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경기도 평택항 부근에 수출용 차들이 세워져 있다. 미국이 일본산 자동차 관세를 27.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하면서 업계에서도 향후 협상 결과에 대한 기대가 고개를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예정돼 있던 한미간 2+2 통상협의가 돌연 취소되면서 우리나라의 대미 관세 협상에 먹구름이 끼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협상 시한(8월1일)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일본은 무려 5500억달러(약 760조원)의 대미 투자를 댓가로 15% 관세율 타협에 성공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전략과 협상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실과 외교·통상 당국은 일본이 미국과 15% 수준의 관세 합의를 조기에 매듭지은 상황에서 돌연 하루 뒤 예정됐던 '한미 2+2 통상협의'가 미국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취소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일본은 미국이 '시장 접근권'의 대가로 요구한 막대한 현금을 지불했다. '재팬 인베스트먼트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5500억 달러(약 760조 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쌀 시장 일부 개방, 방위비 증액(140억→170억 달러), 항공기 100대 구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 등을 포괄적으로 수용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본에 적용하려던 25% 보편 관세를 15%로 낮췄고, 자동차 관세도 12.5%로 인하했다. 자동차는 일본 대미 수출 흑자의 80%를 차지하는 품목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협상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특히 협상을 총괄하던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이날 빈손으로 귀국하면서 분위기가 경색됐다. 게다가 한미 2+2 협의가 일방적으로 연기되면서 “미국이 우리나라가 제시한 안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채 협상이 사실상 결렬됐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측은 한국에 총 4000억 달러(약 550조 원) 규모의 투자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려 지난해 한국 정부 예산의 80%를 넘는 수준이다. 여기에 △쌀·소고기 시장 개방 △방위비 인상 △LNG 프로젝트 참여 등 일본과 유사한 조건도 포함돼 있다.
그동안 실용 외교를 내세우면서 '지연 전략'을 취했던 이 대통령과 통상 당국의 협상 전략, 외교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일본이 먼저 협상 타결에 성해 시간을 벌면서 유리한 조건을 따내겠다는 시도가 사실상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일본과 한국에 번호를 매겨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더 이상 각국이 협상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강한 신호였다"며 “그간 민주당 정부가 '지연 전략'을 택했지만 일본이 선타결하면서 이 전략은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미국이 급할 게 없고 협상의 고삐를 한국이 미국에 넘겨준 상황"이라며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협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1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국익형 수입 확대 전략'을 최종 협상 카드로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원하는 '현금'을 에너지·반도체·항공기·무기 등 전략 물자 수입 확대를 통해 던져 주고 기업과 국가 투자 펀드를 통한 전략적인 투자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실익을 챙기자는 전략이다. 그러나 농산물 특히 쌀·소고기 수입 확대 요구에는 부정적이다. 다만 일본보다 적게 주고도 협상을 타결짓기 위해서는 투자·산업 전략에서 더 파격적인 카드를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산 원유나 셰일가스는 우리가 어차피 수입해야 하는 품목"이라며 “중동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산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