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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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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脫탄소] “비현실적인 야망”…세계 곳곳서 그린수소 ‘탈출 러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7.25 18:15

“2030년 EU에 구축될 전해조 12GW에 불과”…목표치인 40GW 한참 밑돌아

글로벌 기업들 그린수소 프로젝트 축소…“구매자가 없다”

EU 각국도 열기 시들…네덜란드는 그린수소에서 원전으로 전환

높은 비용이 그린수소의 한계…“최소 10년 동안 경쟁력 없다”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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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저장 시설(사진=AP/연합)

'궁극의 청정에너지'로 주목받았던 그린수소 개발 프로젝트들이 세계 곳곳에서 무산되면서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급 폭염과 폭우 등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은 갈수록 커지지만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그린수소를 통한 탄소중립은 결국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2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너지 시장 분석기관 웨스트우드 글로벌 에너지의 준 사사무라 수소 매니저는 2030년 유럽연합(EU)의 그린수소 생산시설(전해조) 규모가 약 12GW(기가와트)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현 상황으로 EU가 2030년까지 설정한 그린수소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컨설팅업체 우드맥킨지도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저탄소 수소(그린수소와 블루수소) 생산능력은 연 600만톤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요구되는 연 4억5000만톤보다 훨씬 낮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해서 만든 그린수소는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없어 탈탄소를 위한 필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았다. EU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그린수소를 핵심으로 하는 'EU 수소 전략'을 지난 2020년 채택하고 2030년까지 40GW의 전해조를 설치해 1000만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그린수소 개발 프로젝트가 잇따라 중단된거나 축소되자 EU가 제시한 목표치의 절반도 달성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웨스트우드 글로벌 에너지에 따르면 기업들은 작년 말까지 유럽 그린수소 프로젝트의 5분의 1 이상을 중단하거나 지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 에너지기업 이베르드롤라의 경우 추가 구매자를 확보할 때까지 20MW(메가와트)의 전해조 증설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포르투갈 국영전력회사인 EDP의 미겔 스틸웰 다안드라데 최고경영자(CEO)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수소에 대한 보조금이 4억유로(약 6500억원)에 육박하지만 수요가 없으며 우리는 수소를 살 사람이 필요하다"며 “그린수소는 부풀려진 기대감에서 환멸의 대상으로 바꼈다"고 말했다.


EDP의 수소 책임자인 아나 퀠하스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지만 구매자 부족으로 인해 진전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이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아시아, 호주 및 기타 지역에서 그린수소에 대해 지출을 줄이거나 프로젝트를 보류한 수많은 기업들 중 일부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국가차원에서도 그린수소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경우 6억유로(약 9700억원) 이상의 자금을 그린수소에서 바이오메탄으로 옮겼고 프랑스는 2030년까지 구축할 전해조 용량 목표치를 지난 4월에 30% 넘게 낮췄다. 포르투갈 역시 전해조 목표치를 45% 줄였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지난해 네덜란드는 그린수소 프로젝트와 배터리 분야를 대폭 삭감하고 신규 원자력발전소 2기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기후 펀드를 조정하기도 했다.


호주에서는 정부의 80억 호주달러(약 7조2600억원) 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그린수소 프로젝트를 줄이거나 중단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에너지컨설팅업체 라이스태드에너지에 따르면 향후 5년간 발표될 1000억 호주달러(약 90조원) 규모의 그린수소 프로젝트 중 99%는 구상 혹은 승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추정됐다.


컨설팅기업 오로라에너지리서치의 엠마 우드워드는 “2020~2021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린수소가 전기화에 실패한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관측했었지만 이제는 상업적으로 실현이 가능한 다른 대안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아마도 초기에 예상했던 만큼의 그린수소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그린수소가 외면받는 배경엔 비용이 턱없이 높기 때문이다. 발전용 그린수소의 비용은 천연가스와 그레이수소에 비해 각각 3배,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에서 천연가스를 원료로 활용해 부품을 생산하는 한 업체는 천연가스는 메가와트시(MWh)당 30~35유로에 구할 수 있지만 그린수소 가격은 MWh당 150유로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업계에서는 전해조 비용이 하락하고 인프라를 포함한 전반적인 공급망이 확장할 경우 그린수소 비용이 10~15년 뒤 30~40% 하락할 수 있지만 그 전까진 경쟁력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두고 로이터는 “그린수소 산업이 직면한 이같은 어려움은 야망이 비현실적이란 점을 드러낸다"고 꼬집었다.


한편, 그린수소 전망에 먹구름이 짙어지자 관련주들의 주가 또한 날개 없는 추락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 미국의 대표적 수소 기업인 플러그파워 주가는 2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1.77달러를 마감했다. 플러그파워 주가는 올들어 24% 가량 하락한 데다 2021년 1월 기록했던 최고점(66.87달러)과 비교하면 96% 폭락했다. 이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나스닥 종합지수가 최고치를 경신한 것과 대조적이다.


글로벌 전해조 공급업체인 덴마크의 그린 하이드로젠 시스템즈 주가는 지난달 파산신청을 하면서 덴마크 증시에서 거래가 중단됐다. 이 주가는 2021년 6월 27.37크로네로 고점을 찍은 후 지난달 0.41크로네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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