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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쇼수 |
중동 붐은 과거에도 있었다. 1970년대 건설 수출 붐이 그것이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산유국 주머니를 불려줬던 소위 오일머니의 재투자 과정에서 만들어진 중동 건설 수출 붐은 두 차례의 석유 위기로 휘청거리던 국내 경제를 구해냈다. 당시 중동과의 경제 파트너십은 석유와 건설 분야가 거의 전부일 정도로 간단한 구조였다. 중동과 협력할 분야가 석유와 건설 이외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중동과의 경제협력 가능성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크게 확대됐다.
국내총생산에서 석유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쿠웨이트 32%, 사우디 18%, UAE 12%에 이를 정도로 중동 지역에서 석유, 가스 산업의 중요성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석유, 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탄소경제가 계속 이어진다면, 중동 국가들은 풍부한 석유, 가스 자원을 활용해 지속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인류는 기후변화 위기에 직면해 탄소중립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 가는 중이다. 탄소중립은 탄소경제의 종식과 무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무탄소 경제하에서 석유, 가스는 무용지물이 되는 좌초자산이 될 공산이 크다. 석유, 가스 산업 이외에 변변한 산업이 없는 중동 국가에게 탄소중립은 그야말로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동 국가들은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제조업, 신재생에너지, 관광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 신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다각화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중동과의 경제협력을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에너지 파트너십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에너지전환을 위한 파트너십의 가치는 몇 몇 분야를 중심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첫째, 원전 파트너십이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중동 각국은 탄소중립의 방안으로 원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UAE에 한국형 원전 4기를 수출하고 성공적 가동을 눈앞에 두고 있어 중동에 추가적인 원전 수출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의 새로운 핵심 에너지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수소 파트너십이다. 수소도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 말짱 꽝이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그린수소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지하에 저장하는 CCS와 결합돼 생산되는 블루수소를 확보해야 한다. 중동 지역의 재생에너지 잠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폐유전과 같은 이산화탄소 저장 공간도 풍부하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에서 3개의 상업 CCS 설비가 운영 중이다. 중동 지역의 이산화탄소 지중 저장 잠재량도 300억톤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1년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약 7억톤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잠재력이다. 중동은 우리에게 훌륭한 수소 공급처가 될 수 있다.
셋째, 천연가스 파트너십이다.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목표가 결코 아니다. 최근 미국의 석유 공룡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각각 초대형 석유가스 생산회사를 인수합병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 에너지전환도 100년 이상에 걸쳐 장기적으로 서서히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천연가스가 가교에너지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다. 최근 몇 년 동안 경험한 것처럼 앞으로 에너지전환이 전개됨에 따라 천연가스 시장의 변동성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동 국가들과 견고한 천연가스 파트너십을 맺어 에너지안보 수준을 높여야 한다.
과거 중동 붐은 탄소 경제에서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를 구했다. 앞으로 다가올 제2의 중동 붐은 무탄소 경제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이끄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