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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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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정책 역대 사령관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0.10.06 16:54

에너지경제 1000호 e정책 이끈 e장관들


장관(長官) 헌법·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범위 내의 행정사무를 주관하고 집행하는 중앙의 상급행정관청의 수장을 일컫는 말이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창간하던 1989년 에너지분야를 이끌던 동력자원부 장관은 9대 이봉서 장관이었으며 이후 상공자원부,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를 거쳐 현재의 지식경제부까지 총 20대, 19명의 장관(신국환장관 산업자원부 4대, 6대 장관 역임)이 에너지분야의 수장으로 활약을 펼쳐왔다.

역대 장관들은 별세한 안광구 전 장관, 박태영 전 장관을 제외하면 모두가 장관 퇴임후 현재까지도 각계 각층에서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이봉서

9대 동력자원부장관을 역임했던 이봉서장관은 현재 한국능률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 신임 회장은 1936년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를 거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를 수석 졸업한 뒤 하버드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땄다. 미국 연방은행 조사역과 세계은행 조사역을 거쳐 1971년 국무총리 경제 비서관으로 관계에 입문한 뒤 노태우 정부 시절 동력자원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을 지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아시아개발은행(ADB) 동우회장에 뽑히기도 했다.

21년간 한국능률협회 회장을 맡은 송인상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전 재무부 장관)의 맏사위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돈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61),조석래 효성그룹 회장(65) 등이 그의 손아랫동서다.

이 회장은 한국능률협회 회장 취임식에서 “이 땅에 산업교육의 씨앗을 뿌린 능률협회의 전통을 이어 차별화된 평생교육으로 국민의 자아실현에 이바지하겠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이희일

제10대 동력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희일장관은 당시 대표적인 경제 전문가로 손꼽혔다.

1968년부터 1972년까지 경제기획원 기획국 국장을 지냈으며 그후 경제기획원 기획관리실 실장(1972-1973), 외무부 경제차관보(1976-1976), 대통령비서실 경제1수석비서관(1976-1978)을 지낸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동력자원부 장관 취임 직전에는 제31대 농수산부(현 농림부)장관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회 회장, 그리고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전국구)을 역임한 바 있다.

이 장관은 동력자원부 장관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대한주택공사 이사장(1992-1993),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 고문(1993-1995), (주)한보경제연구원 대표이사 회장(1995-1997)을 수행하기도 했다. 

진념

동력자원부 11대 장관을 지냈던 진 념 장관의 퇴임 이후 행보는 화려함 그 자체다. 1995년 5월부터 1997년 8월까지 노동부장관을 역임했으며, 기획예산위원회 위원장(1998.3.4-1999.5.23), 제1대 기획예산처 장관1999.5.24-2000.8.6), 제4대 재정경제부 장관(2000.8.17-2001.1.28), 초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2001.1.29-2002.4.13)을 지낸 바 있다.

진념 장관은 지난 2월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영남지역 최고경영자포럼’에서 ‘2010 선진 한국 새로운 10년의 시작’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향후 10년은 더욱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 기술경쟁의 심화, 세계경제 축의 파워 게임, 금융의 불안정과 위기요인의 상존, 북한의 대변혁과 그 파장, 경제활력(Dynamism)의 정체 등으로 인해 대전환을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세계 질서의 재편은 기대와 도전의 기회이기도 하다” 며 중점투자 고려대상 산업부문으로 ▲해외 금융기관 ▲신기술 부문 ▲물류산업 부문 ▲부동산·건설 부문 ▲자원·에너지 부문 ▲녹색 성장 등을 꼽았다.

김철수

김철수 장관은 1993년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통합해 처음으로 신설된 상공자원부의 1대 장관이자 상공자원부의 마지막 장관으로 기록되고 있다.

김 장관은 상공자원부 장관에 오르기전인 1990년 특허청 제7대청장,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 상공부장관(1993.2.26-1993.3.5)을 역임한 바 있다. 장관 퇴임이후에는 외무부 국제통상대사,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 세종대학교 경제무역학과 교수, 세종대학교 총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리 인터내셔널 특허법률사무소 상임고문, 무역투자연구원 이사장, 두산인프라코어(주) 사외이사,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이사, 정유사녹색기금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재윤

박재윤1994년 12월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상공자원부에서 통상산업부로 개편된 이후 1대 장관에 취임한 박재윤 장관은 1985년 서울대학교 기획실장을 비롯,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1987.5-1990.4), 한국금융학회 초대회장(1989.6-1990.4), 한국금융연구원 원장(1991.5-1992.6),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제37대 재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장관 퇴임 이후에는 부산대학교 제16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 2월 경기 수원 아주대 총장으로 선임됐다. 박 신임총장은 22년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대표적인 학구파 장관출신으로도 유명해 통상산업부 장관 재직시 ‘박교수’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후문.

안광구

통상산업부 2대 회장을 역임했던 안광구 장관은 지난 2009년 3월 별세했다. 67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 충북 괴산출신인 안 장관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특허청장, 통상산업부장관, 한국표준협회장, 영동대학교 총장,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 대한변리사회장, 한국발명진흥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별세하기 1년전인 2008년 5월 한국발명진흥회 신임회장 당시 “발명을 가로막는 전봇대를 다 뽑을 것” 이라며 발명을 최고의 투자로 여길 수 있는 토대마련에 주력했으나 숙환으로 결국 별세해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임창열

통상산업부 3대 장관인 임창열 장관은 국제적인 금융전문가로, 그리고 지난 97년 말 외환위기의 소방수로 유명세를 탔던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시절로도 유명하다.

임창열 장관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조달청장, 과학기술처 차관, 해양수산부 차관등을 역임했으며 장관 퇴임이후에는 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 민선 경기도 지사, 알앤엘바이오 회장, 경기일보 회장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지난 4월부터 성체줄기세포 전문기업인 (주)알앤엘바이오의 고문을 맡고 있다.

정해주

통상산업부의 4대 장관인 정해주 장관은 1968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정통관료로서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통상산업부 장관에 취임하기 전 제10대 특허청 청장(1995.12-1996.12), 제2대 중소기업청 청장(1996.12-1997.11)을 역임한 바 있다.

통상산업부 장관에서 퇴임한 이후 진주산업대 총장, 한국항공우주산업 대표, 한국화학시험연구원 이사장을 지냈다. 최근에는 지난 4월 사천, 진주와 하동, 함양, 거창 등의 지역에 도시가스와 천연가스 충전사업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는 지에스이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바 있다. 지에스이측은 실물경제와 행정실무에 두루 밝은 정해주 전 장관이 원활한 기업경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박태영

1998년 2월28일 통상산업부가 산업자원부로 개편한 이후 제1대 장관에 취임한 박태영 장관은 전라남도 장성군 출생으로 1960년 광주고등학교, 1966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1982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1989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고위정책결정자 과정을 수료했다. 1991년 대한교육보험을 퇴직하고, 정치생활을 시작해 1992년 전남 담양·장성에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산업자원부 장관 퇴임후에는 의료보험관리공단 이사장,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국제사회보장협회(ISSA)집행이사를 거쳐 2002년 전라남도 도지사로 선출됐다.

그러나 2004년 4월 29일 납품 비리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서울 반포대교 위에서 한강으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덕구

현재 니어재단 이사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관료사회에서 육사 8기로 통하는 행시 10회 출신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포함해 장관급만 20여명을 배출한 기수다. 평소 의리파에다가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한번 맡은 일은 목숨을 걸고 올인하는 행동파로 불리고 있다.

그는 인생 최고의 선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행을 택한 것을 꼽는다.

이때의 결정이 계기가 돼 중국 베이징(北京)대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중국 전문가’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1948년 충남 당진 출생 ▲배재중고·고려대 경영학·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교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MBA) ▲행시 10회 ▲주영국대사관 재무관 ▲재무부 경제협력국장·국제금융국장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 ▲IMF 협상 수석대표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 ▲중국 베이징대·런민대 초빙교수 ▲고려대 경영대 초빙교수

김영호

산업자원부 3대 장관에 취임한 김영호 장관은 당시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산업정책으로 ‘쌍두마차론’을 내세워 기존 산업의 정보화와 IT기술의 산업화를 양대 축으로 한국 경제가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지론을 강조했다.

당시 일부에서는 산업정책이 구시대적인 개념이라는 지적에 대해 최근의 산업정책은 시장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체질이 강화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학문적으로는 신산업정책이라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1997년 일본 경제학자들이 뽑은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세계 경제학자’로 선정된 바 있으며 산업자원부 장관 퇴임후 현재는 유한대학 총장으로 재직중이다.

신국환

2000년 8월 4대 산업자원부 장관에 취임했던 신국환 장관은 장관 퇴임이후 10개월만에 또다시 6대장관에 취임하는 진기록을 만들어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가 수출 100억달러와 1000억달러를 달성할 당시 상공부의 사무관과 국장으로 수출드라이브정책을 총괄해 실물을 아는 정통 상공관료 출신으로 손꼽힌다.

뚝심 있고 보스 기질이 강하다는 평을 듣는 신장관은 지난 93년 공업진흥청장을 끝으로 자민련 경북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 삼성물산 고문, 자민련 총재 특보 등을 거쳐 산자부 장관에 임명됐다.

15대 총선, 98년 4월 보궐선거, 16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고 장관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는 하이닉스 반도체 구조조정특위위원장을 맡아 하이닉스 매각건을 지휘했다.

장재식

장재식 장관은 제7회 고등고시 출신으로 국세청 차장, 한국주택은행 은행장, 한국조세문제연구소 소장, 서울경제신문사 논설위원, 제14대 16대 국회의원 등을 거쳐 2001년 3월 산업자원부 장관에 취임했다.

산업자원부 장관 재직시 산업의 일류화와 수출 상품의 일류화를 이루면 한국은 자연스레 세계 일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며 “세계 일류를 키우자!”는 슬로건 아래 추진되는 TNK(Totally New Korea) 프로젝트로 수출 상품의 품질과 브랜드, 디자인 경쟁력 등을 강조했다.

장관 퇴임 후 노무현대통령후보 경제특보, 국회 통일외교통산위원회 위원, 새천년민주당 21세기 국정자문위원장,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등을 맡아왔다.

윤진식

제12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 실장, 관세청 청장, 재정경제부 차관 등을 거쳐 제7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윤진식 장관은 장관 퇴임이후의 행보가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산업대 총장을 시작으로, 대통령직인수위 국가경쟁력 강화특위 부위원장,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을 거쳐 지난 7월 제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커 ‘왕의 남자’로 불리기도 하는 윤진식 전 장관은 학자 스타일의 외모와 말투와 달리 한번 맡은 일은 끝까지 놓지 않는 집념의 소유자. 97년 청와대 조세금융비서관으로 근무할 때 외환위기 가능성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직보한 일은 이를 뒷받침하는 유명한 일화로 기억되고 있다.

이희범

이희범 장관은 제12회 행정고시출신으로 상공자원부 사무관, 산업자원부 차관보, 제3대 산업자원부 차관, 제7대 서울산업대 총장을 거쳐 2003년 12월 제8대 산업자원부 장관에 취임했다.

장관에서 물러난 후에는 2006년 4월 한미경제협의회 회장을 지낸 바 있으며 2009년 STX에너지 회장에 취임했고 지난 9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함께 맡고 있다. STX에너지 회장에 취임한 이후의 평가는 기존 고위 관료 출신기업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탁상공론형이 아닌 현장형 리더”라는 평과 함께 외부 기고는 물론 신입사원 교육을 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도 모두 자신이 직접 만들어 철두철미한 업무 처리와 성실함으로 사내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정세균

2006년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에 취임했던 정세균 장관은 퇴임후 제17대 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제18대 민주당 국회의원을 거쳐 2008년부터 지난 8월까지 민주당 대표를 지내 현재 우리나라 정치의 최일선이자 중심축으로써 활동하고 있다.

장관 재직시 ‘신산업정책비전’을 제시하면서 산자부의 모든 정책의 효과 및 지원 기준을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재검토할 계획을 밝히고 해외 투자유치, R&D, 지역 균형발전 등의 성과목표 측정에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한 바 있다. 1973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장관 취임전에는 경성전문대학 겸임교수를 거쳐 제15대 새정치 국민회의 국회의원, 제16대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제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낸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김영주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재정경제원 부이사관(1996년), 기획예산처 공보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실 정책비서관, 재정경제부 차관보, 제10대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실장 등을 거친후 장관에 취임했다. 워낙 합리적이고 인간관계가 원만해 ‘경제기획원맨’인데도 불구하고 내부 신망이 두터웠다는 평가다.

어떤 사안이든 깊게 파고들어 산자부에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후문.

이윤호

지식경제부 초대 장관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1기 내각 멤버인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기업에 몸담았던 장관답게 기업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관 재직당시 이윤호 장관은 국정핵심과제인 국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 비전 제시와 추진을 위해 기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 차세대 신산업 발굴과 육성,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강화 등에 주력했다. 또 경제의 근간이며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원천인 중소기업의 창업과 생산성 향상, 나아가 경쟁력 강화를 추진했다. 현재 주 러시아 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경환

지난해 9월부터 지식경제부를 이끌고 있는 최경환 현 장관은 제22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이회창대통령후보 경제특별보좌관, 제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제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지난 연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로 대한민국을 ‘원전 수출국’의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큰 힘을 보탰으며 이후 터키와 원전사업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을 비롯해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과 잇따라 원전 협력을 가시화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한국형 원전의 위상을 높이는 등 취임 1년만에 굵직 굵직한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R&D 분야에 개혁의 칼을 들이댄 것도 과감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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