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2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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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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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무탄소에너지 대전환, 관건은 국민 설득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2.04 07:57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를 무탄소에너지(CFE) 대전환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말 두바이에서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제안했던 '무탄소에너지 이니셔티브'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COP28 합의문에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수소·CCUS(탄소 포집·저장·활용)를 무탄소에너지로 명시했고, 영국을 비롯한 5개국의 공식적인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은 중요한 성과다.


CFE 대전환의 핵심은 원전 생태계 복원이다. 그런 사실을 애써 감출 이유가 없다. 원전을 배제한 탄소중립은 우리에게 실현 불가능한 꿈이기 때문이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명백한 현실이다. 2021년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COP26에서 우리 정부가 무책임하게 내놓았던 '2050 탄소중립'의 약속을 지키려면 다른 대안이 없다는 뜻이다.


RE100(재생에너지 100%)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경계해야 한다. RE100은 '더 클라이밋 그룹'(TCG)이라는 영국의 비영리 민간단체가 2014년에 대기업을 상대로 시작한 캠페인일 뿐이다. 연간 100GWh의 전력을 소비하는 기업이 스스로 정한 기한 내에 100% 재생에너지 사용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고작이다. 현재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인텔 등 400개 기업이 마케팅 전략으로 RE100의 회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RE100의 본거지인 영국의 정부가 CFE 대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고 밝힌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영국은 최초의 상업용 원전을 가동한 1956년 이후 7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원전 확대 계획을 내놓았다. 9기의 노후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영국이 2050년까지 8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해서 전력 수요의 25%를 원자력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그런 RE100을 우리나라의 국가 에너지 정책에 꼭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사대주의적·패배적 억지다. 우리에게는 국민 생활과 산업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모두 전기로 대체해야만 하는 RE100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전력화 비율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전기화가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인 제철·시멘트·정유 산업은 통째로 포기해야만 한다. 엄청난 양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반도체·AI 산업도 불가능하다.




실제로 중위도 지역에 위치한 좁은 국토의 우리에게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로 소요전력의 100%를 충당한다는 RE100은 그림의 떡이다. 에너지 밀도가 낮은 태양광·풍력 설비를 설치할 토지를 확보할 수 없다. 건물의 지붕·벽·주차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일조량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60%에 지나지 않고, 가동 시간이 하루 평균 2.5시간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도 치명적 이다. 현재의 리튬 이온 배터리나 양수발전을 이용한 ESS(에너지저장장치)나 수소·CCUS도 본격적인 국가적 차원의 에너지 정책에 반영하려면 여전히 상당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미래 기술'인 상황이다.


에너지 믹스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필요하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국가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가 없다. 전기는 '실시간 생산'과 '실시간 소비'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원전의 감발(減發) 운전이나 재생에너지 설비의 출력제한은 감당하기 어렵고 위험한 낭비다. LNG와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첨두'(尖頭) 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원전 비중의 급격한 확대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당장의 원전 확대보다 가동연한이 끝나가는 원전의 계속 운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훨씬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원전 생태계를 살리겠다는 욕심이 지나치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정권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원전 기술을 개발하고, 원전 산업만 지원한다고 원전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적극적인 대국민 설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짜 과학'(fake science)을 확실하게 청산해야 한다. 100%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기술은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술패배주의'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환경은 반드시 보존하고 지켜내야만 한다는 '생태환경만능주의'도 청산해야 한다. 사용후 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 폐기물은 '10만 년을 생태계로부터 철저하게 격리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악의적이고 반(反)기술적인 선동의 피해도 막심하다. 탈원전을 정권 쟁취의 수단으로 여기는 정치 집단도 경계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에너지 전문가들이 긴밀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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