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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대형마트의 라면판매대 모습. 사진=연합 |
한국에서 라면이 생산된 지 올해로 60주년이 됐다. 과거 보릿고개를 겪던 배고픈 서민들의 한 끼를 책임져온 서민음식 라면은 쌀을 잇는 ‘제2의 주식(主食)’으로 떠올랐다. 환갑을 맞이한 라면은 이제 ‘끼니 때우기’ 식품을 넘어 ‘K-푸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인의 인기식품에서 전 세계인이 간편식으로 즐겨먹는 글로벌푸드 라면으로 확장하고 있는 한국 라면의 60년 발자취와 해외시장으로 발돋움하는 라면산업의 향후 비전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제품 탄생 60주년의 한국 라면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오랜 격언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국민간식 1등 산업’이라는 타이틀에 자부심을 누리면서도 동종업계 1위를 놓고 신제품 개발의 내부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는 동시에 라면 종주국 일본을 넘볼 정도로 해외영토 확장도 힘쏟으며 대한민국 식품산업의 성장동력 입지를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만이 살 길…신제품 공세
한국인의 식탁에 인스턴트 라면이 첫 등장한 시기는 지난 1963년이다. 오는 15일 출시 60주년을 앞둔 삼양식품 ‘삼양라면’이 1호 탄생의 주인공이다.
국내 최초 라면인 ‘삼양라면’은 당시 제품 중량 100g에 판매가격 10원으로 선보여 그 시절 쌀 소비 절약을 위한 정부의 혼·분식 장려정책과 맞물려 출시와 함께 성장가도를 달렸다. 이후 1965년 농심(옛 롯데공업), 1983년 팔도(당시 한국야쿠르트), 1987년 오뚜기 등 후발주자들이 잇따라 시장에 뛰어들면서 라면산업의 양과 질에서 성장을 재촉하고 경쟁도 가속화시켰다.
시장 판도가 뒤바뀐 것은 1980년대부터다. 라면 원조인 삼양라면이 1970년대 말까지 80%에 이르는 점유율을 유지했으나, 1985년 농심(40.4%)이 삼양식품(39.6%)를 밀어내고 점유율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삼양라면 품질 파동과 농심의 신제품 공세가 맞물려 선두 교체가 이뤄졌다는 업계 분석이다.
농심은 1982년 ‘너구리’를 시작으로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를 연달아 출시해 성공을 거뒀다. 국내 첫 용기면인 농심 ‘육개장사발면’도 이때 등장했다. 특히, 1986년 국내 매운라면 시초로 꼽히는 ‘신라면’을 내놓으며 폭넓은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된다.
라면 왕좌 자리를 놓고 매년 수십여 개의 신제품이 출시되는 가운데, 2010년대로 접어들며 현재까지 다양한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 특화 제품을 내놓는 시기로 옮아갔다.
한동안 기존 매운 라면과 짜장라면, 비빔면 등 큰 변화가 없던 시장 구도에서 2011년 하얀 국물을 내세운 제품이 주목을 받았다. 삼양식품이 출시한 ‘나가사키 짬뽕’과 팔도의 ‘꼬꼬면’, 오뚜기의 ‘기스면’이 대표제품이다. 그러나 이들 하얀 국물 라면은 농심의 대세를 뒤집지 못했다.
오히려 라면 제품은 올해 다시 매운맛을 극대화한 빨간 국물이 대세로 떠오를 전망이다. 기존 매운 라면 제품을 리뉴얼 출시하는 게 골자다.
최근 삼양식품은 기존 제품 맛과 포장을 바꾼 ‘삼양라면 매운맛’을 내놓았다. 지난달 농심도 기존 신라면보다 두 배 매운 ‘신라면 레드’를, 오뚜기도 ‘열라면’에 마늘·후추 등을 더한 후속작 ‘마열라면’을 선보인 바 있다.
농심이 독주하는 가운데 오뚜기와 삼양식품의 2위 쟁탈전도 볼거리다. 현재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은 농심 50%대, 오뚜기 약 24~25%, 삼양식품이 10~11% 수준이다.
1987년 말 청보식품을 인수해 오뚜기는 3개월 후 대표 제품 ‘진라면’으로 뒤늦게 시장에 참전했다. 2000년대까지 만년 3위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2012년 삼양식품을 제치고 업계 2위로 올라섰다. 이듬해 ‘진라면’이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서는 메가 브랜드로 거듭나면서 점유율도 2015년 25%, 2018년 28%까지 성장세를 이어갔고 있다. 오뚜기가 언제 ‘30%대 벽’ 점유율을 돌파하는가도 국내 라면시장 판도와 맞물려 업계의 주요 관심사다.
최근 5년간 1~7월 라면 수출액 | |
연도 | 수출액 (달러) |
2019 | 2억5763만 |
2020 | 3억5856만 |
2021 | 3억7209만 |
2022 | 4억4334만 |
2023 | 5억2202만 |
자료:관세청 |
라면업계는 사실상 국내 라면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했다고 보고 해외사업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
업계 추정대로라면 지난 1970년 100억원 수준이던 국내 라면시장 규모는 1990년 4900억원, 1998년 1조원까지 늘었다. 2013년 2조원까지 몸집을 키웠으나 현재까지 2조원대에서 횡보하고 있어 ‘국내 소비’가 아닌 ‘해외 수요’로 매출 확대의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코로나 팬데믹과 한류 열풍 영향으로 K-푸드 인기가 확산되면서 해외에서 국산 라면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관세청에 따르면, 올 1~7월 라면 수출액은 누적 5억2202만 달러(약 7000억원)로 집계됐다. 지냔해 같은 기간 수출액 4억4334만달러 대비 17.7% 증가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라면 1위인 농심은 미국 등 주요 진출국에서 라면 종주국이자 시장선발주자인 일본의 아성마저 위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농심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5.2%로 일본 토요스이산(47.7%)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앞서 2017년 농심은 20.4%로 일본 닛신(19.7%)을 꺾고 2위로 올라선 뒤 3위와 격차를 벌리고, 1위를 추격하고 있다.
기세가 오른 농심은 오는 202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제3공장을 착공해 오는 2030년까지 미국 라면시장에서 연매출 15억 달러 달성하는 등 수년 내 미국시장 1위 역전을 이룬다는 목표이다.
삼양식품도 지난 2012년 출시한 매출효자 제품 ‘불닭볶음면’을 앞세워 해외에서 인기를 끌어모으며 ‘재도약’을 서두르고 있다. ‘불닭볶음면’이 2010년대 중반 유명 유튜버의 먹방 챌린지 영상으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며 해외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자 국내로 ‘매출확대 역주행’으로 이어져 삼양식품에 재도약 기반을 제공했다.
중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 ‘불닭면 열풍’이 불면서 2012년 6.7%였던 삼양식품의 수출 비중은 2016년 25.9%, 지난해 66.6%까지 급성장했다. 특히, 전체 해외 매출액 가운데 80%가 ‘불닭볶음면’에 나온다는 회사의 설명이다.
삼양식품은 2021년 미국·중국에 법인을 세운 후 지난해부터 대형마트, 편의점 입점 등 현지 유통망 확대를 목표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다. 해외 소비자들의 불닭볶음면 수요가 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또, 최근에는 1590억원을 들여 오는 2025년까지 5개 생산라인을 갖춘 밀양 제2공장을 신설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10여년 이상 국내 라면 시장 성장세가 정체된 상황에서 내수용 사업만으로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면서 "빠르게 사업 축을 해외로 옮기되 한류 붐에 기댄 일시적 특수로 끝나지 않도록 수요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inaho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