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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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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그릇 내놓던 때도…” 다회용 배달 용기의 ‘복권’은 가능할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2.26 06:19

다회용 배달 용기 여러 이유로 사라져
환경적으로는 4~5회만 재사용하면 성공
비용까지 고려하면 24~48회 사용해야
문앞 수거와 함께 거점 반납 방식도 필요

자장면

▲음식을 먹은 뒤 계단에 내놓은 다회용 배달 그릇. (사진=네이버 블로그)

배달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환경 현안으로 떠올랐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중국집에서 배달된 자장면 그릇을 문 앞에 내놓으면 배달원이 다시 찾아와 수거해 가는 풍경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배달 음식과 함께 제공되는 것은 대부분 일회용 용기다.


이러한 일회용품을 선호하는 생활 방식으로의 변화는 배달원과 설거지의 비용 구조, 위생 인식, 사생활에 대한 감수성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다회용 배달용기가 과연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연구원 도시환경기후변화연구단의 강신영 연구원과 전략연구단의 박세원 연구위원은 서울시에서 실제로 운영된 다회용 배달용기 시범 사업을 분석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 '청정 환경 시스템(Cleaner Environmental Systems)'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다회용 배달용기의 전 과정 환경영향과 비용 구조를 비교·분석해, '막연히 친환경적일 것'이라는 인식을 넘어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일회용

▲일회용 배달 용기. (사진=강찬수 기자)


◇서울연구원, 서울시 시범사업 결과 논문으로 발표


연구에 따르면 다회용 배달용기는 제작 단계에서 투입되는 자원과 에너지 때문에 초기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용이 일회용기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일정 횟수 이상 반복 사용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온실가스 배출 기준으로는 평균 4.6회에서 5.2회 정도만 재사용해도 일회용기보다 환경 부담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 측면에서는 수거 방식에 따라 차이가 컸는데, 문 앞 수거 방식의 경우 약 48회, 별도의 효율적인 회수 체계를 적용하면 24회 이상 재사용할 때부터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특히 수거 방식의 차이가 다회용기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고 지적한다.


과거 중국집 배달처럼 배달원이 집집마다 방문해 그릇을 회수하는 '문 앞 수거' 방식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장 편리하다. 그러나 이 방식은 인건비 부담이 크고, 수거 차량 운행으로 인한 추가적인 탄소 배출이 발생한다.


무엇보다 현대 도시 생활에서는 이 방식 자체가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음식 섭취 후 그릇을 문 앞에 내놓는 행위는 사생활이 외부에 노출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이웃 주민과의 불필요한 마주침을 피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충돌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된 생활 감각이 다회용기 문화가 사라진 중요한 배경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논문은 무인 회수기(RVM)를 활용한 '거점 반납' 방식을 제시한다.


아파트 단지 입구나 지하철역, 상업시설 인근에 반납 거점을 설치해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용기를 반납하도록 하는 모델이다. 이 방식은 한 번에 많은 용기를 회수할 수 있어 물류 효율이 높고, 문 앞에 그릇을 내놓는 데서 발생하는 위생 우려나 프라이버시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실제 분석 결과에서도 거점 반납 방식은 문 앞 수거 방식에 비해 비용 절감 효과가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범사업에서 거점 반납은 어떻게 이뤄지나


사생활 노출을 꺼리거나 반납의 번거로움을 느끼는 소비자들을 위해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다. 소비자는 배달 앱(배민, 쿠팡이츠, 요기요 등)에서 주문 시 다회용기를 선택하면 가방에 담긴 다회용기 음식을 받게 된다. 반납할 때도 가방에 넣어 반납하는데, 가방에 부착된 QR 코드만 스캔하면 된다.


무인 회수기(RVM)를 이용한 이 방식은 한꺼번에 많은 양을 수거할 수 있어 효율성이 높다.


거점 반납 시스템에서 다회용기 관리는 개별 식당이 하지는 않는다. 사용된 용기와 배달 가방은 모두 중앙 집중식 전용 세척 시설로 운송돼 전문적인 살균 과정을 거친다.


대규모 시설을 통해 하루 수만 개의 용기를 안정적으로 재공급하는 효율적 물류망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배포 전 엄격한 품질 검사를 통해 위생 상태를 최종 확인하므로, 소비자는 오염 우려 없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가방 역시 시스템의 일부로 관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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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회용 배달용기 무인회수기의 설계도와 사진. (자료=Cleaner Environmental Systems, 2025)


◇소비자 참여 유도할 인센티브 필요


다회용 배달용기가 일상 속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며, 정책적·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연구는 분명히 하고 있다.


우선 소비자의 참여를 유도할 실질적인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하다. 연구 기간 중 소액의 현금성 보상이나 포인트를 제공했을 때 거점 반납 참여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점은 제도 설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또한 무인 회수기의 접근성을 대폭 높여야 한다. 1인 가구가 밀집한 지역이나 배달 이용 빈도가 높은 상권을 중심으로 반납 거점을 촘촘히 배치해, '일부러 반납하러 가야 하는 불편함'을 최소화해야 한다.


물류 체계의 통합 역시 중요한 과제다. 기존 택배 물류망이나 친환경 차량을 활용한 회수 시스템을 구축하면 운영 비용과 환경 부담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아울러 용기 분실과 관리 비용을 줄이기 위한 보증금 제도 도입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과거 자장면 그릇 문화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였던 '회수와 설거지에 드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제도적으로 분담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결국 다회용 배달용기의 확산은 과거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달라진 도시 생활과 사회적 감수성을 반영한 새로운 시스템 구축의 문제다. 환경적으로 의미 있는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물류, 정책, 그리고 시민의 일상 경험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자장면 그릇을 내놓던 시절의 기억을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생활 방식에 맞는 '다회용 문화'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다회용 배달 용기가 돌아올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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