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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학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회장. 사진=김철훈 기자 |
국내 80개 희귀·난치성질환별 환우회의 모임으로 구성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의 김재학 회장은 암, 당뇨 등 다른 질환에 비해 건강보험 재정당국과 국민의 관심이 부족한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를 위한 관심과 보다 효율적인 지원방안을 당부했다.
질병관리청이 지정한 국내 희귀질환 수는 총 1165개, 국내 희귀질환자 수는 총 80만명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적으로 희귀질환은 총 7000종, 환자 수는 약 3억 5000만명에 이른다.
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을 의미하는 희귀질환은 조기진단이 어렵고, 1100여개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개발돼 있는 질환은 5%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비급여 비중이 커 희귀질환 환자들은 수천만원대 거액의 치료비 부담에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유전자검사 등 희귀·난치성질환 진단과 치료는 주로 첨단 의료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국내 5대 종합병원 등 서울에 편중돼 있어, 지방 환자들은 진단·치료를 위해 며칠씩 서울에 와서 머물러야 해 체류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진단·치료를 위해 서울에 상경하는 지방 환자와 가족의 단기 서울 체류를 위한 ‘희귀·난치성질환자 쉼터’ 운영사업을 주요 사업 중 하나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인근에 있는 이 쉼터는 전국 유일의 희귀·난치성질환 환자와 가족을 위한 무료 단기 숙박시설로, 총 5개의 독립된 침실과 공동 주방, 공동 샤워실 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직전까지 환자 수 기준 연간 500명 이상이 이용할 만큼 활용도가 높은 이 쉼터는 규모가 작고 낙후됐을 뿐 아니라 공동 주방, 공동 샤워실 등 불편이 크다.
김재학 회장은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 주요 거점도시에 ‘권역별 희귀·난치성질환 전문기관’ 운영을 추진하고 있다"면서도 "현실적으로 희귀·난치성 질환을 진단·치료할 수 있는 첨단시설은 서울 대형병원에 몰려있는 만큼, 지방 환자의 서울 단기 체류를 지원하는 시설이 확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동이 불편한 환자의 편의를 위해 서울 중심지 역세권으로 쉼터를 이전해 규모를 확충하고 시설도 개선하는 것이 연합회의 큰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회장은 1100여종의 다양한 희귀·난치성질환을 한 곳에서 진단부터 치료, 재활까지 할 수 있는 국립 종합병원을 신설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환자와 가족의 편의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희귀·난치성질환은 유전자검사, 근육재활 물리치료 등 서로 공통된 진단·치료·재활시설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희귀질환은 질환 수는 많지만 각 질환의 환자 수가 적어 질환 관련 정보가 부족하고 이로 인한 진단과 치료의 어려움이 반복됩니다. 국립암센터를 모델로 하는 국립희귀질환센터를 설립해 전국 각 의료기관에 분산돼 있는 희귀질환 정보를 총괄 관리하는 콘트롤타워 의료기관이 설립돼 한 곳에서 모든 희귀·난치성질환을 다룰 수 있도록 하면, 환자와 가족이 희귀질환 정보 부족을 극복할 수 있고, 환자 이동의 편의성은 물론 의료진·의료시설의 효율적 확보와 건강보험 약제비 지출의 합리적인 관리도 가능할 것입니다."
김재학 회장 역시 희귀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 환우로, 어려서부터 근육위축 등 증상으로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으나, 40세 가까운 나이에 비로소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자신의 질환명을 알 수 있었다. 김 회장이 희귀질환 정보 취득부터 진단, 치료, 재활까지 한 곳에서 다루는 콘트롤타워 기관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밖에 연합회는 △정부지원과 민간후원을 받아 비급여 항목의 의료비와 의료보조기구, 특수식품 등을 지원하는 의료복지사업 △외부활동 제약이 큰 환자와 간병가족의 투병 및 간병 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문화복지사업과 교육자활사업 △희귀질환 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정책개선 과정에 참여하는 국가정책개발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김재학 회장은 건강보험 재정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으면서 희귀질환 환자 의료혜택을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정부와 국회 등에 제안하고 있다.
"무분별한 상급병원 이용률을 낮추고 선진국 대비 사용량이 2배 많은 경증 질환 의약품 과용 빈도를 낮추며 약제비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금을 상향하면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중증·희귀질환 환자 지원에 더 많이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김 회장은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을 법률에 명시된 수준으로 상향하고, 별도의 기금을 조성해 필수의료 보장 영역인 중증·희귀질환 치료의 사각지대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과학적인 규제를 통해 제네릭(복제약)에 대한 적정한 약가를 책정하고 신약 연구개발(R&D) 투자에 기여하는 제약사가 신약개발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제약사의 수익구조를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재학 회장은 "올해 들어 질병청의 서울 쉼터 사업 지원 예산은 이전보다 삭감돼 쉼터 운영에 어려움이 더 커졌다"며 "정부는 물론 제약사 등 민간 기업·기관이 좀더 희귀질환에 관심을 갖고 지원에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kch005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