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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김병헌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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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체인지] 보여주기라면 기업총수를 국회에 세우지 말자

10월 6일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에 익숙한 이름들이 다시 등장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와 관련해 야당이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 1차 명단에서는 빠졌지만 추가 협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국감철이면 되풀이되는 '기업인 줄소환' 풍경이다. 기업은 성역이 아니다. 불공정거래나 소비자 피해, 산업재해처럼 최고경영자의 판단과 책임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면 총수도 국회에 나와야 한다. 1994년 미국 의회가 7개 담배회사 CEO를 증인석에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니코틴이 중독성이 없다고 믿는다는 취지로 증언했지만 이후 소송 등을 통해 공개된 내부자료는 이런 주장과 배치됐다. 의회의 강력한 소환권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 사례다. 문제는 '누구를 부르느냐'보다 '왜 부르느냐'다.우리 국회는 기업 총수를 부르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졌다. 2025년 국감에서는 기업인 증인이 190명을 넘어 당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전년도 159명보다도 많았다. 출석하고도 질문 한 번 받지 못하고 돌아간 사례까지 있었다. 여기서 국회가 스스로에게도 질문할 필요가 있다. 기업에는 혁신을 요구하면서 정치는 얼마나 혁신했는가. 글로벌 기업은 정치가 호통치지 않아도 혁신한다.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술을 놓치면 경쟁사가 고객을 가져가고 투자 판단을 잘못하면 수십조원의 손실을 떠안는다. 기업에는 선거가 없는 대신 시장이라는 심판이 매일 열린다. 정치도 선거라는 심판을 받는다. 다만 몇 년에 한 번이다. 바로 그 시간차 때문에 정치에는 더 강한 자기절제가 필요하다. 지역 발전을 이유로 기업 총수를 국회로 부르기 전에 정치인도 돌아볼 일이다. 기업이 투자할 인재를 길렀는가. 전력과 용수, 교통과 주거를 준비했는가.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냈는가. 청년이 머물 산업 생태계를 만들었는가. 기업에 자강을 요구한다면 지역구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정치 자신은 무엇을 바꿨는지도 답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 투자를 여전히 개발연대의 '정경유착'이라는 안경으로만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오늘의 반도체 공장은 전력·용수·인재·세제·공급망은 물론 미·중 기술패권과 AI 시장의 미래까지 계산해야 하는 초장기 투자다. 물론 정부가 부당하게 기업 투자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그것이 국회의 책무다. 그러나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의혹을 사실로 전제하는 것은 다르다. 외압 여부는 유명한 총수를 증인석에 앉히는 장면이 아니라 자료와 증언, 증거로 밝혀야 한다. 정권은 5년이지만 반도체 공장은 수십 년을 간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에서 구호를 바꿀 수 있지만 기업은 잘못 지은 공장을 들고 다음 선거를 기다릴 수 없다. 이재용과 최태원도 과거의 '재벌총수'라는 한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영자들이다. 오너 경영인이면서 세계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기술·투자·공급망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자다. 잘못에는 엄격하게 책임을 묻되 국민에게 국회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물처럼 증인석에 세우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기업 총수 소환에도 최소한 세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직접성, 대체불가능성, 공익성이다. 해당 사안에 직접 관여했는가. 실무책임자가 아니라 반드시 총수가 답해야 하는가. 그리고 국민적 공익을 위해 그 답변이 꼭 필요한가. 이 기준을 충족한다면 당당하게 부르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사람을 부르는 것이 국감의 효율에도 맞다. 증인을 채택했다가 철회한다면 이유도 기록해야 한다.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고 몇 분 질문하거나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공개하자. 증인 요구권이 강한 만큼 요구한 의원의 책임도 무거워야 한다.국감장은 기업인을 혼내 국회의 힘을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다. 잘못을 찾아내고 책임을 묻고 국가의 더 나은 길을 찾는 자리다. 기업 총수를 증인석에 앉히기 전에 국회의원도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볼 일이다.국회의 권위는 높은 사람을 불러 세우는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꼭 필요한 사람을 불러 꼭 필요한 질문을 하고, 국민이 궁금해하는 진실을 밝혀낼 때 비로소 생긴다.

[김병헌의 체인지] 권력은 왜 민심을 늦게 듣는가

대통령이 18일 국민 앞에 섰다. 추석을 앞두고 어려운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으로 인사한다고 했다. 472일간 나름의 최선을 다해 왔으며 지위나 권력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일할 기회와 힘을 달라고 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 실망과 걱정에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결론은 짧았다. “언제나 국민이 옳다." 정치인의 사과는 흔하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말하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처럼 판단과 추진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온 지도자라면 그렇다. 적어도 이날 회견에서는 변명보다 성찰을 앞세우려는 진정성이 읽혔다. 진정성은 말만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국정운영으로 확인될 일이지만, 민심의 경고를 공개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세를 낮춘 것은 의미가 크다. 눈에 띈 것은 연임 문제였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연임 가능성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동시에 대통령 연임제 자체를 포함한 개헌 논의는 여야와 국민의 합의에 따라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권력의 오래된 역설이 숨어 있다. 힘이 없을 때 정치인은 민심을 찾아다닌다. 시장에서 손을 잡고 골목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권력을 잡으면 보고서가 민심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여론조사 숫자가 밥상머리의 한숨을 대신하고, 참모의 정리된 보고가 거리의 거친 목소리를 걸러낸다. 국민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권력과 국민 사이에 문이 하나씩 늘어난다. 그래서 권력은 민심보다 늘 반 박자 늦기 쉽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방향이 옳다고 속도까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개혁은 자동차 경주가 아니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함께 도착하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개혁으로 얻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손실과 두려움을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고만 부르는 순간 정책은 국민의 삶에서 멀어진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GDP가 크게 줄고 실업률이 급등하자 복지와 재정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했다. 정치적 비용이 엄청난 개혁이었다. 그런데 소수정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연금과 재정제도 같은 굵직한 개혁에 정파를 넘는 합의를 만들었다. OECD는 이런 정치적 합의가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이 쉽게 뒤집히지 않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다만 개혁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아픔과 상실감을 최소화하도록 더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했다. 이 대목이 앞으로 중요하다. 개혁을 멈추느냐 밀어붙이느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국민을 설득하면서 가느냐, 국민보다 앞서 달려가느냐의 문제다. 부동산에서는 한층 단호했다. 집값을 반드시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공급과 규제, 세제를 함께 활용하고 수도권 일극체제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손보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서울을 경제수도, 세종을 행정수도로 발전시키겠다는 방향도 그 연장선이다. 부동산은 어느 정부에나 가장 까다로운 민심의 시험대였다. 집 한 채는 통계의 숫자가 아니다. 청년에게는 결혼과 독립의 출발선이고, 중년에게는 평생 모은 자산이며, 노년에게는 노후의 버팀목이다. 집값이 흔들리면 삶의 계획도 흔들린다. 그래서 “반드시 안정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매우 무겁다. 그만큼 정책의 일관성과 결과가 뒤따라야 한다. 국민은 정부의 설명보다 자신의 전·월세 계약서와 아파트 가격표를 먼저 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다시 초심으로 귀결된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보다 시간이 흐른 뒤 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인다. 보고서는 두꺼워지고 의전은 촘촘해진다.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들은 많아지지만 역설적으로 평범한 국민의 목소리는 더 멀어질 수 있다. 권력의 비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결심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잘 듣고 있다고 믿는 순간 시작되곤 한다. 그래서 이날 “국민이 옳다"는 말보다 더 오래 기억해야 할 말은 어쩌면 '초심'일지 모른다. 연임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약속도,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다짐도 결국 그 초심 위에서 평가받을 것이다. 권력을 더 오래 갖는 것보다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와 개혁을 얼마나 빨리 끝냈느냐보다 국민이 얼마나 함께 걸었느냐가 중요하다. 민심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작은 실망이 쌓이다 어느 날 숫자로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권력이 민심을 들어야 할 때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경고등이 켜진 뒤가 아니다. 일이 잘 풀리고 박수가 클수록 작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권력은 바로 그때 귀를 더 크게 열어야 한다.

[김병헌의 체인지] 논두렁에서 시작된 나비효과

요즘 농촌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진다. 농민이 시장에서 받는 농산물값은 시원찮은데 평생 일군 농지 가격마저 힘을 잃고 있다. 논을 포함한 땅값이 내려가니 그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도 예전 같지 않다. 하나가 흔들리자 다른 하나가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다. 밭에서는 더 묘한 일이 벌어진다. 소비자는 마트에서 채소 한 봉지를 들고 “왜 이렇게 비싸졌느냐"고 하는데 정작 농민은 “남는 게 없다"고 한다. 실제 일부 채소 도매가격은 전년이나 평년보다 최대 30% 떨어졌다. 반대로 에너지와 농자재 부담은 커졌다. 많이 팔아도 손에 쥐는 돈이 적어진다. 이런 농촌에 올해 새로운 변수가 하나 들어왔다. 전국 농지 전수조사다. 정부가 들여다본 1013만 필지 가운데 284만 필지, 27%가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아직 불법으로 확정된 땅은 아니다. 현장을 확인해 실제 위반 여부를 가려야 한다. 투기 농지는 당연히 걸러내야 한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은 헌법의 원칙이다. 농지는 아파트 분양권이 아니다. 문제는 농촌의 시간이 법전처럼 반듯하게 흘러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평생 농사를 짓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농기계를 놓으면 이웃에게 논을 맡긴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도시에서 사는 자식에게 논이 넘어가기도 한다. 몸이 아파 어느 날 갑자기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 과정에서 계약서 한 장 없이 이웃끼리 믿고 논을 맡겨온 관행도 생겼다. 전수조사가 시작되자 이 오래된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도 이를 알고 서면계약과 농지대장 등재를 유도하고 계약이 끊긴 임차농에게 농지은행 농지를 우선 공급하고 있다. 농지은행 임대위탁 계약이 넉 달 만에 전년보다 78.3% 늘어난 것은 농촌이 얼마나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농지는 농민에게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도시민에게 집 한 채가 그렇듯 평생 일해 축적한 재산이다. 그런데 농지는 일반 부동산처럼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팔 수 있는 땅도 아니다. 조사에 대한 불안까지 더해져 거래가 위축된다면 농민의 자산가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농지가격 하락을 전수조사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 농지가격은 이미 2021년부터 하락해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인과관계는 통계로 따져야 한다. 그러나 농민에게 중요한 것은 통계의 화살표만이 아니다. 당장 농사를 지을 돈을 어디서 마련하느냐가 더 절박하다. 농지는 농민들의 크나큰 담보이기 때문이다. 땅값이 내려가면 은행이 인정하는 담보가치도 영향을 받는다. 다음 농사를 준비하려고 돈을 더 빌리거나 기존 대출을 연장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농사를 지어 번 돈까지 줄었다면 원리금을 갚을 힘도 약해진다. 그 충격은 논두렁에서 멈추지 않는다. 맞은편에는 지역농협이 있다. 농협 상호금융 전체 대출 연체율은 2021년 0.88%에서 지난해 말 4.03%, 2025년 8월에는 5.07%까지 상승했다. 물론 기업대출과 부동산 관련 대출 부실의 영향이 큰 만큼 이를 농가대출이나 농지 전수조사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살펴야 한다. 이미 물이 차오른 둑에 농지담보 가치 하락이라는 또 다른 물결이 닿을 가능성은 없는지 말이다. 농민의 상환능력이 떨어지면 농협은 대출 심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농협이 문턱을 높이면 다음 농사를 지을 농민의 돈줄이 더욱 좁아진다. 농민이 어려워져 농협이 움츠러들고, 농협이 움츠러들어 농민이 다시 어려워지는 악순환이다. 여기에 더 걱정스러운 지점은 농사를 지어도 남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평생 일군 땅도 제값을 받기 어렵다. 다음 농사를 위한 돈마저 구하기까지 힘들어진다면 젊은 사람에게 농촌에 남으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결국 농지 문제는 땅에서 끝나지 않는다. 농민이 떠난 논은 스스로 쌀 한 톨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람이 떠나면 생산이 줄고 그 빈자리는 수입 농산물이 채우게 된다. 어느 순간 농지 정책이 식량안보의 문제로 바뀌는 이유다. 그래서 정부의 처방도 농지조사 이후를 향해야 한다. 현장조사에서는 투기를 위해 농사짓는 시늉을 한 경우와 농촌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웃에게 농사를 맡긴 경우를 제대로 구별해야 한다. 오랫동안 실제 농사를 지어온 임차농이 하루아침에 논에서 밀려나는 일도 막아야 한다. 구두계약으로 이어져 온 임대차는 서면계약과 농지대장 등재를 통해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현실적이다. 농지은행도 단순한 임대 중개기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어 농사를 그만두려는데 땅을 팔지 못하는 농민에게는 출구가 되고, 농사를 더 짓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땅이 들어가는 입구가 돼야 한다. 금융의 방파제도 필요하다. 정상적으로 농사짓는 농민이 일시적인 농지가격 하락 때문에 대출 연장이나 영농자금 조달에서 곧바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책금융이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 농산물 가격이 생산비를 따라가지 못할 때는 올해 시행된 가격안정제와 경영자금 지원이 실제 농가소득을 떠받치도록 작동해야 한다. 농지 전수조사는 내년에도 계속된다. 투기는 잡아야 한다. 경자유전도 지켜야 한다. 정책은 연못에 돌을 던지는 일보다 그 뒤의 물결을 읽는 일에 가깝다. 돌이 떨어진 자리만 보는 것은 단속이다. 그 파문이 논두렁을 넘어 농가의 통장으로, 다시 지역농협의 금고로 번지는 과정까지 살펴야 비로소 정책이 된다. 법은 오늘의 땅을 조사한다. 좋은 정치는 그 땅에서 농사지을 사람의 내일까지 살핀다.

[김병헌의 체인지] 벌써 ‘레임덕’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이유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문이 많다. 그 문을 통과하려는 사람도 많다. 칭찬을 들고 오는 사람, 좋은 숫자를 들고 오는 사람, 대통령의 생각이 옳았다는 보고서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다.정작 대통령에게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대통령님, 그건 아닙니다." 이 말을 들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강한 대통령이다. 판단이 빠르고 결정하면 밀어붙인다. 디테일까지 직접 챙기는 '일잘러' 이미지도 두드러진다. 여당의 의석도 든든하고 뚜렷한 2인자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정책을 움직일 힘이 충분하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권력이 강할수록 대통령에게 “아닙니다"라고 말하기 어려워지 때문이다.처음에는 참모가 반대한다. 대통령이 듣지 않으면 다음에는 표현을 순화한다. 그래도 소용없으면 보고서에서 빼버린다. 결국 대통령 책상에는 좋은 뉴스만 올라온다. 현장에는 빨간불이 켜졌는데 대통령 보고서는 초록색이다. 지지율도 계속 빠지는 추세로 돌아선지 꽤 됐다. 권력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된다.최근 정치권 일부에서 벌써 '레임덕'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집권 초반의 대통령에게는 지나치게 빠른 표현이 분명한데도 그렇다. 더구나 대통령의 권력 자체가 약해진 것도 아닌데…. 레임덕을 단순히 권력이 빠져나가는 현상으로만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진짜 위험은 국민의 목소리가 대통령에게 도착하지 않는 순간부터이다. 인사도 그래서 중요하다. 첫 조각에서 이재명 정부는 외교·안보와 산업·과학 분야 등에 경험과 실무 능력을 갖춘 인사를 배치하며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진영보다 능력을 보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 초심이 필요하다. 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서 청와대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야당이 왜 공격하느냐가 아니다.왜 이 사람이어야 하는가. 장관 후보라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분야에서 무엇을 해봤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가. 대통령에게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충성은 능력을 대신할 수 없다. 유명세도 성과를 대신할 수 없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이 국가의 일을 맡길 자격증일 수도 없다. 특히 지금은 더욱 그렇다. 반도체가 경제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반도체의 봄이 대한민국 전체의 봄은 아니다. 서울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온도는 다르다. 청년은 일자리와 집값을 걱정하고 지방은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걱정한다.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좋은 숫자를 설명해 줄 사람이 아니다. 숫자 밖의 국민을 보여줄 사람이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그런데 왜 골목은 춥습니까"라고 물을 사람, 부동산 대책이 나왔을 때 “정책은 맞지만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사람,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이라도 자격이 부족하면 “이번 인사는 접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대통령도 달라져야 한다. 잘못된 정책을 고치는 것을 패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사를 철회하는 것도 굴복이 아니다.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계속 달리는 것이 더 위험하다. 자동차가 시속 50㎞로 달릴 때는 엔진이 중요하다. 200㎞로 달릴 때는 브레이크가 더 중요하다.이재명 대통령에게 성능이 뛰어난 엔진은 이미 있다. 추진력도 있고 권력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브레이크다. 정치에서 가장 좋은 브레이크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자신과 생각이 다른 유능한 사람을 쓰고, 그 사람이 반대할 자유를 주는 것. 대통령이 말해온 '통합'도 거기서 시작될 수 있다.통합은 여야 인사 몇 명을 섞어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다.나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다.권력은 대통령에게 사람을 고를 힘을 준다. 그러나 좋은 대통령은 그 힘으로 자신에게 좋은 사람만 고르지 않는다. 나라에 필요한 사람을 고른다.그리고 그들에게 말할 자리를 내준다.“대통령님, 아닙니다." 그 한마디가 대통령의 귀에 계속 들리는 정부라면 아직 건강하다. 대통령의 귀가 열려 있는 동안 권력은 쉽게 늙지 않는다.레임덕은 권력이 약해질 때가 아니라, 대통령이 쓴소리를 듣지 않기 시작할 때 문앞에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김병헌의 체인지]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진짜 원인은

최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여권에서 강성 발언이 잇따른다.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읽힌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바라보는 여권의 시선도 대체로 비슷하다. 유시민 작가를 비롯한 민주당 코어 지지층의 실망, 개혁 속도에 대한 불만, 지지층 결집 부족에서 원인을 찾는다. 틀린 진단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 보고 있다면 더 큰 변화를 놓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 밑바닥에서는 '수도권 성장연합'과 '지방 생존연합'이라는 새로운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서울에서는 집값이 너무 올라 걱정이다. 지방에서는 집이 안 팔려 걱정이다. 수도권 청년은 집을 살 수 없다고 절망하고, 지방 청년은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난다. 지방의 부모는 자식을 수도권으로 보내고, 자신이 평생 일궈온 집과 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본다. 같은 대한민국인데 경제가 정반대로 움직인다. 정부는 반도체, AI, 방산, 배터리 같은 미래산업을 이야기한다. 필요한 정책이다. 수출도 늘리고 국가 경쟁력도 높여야 한다. 문제는 성장의 지도가 지나치게 좁다는 데 있다. 첨단기업과 인재와 자본이 수도권과 몇몇 산업거점으로 몰린다.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고 방산 수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해도 어느 농촌 읍내의 식당 매출이나 농지가격까지 온기가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낙수효과'가 약해졌다. 지방 주민의 눈에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진다. 뉴스에서는 대한민국이 잘나간다. 그런데 우리 동네 학교는 문을 닫는다. 병원이 사라진다. 아파트는 미분양이고 상가는 비어간다. 농지는 팔리지 않는다. 젊은 사람은 떠난다. 여기에 농지 이용과 소유에 대한 전수조사와 규제 강화가 투기 방지라는 정당한 목적을 갖고 있더라도, 고령 농민과 토지 소유자가 이를 '내 마지막 자산까지 옥죄는 정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문제는 경제를 넘어 정치가 된다.그런데 주요 언론들마저 재대로 된 언급조차 없다. 한국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과거 미국은 세계화와 산업구조 변화에서 뒤처진 러스트벨트의 분노가 기존 정치질서를 흔들었다. 프랑스에서는 파리와 대도시 중심의 성장에서 소외됐다고 느낀 지방 주민의 불만이 노란조끼 시위와 포퓰리즘 정치의 토양이 됐다. 독일에서도 동서 지역격차와 산업전환의 불안이 기존 정당에 대한 이탈과 급진정당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은 가난해서만 분노하지 않는다. '다른 곳은 앞으로 가는데 나와 내 지역만 뒤로 밀린다'고 느낄 때 더 크게 분노한다. 한국 정치가 지금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민주당 코어층의 이탈로만 해석하면 처방은 간단해진다. 더 강하게 말하고, 지지층이 원하는 개혁을 더 빠르게 추진하고, 정치적 전선을 선명하게 만들면 된다. 그런데 원인의 상당 부분이 지역의 경제적 박탈감이라면 이런 처방은 번지수가 다르다. 필요한 것은 강성 발언이 아니라 지방 주민의 자산과 소득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지방 부동산을 인위적으로 띄우자는 주장이 아니다. 사람이 살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AI·방산 같은 국가전략산업의 공급망과 연구기관, 대학, 의료, 협력기업을 지방 거점도시와 연결해야 한다. 지방 이전 기업에는 세제 혜택 정도가 아니라 인재·교육·주거를 묶은 패키지를 제공해야 한다. 농지는 투기를 막되 농민의 재산권과 고령농의 은퇴·매각 경로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정부의 지역정책 성적표를 '얼마를 지원했는가'에서 '그 지역의 소득과 인구와 자산가치가 어떻게 변했는가'로 바꿔야 한다. 지금 서울의 청년은 집이 너무 비싸다고 화가 나 있다. 지방의 부모는 집과 땅이 너무 싸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지방의 청년은 아예 일자리가 없다고 떠난다. 세사람의 분노가 한곳에서 만나는 순간이 위험하다.그때 한국 정치의 전선은 진보와 보수가 아닐 수 있다. '수도권 성장연합' 대 '지방 생존연합'.으로 바뀐다. 그래서 대통령 지지율의 숫자만 들여다볼 때가 아니고 그 숫자 아래에서 움직이는 지도를 봐야 한다. 여권이 코어 지지층의 목소리만 크게 듣다가 지방에서 조용히 쌓이고 있는 박탈감을 놓친다면, 다음번에 확인하게 될 것은 몇 퍼센트 지지율 하락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지형 자체가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김병헌의 체인지] 김민석의 시간…국민은 성과를 본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당선 일성으로 내놓은 말은 '통합'과 '일하는 민주당'이었다. 지금 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말이다. 그래서 첫 임무는 분명하다. 당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국민은 민주당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이른바 '명청 갈등'을 둘러싸고 노정됐던 균열부터 정리해야 한다. 승리한 쪽이 자리를 독점하고 다른 목소리를 밀어내는 것은 통합이 아니다. 주요 당직과 정책 결정에 계파가 아니라 능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사람을 써야 한다. 하나의 당은 구호가 아니라 인사와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대통령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거리를 두거나 무조건 맞추는 것이 아닌 집권여당 대표다운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정부가 옳은 방향으로 갈 때는 강하게 밀어주고 민심과 어긋날 때는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 역시 여당을 정책 전달 창구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대통령실과 정부, 민주당이 충분히 토론하되 결정된 정책에서는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개헌 논쟁도 있겠지만 지금은 헌법보다 민생의 시간이 먼저이다. 김민석 지도부가 당장 책상 위에 올려야 할 것도 반도체와 AI, 부동산 안정,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와 민생 회복​이다. 특히 반도체는 시간이 곧 경쟁력이다. 서남권 반도체 산업 육성이든 기존 클러스터의 경쟁력 강화든 지역 배분의 정치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투자할 전력과 용수, 부지와 교통망을 확보하고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지방정부가 인허가를 풀며 국회가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해야 한다. AI도 마찬가지다. 'AI 강국'이라는 구호만으로 기업과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GPU와 컴퓨팅 인프라, 연구인력과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 지역 대학과 산업단지, 연구기관까지 연결한다면 침체된 지역경제를 다시 뛰게 할 성장축이 된다고 믿는다. 여기서 집권 여당의 역할은 정책의 속도를 높이는 일이다. 부처마다 말이 다르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책임을 떠넘기며 규제 하나를 푸는 데 몇 년씩 걸린다면 세계의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김민석 지도부가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은 실행 일정표다. 핵심 사업마다 책임자를 정하고 3개월, 6개월, 1년 단위의 결과로 평가받게 해야 한다. 미국 반도체 산업정책의 예를 봐도 중앙정부 지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연방정부와 주·지방정부, 기업과 대학이 인프라와 인력 양성을 함께 추진할 때 투자가 공장과 일자리로 연결된다. 우리 정치권도 '어느 지역에 무엇을 주느냐'보다 누가 더 빨리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내느냐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부동산은 더욱 절박하다. 집값은 국민의 삶이다. 필요한 곳에는 공급을 늘리고 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는 지키되 투기적 수요에는 일관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청년과 신혼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을 늘리고 재건축·재개발과 공공주택 역시 이념보다 실제 공급 효과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역경제도 대형 개발계획 몇 개로 살아나지 않는다. 지방에 기업이 가려면 사람이 함께 내려가 살 수 있어야 한다. 일자리뿐 아니라 주택과 학교, 병원, 교통과 문화시설이 갖춰져야 젊은 인재가 머문다. 서남권 반도체 구상 역시 산업·주거·교육·교통을 묶는 종합적인 지역발전 전략으로 추진해야 한다.이 역시 여당이 선도적으로 정부를 이끌고 힘을 모아야 속도가 붙는다. 야당과의 협치도 빼놓을 수 없다. 반도체·AI·전력망·지역균형발전은 한 정권의 임기만 보고 추진할 사업이 아니다. 김 대표가 먼저 야당 대표를 만나고, 야당의 합리적인 제안이라면 정부 정책에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협치는 약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을 오래 가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제 민주당은 남 탓할 여유가 없다. 대통령도 민주당이고 국회 다수당도 민주당이며 새 지도부까지 출범했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전당대회 승자의 환호가 아니다.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되고 집 걱정이 줄며, 지역에 기업이 들어오고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가 생기는 변화다. 이제 실행의 시간이다. 김민석 체제와 이재명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결국 민생의 성과로 결정될 것이다.

[김병헌의 체인지] 돈은 넘치는데 지방은 마른다…이상한 유동성의 역설

주식시장이 춤을 춘다. 하루는 환호하고 다음 날은 공포에 빠진다. 집값도 심상치 않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은 다시 들썩이는데 지방에서는 미분양 아파트가 쌓인다. 같은 대한민국인데 한쪽에서는 돈이 넘쳐 자산가격을 걱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돈이 돌지 않아 상가가 문을 닫는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한 '돈의 부족'이 아니다. 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의 문제다. 정부는 경기를 살리겠다며 재정을 풀었다. 추경을 편성하고 각종 지원책도 내놨다. 경기 하강기에 재정이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풀린 돈이 정부가 원하는 곳으로만 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해외에는 이미 값비싼 교훈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미국에서는 저금리와 과도한 신용 공급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었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 아래 대출이 급증했고, 집값이 꺾이자 부실은 금융회사로 번져 결국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후반 넘치는 유동성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리며 자산가격이 폭등했다. 뒤늦게 긴축에 들어가자 거품이 터졌고 일본 경제는 오랜 후유증을 겪었다. 지금 한국도 서울만 보면 과열이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건설경기 침체와 미분양, 자영업 부진, 인구 감소가 겹친 지역이 적지 않다. 소비가 줄어 상인이 어렵고 기업 투자가 줄어 일자리가 부족해진다. 청년이 떠나니 소비와 주택 수요가 다시 감소하는 악순환이다. 수도권의 자산시장 과열만 보고 전국에 똑같은 긴축 처방을 내리면 지방에는 독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지방경기를 살리겠다고 전국에 돈을 똑같이 풀면 그 돈이 다시 수도권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필요한 것은 '선택적 유동성'이다. 갈 곳 없는 돈이 자산시장으로 몰리는 통로는 좁히고 기업 투자와 지방경제, 주택 공급과 기술혁신으로 흐르는 통로는 넓혀야 한다. 부동산 정책부터 전국 단일 처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도권 과열지역에서는 투기성 대출과 과도한 레버리지를 관리해야 한다. 동시에 공급이 부족한 곳에는 실제 주택이 나올 수 있도록 인허가와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세금으로 가격을 누르는 데 매달리기보다 공급이라는 정공법도 병행해야 한다. 특히 지방은 방향이 달라야 한다. 악성 미분양 해소와 건설사업 정상화,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묶은 별도의 처방이 필요하다.산업과 일자리, 교육, 의료, 교통이 함께 움직여야 지방 부동산도 살아난다. 재정도 달라져야 한다. 경기부양의 중심이 현금성 지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부 돈이 한 번 소비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업 투자와 고용을 만들고 다시 소득과 세수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AI와 반도체, 에너지, 바이오 같은 미래산업뿐 아니라 지방 산업단지와 중소기업 설비투자, 관광 인프라, 노후 도심 재생에도 자금이 흘러야 한다. 돈의 양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돈의 목적지를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 금융정책도 마찬가지다. 실수요자와 정상적인 기업 대출까지 무차별적으로 조이면 경기의 숨통부터 막힌다. 빚을 내 자산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돈과 생산시설을 짓고 사람을 고용하기 위한 돈을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선택지가 '긴축이냐 부양이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집값이 오른다고 지방의 돈줄까지 막아서는 안 되고, 지방이 어렵다고 전국에 유동성을 뿌려 수도권 자산가격을 다시 밀어 올려서도 안 된다. 재정과 금융, 부동산 정책을 전국 평균이라는 숫자 하나에 맞추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지금 시장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도, 무조건적인 긴축도 아니다.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만드는 정교한 수도관이다. 자산시장으로 달려가는 돈은 조절하고 지방과 기업, 일자리와 주택 공급으로 가는 길은 터주는 것이다. 그것이 자산시장 안정과 경기 회복을 동시에 잡을 현실적인 해법이다. 정부가 시장을 이길 필요는 없다. 시장과 싸워서도 안 된다. 해야 할 일은 시장의 돈이 투기가 아니라 생산으로, 수도권 쏠림이 아니라 지역의 성장으로 흘러가도록 길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질문부터 바꿔야 한다. 어디에는 돈을 잠그고, 어디에는 돈이 돌게 할 것인가로. 한국 경제는 지금 여기에 답해야 한다.

[김병헌의 체인지] 북중미 월드컵의 BTS와 트럼프, 그리고 방시혁 유감

올림픽과 월드컵은 더 이상 스포츠 경기만이 아니다. 정상외교와 민간외교가 동시에 펼쳐지는 세계 최대의 플랫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2002년 한일월드컵의 '붉은악마'는 세계인에게 한국의 역동성과 시민문화를 보여줬다. 스포츠는 국경을 넘고, 문화는 언어를 뛰어넘는다. 그래서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는 언제나 외교와 경제, 문화가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무대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 쇼는 그런 의미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BTS였다. 수만 명의 관중과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BTS는 K-팝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로 무대를 장악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장에서 BTS를 향해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미국이 개최국이라는 상징성과 맞물려 사실상 미국의 이벤트와도 같은 분위기도 연출했다.세계 각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인, 문화예술인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문화의 힘은 외교의 언어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여기서 하나의 가정을 해본다. 만약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이 법적 제약 없이 이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실제 그런 일정이나 초청이 사전에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세계 음악 산업에서 방시혁이라는 이름이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상해 볼 만한 장면이다. 방시혁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인이 아니다. BTS를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로 성장시키며 K-컬처 산업의 판을 바꾼 인물이다. 하이브는 음악을 넘어 플랫폼과 콘텐츠, 공연산업을 연결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고, BTS는 한국 문화의 가장 강력한 소프트파워가 됐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현대경제연구원 등은 BTS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연간 경제효과를 수조 원 규모로 추산한 바 있다. 해외 관광객이 한국을 찾는 이유 가운데 K-팝은 이미 중요한 요소가 됐다.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그래서 세계적인 무대에서 BTS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 외교관으로 기능한다. 그들을 세계시장으로 이끈 제작자 역시 다른 의미의 민간외교 자산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수사나 법 집행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법 앞의 평등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죄가 있다면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최근 경찰은 방시혁 의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장기간 수사해 왔지만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반려했다. 수사가 길어질수록 국민은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하나는 혐의가 충분한데 왜 결론이 늦어지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혐의가 불충분한데 왜 이렇게 오래 끌고 있는가이다.장기화되는 수사는 피의자에게도, 사회에도 적지 않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기업은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투자자는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한다.국가적으로 중요한 글로벌 일정이나 기업 활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세계 경제가 공급망 경쟁과 관세 협상으로 급변하는 상황에서 문화산업도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이다. BTS가 미국에서 갖는 영향력은 단순한 인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미국 정치권과 경제계에서도 K-팝은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자산은 정부가 예산을 들여도 쉽게 만들 수 없는 국가 브랜드다. 이재명 대통령은 여러 차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강조해 왔다. 이념보다 국익, 형식보다 실용이라는 기조는 외교뿐 아니라 행정 전반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국가기관 역시 법 원칙을 지키면서도 국가 전체의 이익과 국제적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노파심에서 다시 강조하지만,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 반대로 불필요하게 장기화되는 수사 역시 국가적 비용을 키울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신속하고 공정하며 예측 가능한 법 집행이다. 월드컵 폐막식에서 BTS는 다시 한번 세계인의 박수를 받았다. K-컬처의 저력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스포츠를 넘어 문화와 경제, 외교가 만나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이제 이런 세계적 무대를 한국의 국익을 키우는 전략적 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 민간이 만든 문화의 힘은 정부가 대신 만들 수 없다. 그렇기에 정부는 그 힘이 세계무대에서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제도와 행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법은 흔들림 없이 집행돼야 하지만 국익을 위한 유연한 행정과 실용적 사고 역시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것이 K-컬처 강국 한국에 걸맞은 국가 운영의 모습일 것이다.

[김병헌의 체인지] 유시민의 두 번째 ‘필패론’…예언을 가장한 정치개입

유시민 작가의 '필패론'에는 아픈 전력이 있다. 1997년 그는 김대중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사실상 부정했다. 그러나 국민은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예언은 빗나갔다. 이후에도 그는 김대중 정부를 거칠게 비판했고, 훗날 이희호 여사를 찾아 과거의 비판이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그런데 29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필패'라는 단어를 꺼냈다. 이번엔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했다. 과거의 오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이 정계 개편과 외연 확장을 추진하는 듯하다며 “필연적인 실패의 길", “참혹한 실패로 귀착될 가능성"을 말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문제도 대통령의 의중과 연결했다. 비판은 자유다. 권력에 대한 쓴소리도 필요하다. 하지만 '필연'과 '참혹'은 분석의 언어가 아니다. 판결의 언어다.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않은 채 미래를 단정하면 평론은 예언으로 미끄러진다. 예언자가 틀리면 말은 사라지지만, 그 말이 흔든 정치는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정치권의 반발이 거셌다. 김남준 의원은 개혁의 적을 늘리는 독설이라고 했고, 고민정 의원은 모든 것을 선악으로 나누는 태도가 오히려 필패의 길이라고 반박했다. 김민석 전 총리는 통상적인 평론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박지원 의원은 과거의 'DJ 필패론'을 다시 꺼내며 이제는 대통령을 흔들 때가 아니라 도울 때라고 했다. 표현의 수위는 제각각이지만 질문은 하나다. 유시민은 왜 하필 지금 대통령의 실패를 선언했는가. 해석은 세 갈래다. 첫째는 코어 지지층의 서운함이다. 이 대통령이 중도와 외연을 향해 움직일수록 전통 지지층 일부는 개혁의 속도가 느려졌다고 느낄 수 있다. 유 작가의 발언은 그 불만을 대신 말한 것으로 읽힌다. “우리가 정권을 만들었는데 왜 우리 목소리는 작아지느냐"는 항의다. 둘째는 전당대회 개입설이다. 민주당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명계와 친정청래계가 개혁의 속도와 당정 관계를 놓고 미묘하게 갈리고 있다. 유 작가가 정청래 전 대표를 직접 지지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지만 그의 강경한 메시지가 선명한 개혁 노선을 내건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실제 정 전 대표는 유 작가의 발언에는 말을 아끼면서도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와 강력한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셋째는 장기적 정치 구도에 대한 자기 확신이다. 유 작가는 현 정부의 중도 확장이 지지층 이탈과 정체성 상실을 부를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경고 자체는 가능하다. 문제는 자신의 판단을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역사의 결론처럼 말한 태도다. 민주주의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권력자에게 질문을 던질수 있으나 국민을 대신해 결과를 선고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집권 1년을 갓 넘긴 시점이다. 반도체 호황이 성장의 기회를 열고 있지만, 서민들은 물가와 주거비, 일자리와 자영업 침체를 걱정한다. 정부는 수출의 온기를 내수로 옮겨야 하고, 산업 경쟁력과 민생 회복을 동시에 챙겨야 한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 제언이나 비판이다. 어느 정책이 왜 잘못됐는지, 어떤 대안이 있는지 말해야 한다. 정권 전체에 '필패'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민생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정치적 소음을 키우는 일에 가깝다. 유 작가는 민주당 당원도, 선출된 공직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발언은 당내 노선과 전당대회 구도를 흔들 만큼 큰 영향력을 갖는다. 영향력이 크면 책임도 커야 한다. 그러나 그는 정치권 밖의 자유로운 평론가처럼 말하면서 정치권 안의 실력자처럼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비평이 아니라 무임승차에 가까운 국정 개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의중을 단정하는 태도는 극히 위험하다. 검찰개혁의 세부 방식을 둘러싼 이견을 곧바로 대통령의 배신이나 실패와 연결하면 토론의 공간이 사라진다. 자신의 개혁안에 동의하면 정의이고, 속도와 방식을 달리하면 실패라는 식의 이분법은 민주주의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국민은 누군가가 대신 생각해줘야 하는 관객이 아니다. 특히 대통령은 특정 논객의 정치적 소유물도 아니다. 현재 유 작가의 속마음을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발언의 시점과 방식은 그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독선적 욕구,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이기적 욕망, 자신이 선호하는 노선을 관철하려는 고집스럼 조급함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는다. 설령 선의에서 출발했더라도 선의와 아집과 오만은 면책하지 않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저주 수준의 센 말이 아니다. 국민 선택에 대한 존중이다. 국민은 29년전 그의 필패론에도 김대중을 선택했다. 이번에도 필패론도 판단할 주체는 유작가가 아니라 국민이다. 경고는 길을 보여주지만 저주는 출구를 지운다. 유작가의 말이 진짜 경고라면 대안을 말해야 한다. 특정 후보를 돕기 위한 것이라면 평론가의 외투부터 벗어야 한다. 존재감 확인의 사적 발언이라면 먼저 용서를 구하고 석고대죄를 청해야 마땅하다. 백번양보해 설령 유작가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해도 전지적 확신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김병헌의 체인지]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이 성공하려면

집은 삶의 공간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집은 사는 곳보다 사고파는 상품으로 인식됐다. 노동으로 얻는 소득보다 부동산 상승으로 얻는 이익이 더 커지는 사회에서는 청년의 희망도, 경제의 역동성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바라보는 방향도 여기에 있다. 오래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혜택을 받는 구조보다 실제 거주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필요 이상의 주택을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는 경우에는 합당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하자는 것이다. 보유세 조정은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오른다"는 기대 심리를 낮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양도세 개편은 “팔고 싶어도 못 파는 시장"이 아니라 “필요 없는 주택은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이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방향이어야 한다. 싱가포르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와 투자 목적 매입에 더 높은 부담을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추가취득세(ABSD)와 대출 관리 정책을 함께 활용하면서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고 실거주 중심 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캐나다 밴쿠버 역시 빈집세를 도입했다.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투자 목적으로 방치하는 것을 막고 시장에 다시 공급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핵심은 단순히 세금을 더 걷는 것이 아니라 주택이 본래 기능인 거주 공간으로 활용되도록 방향을 잡은 점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목적의 정책도 시장이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세금을 높이면 반드시 집이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단순한 공식은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다. 집을 가진 사람이 “팔아야겠다"고 판단하려면 명확한 출구가 있어야 한다. 보유 부담은 높이면서 동시에 일정 기간 합리적으로 처분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문을 모두 닫아놓고 나가라고 하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특히 과거 정부 정책을 믿고 등록임대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예측 가능한 변화가 필요하다. 제도를 조정하더라도 충분한 유예기간과 단계적 적용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 정책의 가장 큰 자산은 세금이 아니라 신뢰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공급이다. 세금 정책만으로 집값을 완전히 안정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투기 수요는 줄이되 실제 살 집은 꾸준히 공급돼야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에 필요한 주택이 공급되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세금 정책도 결국 가격 압력을 막기 어렵다.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하나다. 시장에 건강한 매물이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다주택자가 필요 이상의 주택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실수요자가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진다면 성공이다. 하지만 세 부담 때문에 팔지도 않고 버티는 매물 잠김 현상이 발생하면 거래는 얼어붙고 시장 불안은 반복될 수 있다. 그래서 정부의 세제 개편은 내우 정교해야 한다. 투기 목적의 반복적인 주택 매입,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 실거주 없는 장기 보유에는 분명한 부담을 줘야 한다. 반면 평생 노력해 마련한 1주택자, 은퇴 고령층, 실제 거주자는 보호해야 한다. 진짜 정교한 세제란 많이 걷는 세제가 아니다. 시장에 정확한 신호를 보내는 세제다. “살 집은 보호한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쌓아두는 집에는 책임을 묻는다." 는 메시지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가 풀렸다 강화됐다 반복하면 시장 참여자는 정책보다 다음 선거를 기다린다.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최소한의 사회적 원칙은 정권을 넘어 유지돼야 한다. 정부는 데이터에 기반한 세제 설계, 충분한 공급 계획, 투명한 정책 운영으로 시장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 역시 부동산을 빠른 부의 증식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이 돈을 버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갈 때,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도 건강한 방향으로 다시 설 수 있다. 정부의 세금을 통한 부동산 억제책 성공 가능성은 결국 '강도'가 아니라 '균형'에서 결정될 것이다. 투기 수요를 정확히 겨냥하면서도 실수요 보호와 공급 확대가 함께 작동한다면 시장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팔 수 있는 길은 좁히고 보유 부담만 높이는 정책은 매물이 나오는 시장이 아니라 매물이 숨어버리는 시장을 만들 수 있으며, 그 순간 부동산 안정 정책은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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