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본점. |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정치권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금융공기업들의 본점을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앞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지방 표심을 잡기 위한 목적이 크다. 전문가들은 금융공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한다고 해도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크지 않고, 오히려 우리나라 금융경쟁력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인천이 수출입 정책금융에서 소외됐다는 점을 들어 한국수출입은행을 인천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의 무역 규모가 2020년 762억 달러에서 2022년 1225억 달러로 60.7% 증가한 반면 수출입은행이 인천에 소재한 기업에 공급한 수출입금융액은 2조3551억원에서 1조8902억원으로 19.7% 급감했다는 분석이다. 홍 의원은 "인천 기업들의 경쟁력을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한 수은의 정책금융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결국 물리적 접근성이 떨어져 지역기업과 수은의 유기적인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에 이어 금융공기업의 지방 이전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은 IBK기업은행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7월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주재한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제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과 관련해 기업은행을 대구로 이전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해 6월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소기업은행 본점의 소재를 서울특별시로 한정하는 규정을 삭제하고, 대한민국이라면 어디서나 본점 소재를 둘 수 있는 내용의 중소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기업은행뿐만 아니라 수협 등도 주요 타깃으로 거론된다.
이미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초 수협중앙회의 주된 사무소를 국내 수산업의 중심지인 전라남도로 이전하는 내용의 수산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의 본점 이전은 대구뿐만 아니라 부산 등 다른 도시에서도 여러 의원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다"며 "내년 총선에서도 각 지역구 후보들이 본점 이전을 지역 공약으로 앞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은행은 전국에 지점이 많아 본사를 이전한다고 해도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금융공기업들의 지방 이전으로 인한 효과가 크지 않고 오히려 우리나라 금융업의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집적 효과가 큰데, 이미 각 금융공기업들이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함에 따라 한국의 금융 경쟁력은 후퇴됐다는 분석이다.
금융공기업들의 지방 이전은 씨티은행 등 글로벌 금융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축소하는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현재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의 본사는 부산에 있고 신용보증기금은 대구에, 국민연금은 전주, 사학연금은 전남 나주, 공무원연금공단은 제주도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렇듯 금융공기업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보니 글로벌 금융사 입장에서는 전국을 돌아야만 국내 금융공기업들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일반 제조업과 다르게 금융사들이 모여 있어야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그러나 정치권에서 표심으로 금융공기업들을 나눠먹기하면서 서울의 금융경쟁력은 점차 후퇴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세계 금융경쟁력 1위, 3위를 차지한 뉴욕, 싱가포르처럼 우리나라도 서울에 아시아 금융본부를 유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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