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이재명 정부 들어 논의 중인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으면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간에 기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6.27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두 차례나 칭찬을 받으면서 존재감을 입증한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보호처 분리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금소처를 분리할 경우 대형 소비자피해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한국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시건전성 정책의 중요성이 커진 점을 들어 한은도 거시건전성정책의 수립 및 집행에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계부채 관리 등 정책이 실효성 있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 이 대통령 “집단토론" 주문...금융위, 소상공인 간담회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이날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소상공인, 정부, 유관기관, 전문가 등과 함께 모여 소상공인의 금융지원 관련 목소리를 청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권 사무처장을 향해 “빚을 진 소상공인들을 모아 당신들이 금융당국이라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집단토론을 해달라"는 당부에 따른 것이다. 이번 행사는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소상공인의 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자 금융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됐다.
권 사무처장은 “(이 대통령께서) 각별히 말씀을 주시고, 요즘 금융위원회가 숙제를 많이 받고 있다"며 “소상공인에 대해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과 정책적 주문을 해주셔서 상당히 좀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이달 3일 이재명 대통령에 조직개편안 초안을 보고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금융위의 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감독업무는 금감원과 통합해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비자 보호 기능을 강화하고자 금감원에 소속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분리하는 방안도 유력시된다. 다만 세부 내용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이 대통령이 6.27 대책을 놓고 권대영 사무처장과 김병환 금융위원장을 잇따라 칭찬하면서 금융위의 역할이 부각되는 모습이다.
◇ 금감원, 국회 물밑작업...한은 “거시건전성 역할 강화" 제언
금융위의 분위기는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금융감독 체계 관련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대조된다. 금감원은 국회 정무위 소속 여당 의원실을 방문해 '금융감독 기능·권한 재배치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은 분리하고, 금융감독 기능은 금감원 중심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금감원은 노조를 중심으로 금소처를 별도 분리하는 방안에 대해 적극 반대하고 있다. 금소처를 분리할 경우 건전성 업무 및 정보와의 단절로 직원들의 전문성이 저하될 수 있고, 대형 금융사고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금감원 노조는 “과거 부실 저축은행 사태 등 대규모 소비자피해 사례들의 근본 원인은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업무가 한 기관 내에서 혼재됐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며 “따라서 금융정책 기능과 금융감독 기능을 분리하는 등 근본적인 감독체계 개편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한국은행은 이창용 총재를 필두로 중앙은행의 거시건전성 역할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이 금융감독 체계 개편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불균형 누적, 비은행 비중 확대, 은행과 비은행 간 연계성 강화 등으로 거시건전성 정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특히 한은은 가계부채 대책으로 대표되는 금융안정정책이 안정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고,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처럼 한은도 거시건전성정책 수립·집행 관련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거시건전성정책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한국은행도 통화정책을 수행할 때 성장, 물가 등 거시경제 안정과 함께 금융안정을 고려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그런데 한국은행은 금리 외에 금융 불안 등에 사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없어 가계부채 안정을 위해서라면 기준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당장 한국은행에 권한이나 역할을 확대해달라는 취지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며 “정부가 거시건전성정책을 수립, 집행할 때 한은의 목소리도 담겨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조직개편안 발표 시기와 내용을 주시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정책은 금융당국, 감독기관이 현 정부의 정책과 맞춰 나아가는 과정으로, (세 기관의 혼란은) 이미 예견됐던 부분"며 “(기재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가 끝나면 금융위의 역할과 권한을 어떻게 재배치할지 결정되지 않겠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