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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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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언론이 만들어낸 초전도체 광풍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08 08:15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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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커뮤니케이션


 최근 국내 대학에서 활동하는 벤처기업이 ‘LK-99’라는 상온 초전도체의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정식으로 논문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 완성도가 떨어지는 원고를 ‘아카이브’라는 사전등록 사이트에 올려놓았을 뿐이었다. 더욱이 서로 다른 내용의 원고 2편을 동시에 공개했다. 정상적인 연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국립연구소가 LK-99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확인했다는 어설픈 소식에 우리 언론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리가 세상을 통째로 바꿔놓을 첨단 기술의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당장 노벨상을 받게 되고, 엄청난 돈방석에 올라앉게 될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증시와 인터넷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초전도체 관련 기업의 주가가 수직으로 상승했고, 세빛둥둥섬이 둥둥 떠오르는 ‘밈’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폭염 속에 우리 언론이 부채질한 상온 초전도체 열풍은 금새 시들해지고 있다. 개발사가 공개한 영상과 자료만으로는 LK-99의 정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학계의 평가가 나오면서다. 우선 한국초전도저온학회부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지금까지 개발사가 공개한 자료만으로는 LK-99를 ‘상온 초전도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도 지난 4일 초전도 관련 분야의 연구자들이 여전히 ‘매우 회의적’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LK-99의 객관적인 검증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개발사가 검증용 시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발사를 탓할 수는 없다. 소중한 시료를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개발사가 최소한 동료 평가라도 받은 후에 공개하는 국제적인 관행을 무시해서 벌어진 난처한 상황이다. 아무나 LK-99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발사가 공개하지 않고 있는 ‘노하우’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업적 이익과 직결되는 비법(秘法)인 노하우를 무작정 공개할 수도 없다. 결국 LK-99의 객관적인 검증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전 세계가 일상적인 온도와 압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초전도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기 저항이 전혀 없는 초전도체가 그만큼 유용하기 때문이다. 초전도체를 이용하면 전력 산업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발전기의 크기를 줄일 수 있고, 송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고압 송전망을 건설해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변압기에서 전기 저항에 의한 열 손실도 없어진다. 상온 초전도체가 현재의 전력 산업의 효율을 무한대로 높일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초전도체로 만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이용하면 태양광·풍력 발전의 최대 난제인 간헐성도 간단하게 극복할 수 있다. 자원·효율이 제한적이고, 화재 위험도 심각한 리튬이온 배터리에 매달릴 이유가 없어진다.

상온 초전도체는 발전·송전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현대 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진단 수단이 된 MRI(자기공명영상법)도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 몸에 들어있는 수소 원자의 자기적 성질을 분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강력한 자기장을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초전도 자석이 요구하는 섭씨 영하 268.9도의 극초저온을 만들기 위해 비싸고, 관리가 어렵고, 고갈 위기에 있는 헬륨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기대를 모으는 핵융합 발전에 사용할 핵융합로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가능해지고 자기부상 고속철도 가능해진다.

전 세계의 많은 과학자가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제로 상온 초전도체 개발에 성공했다는 논문이 거의 매년 1건 이상 발표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도 로체스터 대학교의 과학자가 개발했다는 상온 초전도체의 정체에 대해서 과학계가 뜨거운 논란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언론·증시·인터넷이 앞장서서 법석을 떨지는 않는다.

상온 초전도체의 개발은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상업적으로 유용한 초전도체를 만드는 일은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 실제로 액체 질소로 만들 수 있는 섭씨 영하 180도에서 작동하는 ‘고온 초전도체’는 1980년대 후반 처음 연구실에서 처음 개발된 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본격적인 상업적 활용은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다.

결국 상온 초전도체 소동은 언론이 만들어 냈다. 과학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언론이 과학적 검증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야 할 이유가 없다. ‘가짜 과학’을 가려내는 능력도 현대의 언론에게 꼭 필요한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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