2일 밝혔다. 해당 프로젝트는 2023년 '창사 70주년 어록집' 제작 과정에서 자료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본격화됐으며, 2년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마무리됐다. 이번에 복원된 자료는 오디오·비디오 파일 5300여 건, 문서 3500여 건, 사진 4800여 건 등 총 1만7620건에 달하며, 콘텐츠 수는 13만1647점에 이른다. 특히 최종현 회장의 육성 녹음만 3530개 테이프 분량으로, 하루 8시간씩 들어도 1년 이상이 걸릴 정도다. 그는 임직원 간담회, 전략회의, 대외 협상 등 모든 순간을 원본 그대로 녹음·보존했고, 이러한 원칙은 SK 고유의 '기록 문화'로 이어져왔다. 녹음 내용에는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 중동 외교, 이동통신사업권 반납 당시 구성원 독려 발언, 환경규제 대응 제안서 등 주요 경영 판단이 담겼다. “정치가 불안할수록 기업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그의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 경영 철학으로 회자된다. 1982년 신입사원 간담회에서는 지연·학연 타파를 강조했고, 1992년에는 “R&D도 시장을 이해해야 성공한다"며 기술 경영의 본질을 짚었다. 이러한 발언은 당시엔 생소했던 선진 경영 인식을 반영한다. 이번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주인공인 최종현 회장은 SK그룹 제2대 회장으로, 그룹의 산업적 지형과 경영철학에 결정적 변화를 이끌었다. 그는 형인 故 최종건 회장 별세 후 1973년 그룹을 승계한 뒤, 제조업 중심 구조에서 에너지·정보통신 중심의 첨단 산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대표적 사례는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이노베이션) 인수다. 그는 석유화학 부문을 그룹 주력으로 끌어올렸으며, 북예멘 유전 개발(1984년)을 성사시켜 한국 최초의 해외 유전 개발 성공이라는 이정표를 남겼다. 이어 울산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 건립(1991년)으로 정유부터 섬유까지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정보통신 분야 진출 역시 그의 선견지명을 보여준다. 1994년, 최 회장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해 그룹의 성장 동력을 다각화했으며, 이는 이후 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등으로 확장되는 ICT 사업군의 기반이 됐다. 이미 1980년대부터 미국 현지에 미주경영실을 설치해 글로벌 IT 흐름을 분석하고, 이에 맞춘 전략을 세운 바 있다. 최 회장은 또한 인재 육성에도 집중했다. 1974년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사재를 들여 만든 국내 최초의 고등교육 지원 재단으로, 현재까지 매년 해외 유학 장학생을 배출하고 있다. “국가가 좁은 만큼, 인재는 넓게 써야 한다"는 철학이 반영된 조치였다. 이러한 철학은 SK 경영관리체계 SKMS(SK Management System) 정립으로 이어졌다.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 기준과 기업문화는 그가 도입한 SKMS와 수펙스(SUPEX)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SK그룹의 핵심 운영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SK는 이번에 복원한 자료를 그룹 구성원 교육과 경영철학 전파에 활용할 계획이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의 경영 기록은 단순한 기업 기록을 넘어, 한 시대 기업인의 철학과 도전이 담긴 귀중한 자산"이라고 밝혔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美 무역장벽보고서 살펴보니…“비시장적 규제 전방위 압박”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2025 미국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가 한국 정책 전반에 대한 장기적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일 AI 기반 정책 모니터링 플랫폼 코딧(CODIT)은 해당 보고서를 분석한 이슈페이퍼를 발간하며, 정부와 국회, 산업계가 중장기적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정책실증연구원이 작성한 이번 리포트는 미국의 통상정책 수단으로 활용되는 'NTE 보고서'의 정의와 기조 변화를 주목하며, 한국 관련 주요 지적 사항과 향후 시사점을 정리했다. 특히 비시장적 정책을 포함하는 정의 확장, 방산 조달 제도의 구조적 지적, 디지털 무역 규제 확대 등 기존 보고서 대비 특징적인 변화가 부각됐다고 평가했다. 'NTE 보고서'는 미국 수출과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외국의 무역장벽을 규명·기록한 문서로, 미국 무역법 제181조에 따라 매년 3월 말 의회에 제출된다. 최근 보고서는 '공정한 경쟁을 왜곡하거나 약화시키는 정부의 법률, 규정, 정책 또는 관행'을 무역장벽으로 정의하며, '비시장적 정책 및 관행'을 새롭게 포함시켰다. 이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제도 전반을 겨냥하는 방식으로 해석된다는 것이 연구원의 분석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은 총 7페이지에 걸쳐 다양한 무역장벽 사례로 지목됐다. 전통적으로 반복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제한, 자동차 접근성, 제약·의료기기 가격정책 외에도, 방위산업 절충교역과 전자상거래/디지털 무역 규제가 새롭게 부각됐다. 방산 절충교역은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구조적 무역장벽으로 명시됐다. 한국의 제도가 계약금액 1000만달러 초과 시 외국 기업에 기술이전·공동생산 등의 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제도 자체가 외국 기업에 불리하다는 구조적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이는 향후 미국이 '비차별성' 확보를 명분으로 방산 조달 제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디지털 무역 분야 역시 문제 제기의 범위와 밀도가 확대됐다. 미국은 네트워크 사용료 부과 추진이 외국 콘텐츠 업체에 불리하고, 한국 통신망 시장의 과점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또한 특정 디지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전 규제안, 위치기반 데이터 수출 제한,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상 국외이전 제한과 과징금 기준 확대, 국가 핵심기술 보호를 이유로 한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 제한 조치 등도 공정한 시장 접근을 저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외에도 보고서는 보험 분야 정보 국외이전 제한, 일부 농산물의 시장 접근 제한, 포장·표시제도의 불명확성 등도 지속 지적했으며, 지식재산권과 투자장벽에 대한 문제 제기도 유지됐다. 연구원은 상호관세 부과가 수출품에 즉각적 피해를 주는 직접적 압박 수단이라면, NTE 보고서는 국내 정책 전반에 구조적 개입을 유도하는 장기적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공익을 위한 규제조차 비우호적 환경으로 낙인찍힐 수 있어, 제도 설계 전반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연구원은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전략 수립을 제안하며, △통상환경에 대한 구조적 이해 및 정책 인식 전환 △정부·국회의 통합 대응역량 강화 △산업계의 선제적 대응체계 구축 △지속가능한 규제 거버넌스를 위한 민관 협력체계 마련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한편, 코딧은 AI 기반 정책 모니터링 플랫폼을 통해 입법·정책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고, 기업 맞춤형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정책실증연구원은 ESG, AI, 바이오·제약, 순환경제 등 분야를 중심으로 정책 리스크에 대한 정기 세미나와 리포트 발간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티앤씨재단, 산불 현장에 긴급 식사·구호 지원

티앤씨재단(이사장 김희영)이 최근 발생한 경상북도 의성군·안동시와 경상남도 산청군 일대의 대규모 산불 피해 현장에 긴급 출동해, 이재민과 진화 인력,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식사 지원과 구호물품을 제공했다. 재단은 주불이 잡히지 않은 위험 지역까지 여러 차례 직접 방문하며, 산불 진화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 중심으로 지원을 이어갔다. 재단의 식사 지원 푸드트럭 '밥먹차'는 피해 지역 인근 대피소에 배치돼, 이재민과 진화대원 등 약 2000여 명에게 즉석 조리한 따뜻한 식사를 제공했다. 제공된 식사는 비빔밥, 갈비덮밥, 샌드위치, 핫도그, 어묵 등이며, 커피와 과일 주스 등의 음료도 함께 제공돼 지친 이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선사했다. 의성군 관계자는 “식사 퀄리티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힘든 현장에서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밥먹차'는 평소 취약계층에게 영양가 있는 식사를 제공하며, 지역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복지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난 상황 발생 시에는 긴급구호형 식사 지원 차량으로 전환돼 운영된다. 이와 함께 전달된 구호물품에는 이재민을 위한 파스, 양말, 수건, 속옷, 여벌 옷과 함께, 진화 인력을 위한 방진마스크, 접이식 에어매트 등이 포함됐다. 해당 물품은 의성, 산청, 안동 지역의 행정기관 및 구호지원센터를 통해 신속히 배포됐다. 티앤씨재단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과 현장에서 헌신하는 진화대원들께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편, 티앤씨재단은 교육 불평등 해소와 다양성 존중을 바탕으로 공감 인재를 양성하고 있으며, 재난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대응하는 긴급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재단은 매년 산불 피해 학교 지원, 홍수 복구, 디지털 취약계층 보호 등 현장 중심의 실질적인 구호 활동을 펼쳐왔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격동의 메모리 패권] ‘흔들리는 1위’ 삼성전자의 균열, 어디서 시작됐나

삼성전자가 내달 발표할 2025년 1분기 실적에 대해 시장은 '부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D램·낸드 등 전통 주력 제품의 가격 반등이 더디고,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던 HBM 고부가 메모리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주도권을 내준 상황이다. 동시에 중국의 기술 자립화와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인해 삼성의 글로벌 공급망 전략은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이에 본지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와 경쟁 지형의 변화를 짚어보고자 한다. 삼성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이 순간, 메모리 산업의 권력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편집자주 삼성전자가 다음달 초 2025년 1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시장의 예측은 명확하다.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역성장이 유력하며, 메모리 사업도 낙관하기 어렵다. 1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에 대한 실적을 예상하는 증권가 보고서는 대부분이 컨센서스 하회를 점치고 있다. “낙폭은 줄겠지만, 턴어라운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세계 1위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다. DRAM과 NAND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체 반도체 매출 기준으로도 글로벌 톱티어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이제 단순한 숫자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 수치상 1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기술·고객 신뢰·시장 내 영향력 등 '질적 리더십'은 분명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위기감은 단순한 실적 부진이나 경기 순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1등 삼성전자가 이제 대세에서 벗어나 버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시작은 2023년 이후,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장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점이 가장 큰 이유다. 그 핵심에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라는 고부가 제품군이 있다. 현재 이 분야에서 삼성은 후발주자의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 HBM3E 제품의 고객 인증이 지연되고 있으며, 실제 납품에 있어서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모두 밀리는 상황이다. 수율·발열·전력 효율 등 기술적인 완성도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된다. 2022~2024년의 삼성전자의 전략 흐름을 되짚어 보면 삼성전자의 위기가 시작된 지점이 보인다. 이 시기는 메모리 업계 전체가 혹독한 다운사이클을 겪은 시기다. 수요 급감에 대응해 삼성은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물량 공세' 전략을 고수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점유율 방어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고객 신뢰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낳았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수익성 중심의 유연한 공급 전략을 택했고, 고객사와의 설계 단계 협업도 강화하며 기술 중심 생태계로 발빠르게 이동했다. 이 차이는 HBM 시장에서 특히 극명하게 드러났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의 공동개발을 통해 사실상 플랫폼 수준에서의 최적화를 실현했고, 최근 마이크론도 HBM3E 납품을 통해 '대체 벤더' 이상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삼성은 이 과정에서 독자 설계 전략을 고수했고, 고객사와의 밀착 협업 구조가 뒤늦게 시작되었다다.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닌 '고객과의 거리'가 패권 구도에서 밀려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얘기다. 삼성의 약점은 조직 전략 차원에서도 드러난다. 바로 메모리-시스템LSI-파운드리 부문 간의 시너지가 잘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고객사는 AI 반도체를 하나의 '통합 솔루션'으로 보고 메모리-CPU-GPU까지의 연결성을 중시하고 있으나, 삼성은 부문 간 전략 연계보다는 독립 채산제 기반의 사업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 역량은 있지만, 이를 고객 맞춤형 설계로 구체화하는 역량에서는 경쟁사 대비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최근의 메모리 산업은 '관계의 경제'로 재편되고 있다. 고객은 단순히 메모리를 구매하는 존재가 아니라, 제품 설계 단계부터 벤더를 선정해 최적화 구조를 함께 만들어간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AMD와 긴밀한 개발 파트너십을 형성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대량 생산→고성능 납품'이라는 과거형 전략에 머물러 있었고, 이로 인해 신뢰의 고리를 잇는 데 실패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세계 최대의 메모리 생산 능력과 공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패키징 경쟁력 강화와 차세대 메모리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의 위기는 단지 기술이나 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기의 전략 실패'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단기간의 수익 개선이나 제품 출시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다시 중심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고객과 함께 설계하고 미래를 제안하는 회사'로의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며 “플랫폼에 최적화되고, 전력 효율과 패키징 구조까지 설계에 반영된 '맞춤형 기술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한덕수 대행, 상법 개정안에 ‘7번째 거부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행사한 7번째 거부권이자,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41번째 거부권 행사다.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한 권한대행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그의 설명과 결정의 방향은 재계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한 것으로 분석된다. 쟁점이 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해 지난달 13일 야권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의 취지는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일반 주주의 이익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대행은 “현실에서 어떤 의사결정이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인지 법률안 문언만으로는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며 “기업 경영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민형사상 책임에 대한 불확실성이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러한 우려는 국민의힘과 주요 경제단체들이 법안 통과 이후 꾸준히 제기해온 주장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그간 재계는 이같은 개정이 “행동주의 펀드에 악용될 수 있다"거나 “경영 의사결정이 위축된다"는 입장을 반복해왔고, 한 권한대행도 그 논리를 수용한 모양새다. 이어 한 대행은 “일반 주주 보호에도 역행할 수 있다"고까지 강조했지만, 정작 법안이 지향한 목표 역시 '일반 주주 보호'였다. 오히려 “실효성 있는 일반 주주 보호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달성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한 대행의 발언은, 상법이라는 기본적인 기업 지배구조의 틀을 보완하는 취지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인상도 준다. 법안 처리 과정에 대해 그는 “충분한 협의 과정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거나 공론화에 나서지는 않았다. 재계와 금융위원회 등이 자본시장법 개정을 상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제시하긴 했지만, 이는 애초 입법 논의 과정에서 병행되거나 선제적으로 준비된 정책은 아니었다.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임박하거나 이미 이루어진 상황에서, 재계의 우려를 수렴해 사후적으로 제시된 보완책이라는 점에서 진정성과 실효성에 의문이 남는다는 지적이 많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거부권 행사는 국회 입법권과 사법적 판단, 국민의 여론 등을 통해 형성돼 온 '기업 책임의 확대' 흐름을 행정부가 선제적으로 차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대한상의 등 경제8단체는 공동 성명을 통해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이 행사된 것을 다행스럽게 평가한다"며 “주주가치를 존중하는 기업 경영에 더욱 노력하는 한편, 저성장, 통상문제 등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혁신과 투자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강현창·여헌우 기자 khc@ekn.kr

롯데, 모터쇼 참가로 모빌리티 사업 본격화

롯데그룹이 모빌리티를 4대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관련 사업을 본격 확장한다. 롯데는 4일부터 13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2025 서울모빌리티쇼'에 처음으로 참가해 그룹의 모빌리티 역량을 종합적으로 선보인다고 밝혔다. 롯데 화학군(롯데케미칼,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롯데인프라셀)과 롯데이노베이트,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에서 롯데는 '엘 모빌리티 파노라마(L.Mobility Panorama)' 주제로 전시관을 구성했다. 전시관은 모빌리티 기술존, 자율주행존, 수소 밸류체인존 등 3개 구역으로 나뉘어 배터리 핵심 소재부터 자율주행, 수소 에너지까지 롯데가 그리는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롯데케미칼은 전통적인 석유화학 사업에서 모빌리티 스페셜티 소재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화재 확산을 지연할 수 있는 고강성 난연 플라스틱과 자동차 강판과 유사한 성능을 가지면서도 가벼운 고강성 경량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동박 생산에서 이차전지 종합 소재사로 도약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익산2공장에서 연산 1000톤 규모의 LFP 양극재 샘플 생산을 시작했으며, 국내에서 준양산급 규모로 생산하는 첫 기업이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전기차 충전과 자율주행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24년 10월에는 국내 최초로 B형 자율주행셔틀에 대해 시속 40km 운행 허가를 받았다. 이번 모빌리티쇼에서는 롯데이노베이트가 전시장 외부에서 자율주행셔틀 탑승 체험을 제공한다. 킨텍스 제1전시장과 제2전시장 간 왕복구간에서 운영된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친환경 물류와 자율주행 물류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을 추진하면서 기아와 '친환경 모빌리티 생태계 공동 구축을 위한 상호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지난해 10월 자율주행업체 마스오토와 자율주행 화물차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자율주행 화물차 시장 활성화, 전용 환승 거점 개발, 글로벌 시장 확장 등을 목표로 협력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그룹의 신성장 동력 중 하나인 모빌리티 사업을 종합적으로 소개하고자 처음으로 서울모빌리티쇼에 참여한다"며 “전지소재, 전기차 충전, 수소 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 기반 사업이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서울모빌리티쇼는 세계자동차공업협회(OICA)가 공인한 국내 유일의 국제 모터쇼다. '공간을 넘어, 기술을 넘어(Mobility Everywhere)'를 주제로 12개국 451개사가 참여해 다양한 모빌리티 제품과 기술을 선보인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종합] ‘김승연의 한화’에서 ‘김동관의 한화’로…전략적 승계 완성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한화 지분의 절반가량을 세 아들에게 무상 증여했다. 이로써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한화의 지배력이 총수 2세대인 김동관 부회장에게 집중되며,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는 31일 김승연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한화 보통주 1844만7949주(22.65%) 중 절반인 약 848만8970주(11.32%)를 세 아들에게 증여했다고 공시했다. 증여 대상은 장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이다. 각 아들에게 증여된 지분은 김동관 4.86%, 김동원과 김동선에게 각각 3.23%다. 증여일은 오는 4월 30일이다. 이번 증여 이후에도 김승연 회장은 지분 11.33%를 유지하며 여전히 단일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한다. 하지만 실질적 경영권은 김동관 부회장에게 넘어간 것으로 평가된다. 김 부회장은 이번 증여로 개인 지분이 8.65%까지 늘어났고, 동시에 자신과 두 동생이 공동으로 100% 보유한 비상장사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 22.16%를 보유하고 있어, 세 아들이 지배하는 지분은 총합 42.67%에 달한다. 즉, 직접 보유지분과 간접지배력을 모두 합치면 김동관을 중심으로 한 2세 체제가 ㈜한화의 과반에 가까운 지배력을 갖추게 된 셈이다.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 되는 ㈜한화는 한화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등 그룹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 지주회사다. 이에 ㈜한화의 지분 구조 변화는 곧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재편을 의미한다. 재계에서는 이번 지분 증여를 통해 한화가 전통적인 장자 중심 승계 모델을 택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동관 부회장은 이미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겸임하며 그룹 전략과 신사업 전반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룹 안팎에서 후계자로서의 정당성과 역량을 쌓아왔다. 동생들인 김동원, 김동선 역시 각각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김동관 중심의 단일 지배체제가 굳어진 모양새다. 한화그룹은 이번 증여와 관련해 “김승연 회장은 지분 증여 이후에도 한화그룹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비즈니스와 경영 자문 역할을 이어갈 예정"이라며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하고 본연의 사업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회장직은 유지하되, 실권은 자식세대로 이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번 지분 이동은 향후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일인은 김승연 회장이지만 향후 김동관 부회장으로의 변경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한편 한화 측은 이번 증여에 따라 발생할 증여세 규모는 약 2218억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이는 2025년 3월 4일부터 3월 31일까지의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된 금액이며, 실제 과세 기준은 증여일 전후 각각 2개월 간의 주가 평균으로 확정된다. 한화그룹 측은 납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으며, 향후 배당 확대나 일부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한 재원 마련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최근 한화그룹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통해 한화오션 지분을 대거 사들인 것도 승계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조3000억원가량을 투입해 한화오션 지분을 추가 확보했다. 이로써 한화오션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종속회사로 편입됐다. 김승연 회장의 지분 증여와 거의 같은 시점에 이뤄진 점,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기는 그룹 내 현금 흐름 재편 가능성까지 고려할 때, 이번 지분 확대 역시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핵심은 배당 구조에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오션의 지분율을 끌어올리면, 한화오션이 앞으로 벌어들이는 이익 가운데 더 많은 몫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배당의 형태로 가져갈 수 있게 된다. 한화오션은 최근 4년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배당을 다시 실시하리라는 기대감이 높은 종목이다. 한화오션이 배당을 실시할 경우 배당으로 나온 현금은 결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익이 되고, 다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최대주주인 ㈜한화로 유입된다. 그리고 ㈜한화는 김승연 회장과 세 아들이 지분을 나눠 들고 있는 지배회사이기 때문에, 이 현금은 다시 총수 일가에게 배당이나 기타 재무 수단을 통해 유입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결국 이번 한화오션 지분 인수는 단순한 사업 확대가 아니라, 그룹 내부에서 현금이 위로 흐를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미리 구축해둔 작업으로 해석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가지고 있던 현금을 직접 총수일가가 가져갈 수는 없지만 이 작업을 통해 향후 배당을 확대하는 씨앗으로 삼은 것이다. 실제로 세금 자체를 줄이거나 면제받는 구조는 아니지만, 필요한 돈을 보다 효율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지분 증여와 지분 인수는 서로 맞물린 하나의 승계 전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대기업이 순환출자 해소와 공정거래법에 따른 규제 회피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했지만 한화는 ㈜한화를 중심으로 그룹 지배력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고수했다"며 “이에 ㈜한화 지분 구조의 변화는 곧 그룹 지배구조 전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강현창·윤동 기자 khc@ekn.kr

[AI 新경제] AI로 대체 가능한 일자리 327만개가 위험하다

인공지능(AI)이 촉발한 일자리 지형의 변화가 본격적인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의 확산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기업의 인력 구조와 직무의 본질을 뒤흔들고 있다. 기존의 반복적이고 규칙 기반의 업무는 AI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으며, 새로운 직무가 전혀 다른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일자리 감소에 대한 불안과 새로운 기회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수립에 나서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AI가 고용의 총량 자체를 줄일 것인지, 아니면 구조를 바꾸는 '재편의 파도'에 그칠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이 국가적 대응의 시점이라는 점이다. 정부와 기업, 개인 모두가 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산업 경쟁력과 사회 구조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생성형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확산은 전 세계 노동시장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맥킨지가 지난해 7월 각국 기업 관계자 14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46%가 생성형 AI로 인해 HR 분야에서 3년 안에 3% 이상 규모의 인원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AI가 단순히 기술적 혁신을 넘어 실질적인 고용 구조 변화를 야기한다는 얘기다. 한국은행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AI로 인해 직업의 변화를 겪거나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24%의 근로자는 AI를 통해 생산성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27%는 임금 삭감이나 실직 위험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됐다. 연구에 따르면 AI 기술로 대체될 수 있는 일자리 수는 327만개에 달한다. 이는 전체 일자리의 13.1%다. 특히 전문직 분야에서 196만개의 일자리가 위험에 처해 있으며, 관리 및 금융 전문직의 99.1%가 AI로 인해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 기업들도 AI 시대에 대비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KT는 AI·ICT(AICT)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조직 개편과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24년 10월, KT는 네트워크 운영에 초점을 맞춘 두 개의 자회사 설립을 승인했으며, 이는 수천명의 직원 재배치기 잔행됐다. SK텔레콤도 지난해 조기 퇴직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이 역시 AI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AI의 도입은 새로운 직종의 탄생도 예고하고 있다. AI 및 기계학습 전문가,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분석가, 정보보안 전문가 등의 직종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 AI 윤리감시자 등 AI 시대에 특화된 새로운 직업군도 등장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에 따라 정부도 AI 시대에 대비한 다각도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 AI 전략 정책 방향'을 통해 2030년까지 AI 전문인력 20만명 양성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AI 특화 대학과의 협력을 통한 교육과정 개선, 해외 연수 기회 제공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매년 1만 명의 AI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서울소프트웨어아카데미를 통해 4000명, 대학 프로그램을 통해 6000명을 교육할 계획이다. 또한, AI 관련 석사 과정 학생 60명을 지원하는 6억원 규모의 장학금 프로그램도 올해 신설한다. 교육부는 2025년까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AI 교육을 전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AI 시대에 대비한 장기적인 인재 양성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인재 양성은 기업들에게도 시급한 현안이다. 이에 삼성은 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는 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SSAFY) 교육 대상을 마이스터고 졸업생까지 확대했다. 채용연계형 인턴제도와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자 특별채용 등을 통해 우수 기능인력 확보에 집중한다는 계힉이다. 네이버도 행정안전부와 함께 공공 AI 전문인재를 네이버가 자체 양성하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인재 양성에 노력 중이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AI를 단순히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협업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AI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한국은행의 분석처럼 AI 시대의 노동시장 변화는 도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AI 업계 관계자는 “AI의 발전은 불가피한 흐름이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며 “인간과 AI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효성, 화학 살리기에 1조 넘게 투입했지만…구조적 한계 ‘뚜렷’

효성그룹이 자회사 효성화학의 재무 위기 해소를 위해 그룹 역량을 동원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사엄성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효성그룹은 현재까지 1조원이 넘는 자산을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효성화학의 유동성 확보에 나서, 자본잠식 해소와 부채비율 개선이라는 단기 성과를 일단 거둔 상태다. 그러나 핵심 사업 부문의 수익성 회복이 지연되고, 베트남 법인의 장기 부실이 지속되면서, 이번 구조조정이 결국 '돌려막기'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부 투자나 신규 자금 유입 없이 내부 자산만을 순환시키는 방식의 한계가 구조적 리스크로 지적된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효성화학의 첫 구조조정 조치는 지난해 말 단행한 특수가스 사업부 매각이었다. 지난 2024년 12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용 고부가가스인 NF3(삼불화질소)를 생산하는 특수가스 사업부를 형제회사인 효성티앤씨에 약 9200억원 금액으로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효성화학은 2024년 말 기준 완전자본잠식에 빠졌지만, 이 딜의 결과 덕분에 자본잠식에서 벗어났다. 이어 지난 28일 효성화학은 울산 온산공단 내 탱크터미널 사업부를 지주사인 ㈜효성에 1500억원에 양도한다고 공시했다. 회사 측은 이번 양도를 통해 차입금 상환 등 재무안정성을 추가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효성그룹은 자회사의 재무구조를 회복시키기 위해 사실상 '내부 유동성'을 총동원했다는 평가다. 특수가스와 탱크터미널, 두 사업부 모두 그룹 외부가 아닌 내부 계열사를 상대로 매각됐다. 그 결과 총 1조700억원 규모의 자산이 그룹 내에서 순환되는 셈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 같은 구조조정 방식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효성화학의 핵심 위기 요인으로 꼽히는 베트남 법인의 고질적 부실이 있다. 효성화학은 2018년 베트남에 조 단위 투자를 단행해 'Hyosung Vina Chemicals'를 설립하고 폴리프로필렌(PP) 및 탈수소화(DH) 설비를 운영 중이지만, 2022년부터 현재까지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2년 3137억원, 2023년 2594억원, 2024년에도 2320억원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회사는 법인의 지속 운영을 위해 2023년 3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총 2060억원을 출자하고, 5777억원을 대여했다. 그룹 차원에서 베트남 법인에 투입된 자금은 약 78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PP 시황의 구조적 부진과 고정비 부담, 중국 저가 공세가 계속되면서 단기 흑자 전환은 어려운 상황이다. 핵심 사업의 경쟁력이 회복되지 않는 한, 효성화학의 유동성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단기적인 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개선은 가능하지만, 이익을 내지 못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결국 지주사와 계열사의 부담 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효성화학은 옵티컬 필름과 식품·산업용 필름 사업부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들 자산의 매각 대금이 2000억원 내외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구조적 사업위기라는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 채 내부 자산을 순환시키는 '돌려막기'에 머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유동성 확보 이상의 본질적 체질 개선과 사업 전략 재정립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한화세미텍, HBM 시장 진출…국내 반도체 체인 다변화

한화세미텍(옛 한화정밀기계)이 SK하이닉스와 HBM용 반도체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의 변화가 본격화 중이라는 분석이다. 그간 해당 장비는 한미반도체가 사실상 단독으로 공급해왔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신규 벤더의 시장 진입이라기보다 반도체 장비 시장 내 공급망 전략이 구조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라는 분석이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화세미텍은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TC본더 사업을 위한 준비에 나설 예정이다. 유증신주는 100% 모회사인 한화비전이 전량 인수한다. 마련하는 자금은 최근 SK하이닉스와 체결한 계약을 위해 사용한다. 한화세미텍은 SK하이닉스와 최근 HBM 패키징 공정에 사용되는 TC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엔비디아(NVIDIA) 공급체인'에 합류했다. TC본더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제조에서 핵심 장비로 꼽힌다. 이번 계약은 2023년 첫 공급 이후 두 번째 계약으로, 후발 주자로서 한화세미텍이 일정 수준의 기술 신뢰성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SK하이닉스의 TC본더는 한미반도체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와의 오랜 협력 관계 속에서 TC본더 개발과 공급을 선도하며, HBM2E부터 HBM3E까지의 장비를 안정적으로 납품해왔다. 2025년 초에도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와 108억원 규모의 HBM3E용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2024년까지 누적 공급액은 3500억원을 넘는다. 이에 한화세미텍이 계약을 확보하며 SK하이닉스의 공급 체계에 변화가 생긴 변화의 핵심은 '단일 벤더 체제'에 대한 재평가다. HBM 시장이 고속 성장하고 기술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고객사 입장에서는 공급 병목이나 리스크 발생 시 대체 가능한 벤더를 확보해두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복수 벤더 전략이 조달 안정성과 기술 유연성 확보를 위한 사실상의 전제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한미반도체의 경쟁력 약화라기보다는, 시장 구조 변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미반도체가 여전히 기술력과 신뢰성 면에서 독보적이지만, 고객사 입장에서는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즉, 고객사인 SK하이닉스가 전략적 판단 하에 조달 구조를 재설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화세미텍의 기회도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세미텍은 원래 디스플레이 장비에 주력해왔으나, 2020년대 초반부터 반도체 장비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2023년부터는 TC본더 개발에 집중 투자했고,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공급사로서의 기술 검증을 통과했다. 여기에 더해 한화비전이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본력을 뒷받침하면서, 생산능력 확대와 수주 대응 여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룹 차원의 전략적 판단과 자금력이 결합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HBM 장비를 넘어 다른 장비 카테고리로도 복수 벤더 전략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검사장비, 테스트 소터, 번인 시스템 등에서도 기술 의존도가 높은 단일 벤더 체제를 유지할 경우, 조달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도 맞닿아 있다. 인텔, 마이크론, TSMC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도 이미 핵심 장비에 대해 복수 벤더 체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국내 반도체 기업 역시 유사한 조달 전략을 본격화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 시장이 기술력 중심의 경쟁에서, 전략적 유연성과 공급망 대응력을 포괄하는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술력은 여전히 핵심적인 경쟁 요소지만, 그것만으로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고객의 전략을 읽고,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조직력과 자본력을 동원할 수 있어야 다음 단계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