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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수 한국전기통신기술연구조합 전문위원 |
역사적으로 인간은 태풍과 빙하기, 폭염과 가뭄을 극복하며 살아왔다. 이런 생존과정을 거쳐온 인류를 호모 클리마투스(Homo-Climatus)라고 칭한다. 호모 클리마투스는 프랑스 고인류학자인 파스칼 피크(Pascal Picq)가 처음 사용한 말로 인류가 자초한 이상기후에 대비해 의식주 등 생활 방식을 바꾸는 인간을 뜻한다. UN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지난 3월20일 6차 종합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원인과 영향, 대응 방안 등이 일목요연하게 담겨있다.
이 보고서는 지난 18개월 동안 여러 부문으로 나누어 발행한 제6차 평가주기(2015~2023)의 마지막 단계 보고서다. 먼저 2021년 8월에 발표된 이 시리즈의 첫 번째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최신 증거들을 제시했고, 2022년 3월 발표된 두 번째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2022년 4월에 발행된 세 번째 보고서에서는 우리가 이에 대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각각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에서는 지속되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온난화가 심화해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지구온도가 1.5도 상승에 도달할 것이며 즉각적이고 중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지만 미래 기후는 여전히 인류가 통제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특히 에너지 전환 부족을 집중 조명했다. 이회성 IPCC 위원장은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후 행동의 속도와 규모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에 매우 불충분하다고 경고하며 "우리는 전력 질주해야 할 때 걷고 있다"고 말했다.
3월17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2년 12월까지의 글로벌 전력통계를 발표했다. OECD 회원국과 중국, 인도 등 주요국을 포함 47개국의 전력 생산 및 무역데이터를 담았다.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특히 전력 생산에서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우리나라는 8.6%(한국전력공사 전력통계월보 기준은 7.7%)로 통계에 수록된 국가 중 유일하게 10%를 밑돌며 최하위를 기록했다. 전체 평균(47.4%)과 OECD 회원국 평균(32.8%)는 물론 중국 31.0%, 인도 22.8%에 견줘서도 절반에 못미친다. 우리나라 바로 앞인 몰타(11.6%)에도 크게 뒤떨어지며 몇 년째 ‘압도적 꼴찌’를 기록 중이다. 재생에너지 점유 증가율도 2022년 기준 우리나라는 0.4%로 최하위권이다. 룩셈부르크가 12.7%로 가장 높고 노르웨이 10.1%, 뉴질랜드 9.5%, 핀란드 7.0%, 덴마크 6.2%, 콜롬비아 5.9%, 네덜란드 4.4%, 칠레 2.4%, 중국 2.2%, 프랑스 1.9%, 영국 1.5%, 일본 1.2%, 미국 1.1%, 인도 0.9% 등에 비해 초라한 성적표로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받게 했다.
정부는 3월 21일 향후 20년간 우리나라 기후정책의 방향을 좌우할 최상위 계획인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을 공개했다. 2030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는 목표는 유지했지만,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역행하는 계획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온실가스 다 배출 1위 부문인 산업부문 감축 목표를 기존 14.5%에서 11.4%로 낮췄고 상용화되지 않은 CCUS와 국제감축 분야는 확대했다. 특히 국제감축은 2030년 최종 연도에 몰아서 적용했으며 이것은 파리협정의 세부규칙에서도 금지하는 방식이다. 결국, 산업계가 져야 할 책임을 불확실한 수단과 방식으로 대체했다.
현 정부 임기(2023∼2027년) 내 연평균 감축률은 2%에 불과하고 차기 정부(2028~2030)의 연평균 감축률은 9.3%에 달해 감축 부담을 차기 정부로, 미래 세대로 미루는 계획이다.
IPCC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가장 취약하고 책임이 가장 적은 국가에 가장 강력한 타격을 가하고, 세대에 따른 기후변화 영향에 대해서도 1950년과 1980년, 2020년생 중 기후변화에 책임이 가장 적은 3세대(2020년생)가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다고 했다. 향후 10년간의 선택이 현재는 물론 수천년 뒤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단기적 정책 대응의 시급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했다. 기후변화가 인류 문명과 역사에서 중요한 변수라는 경고에도 현 정부의 기후 대응은 안일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를 이전 정부가 수립했던 30.2%에서 21.6%로 오히려 낮췄다. 산업부문 감축 목표도 기존 14.5%에서 11.4%로 하향조정 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높아지는 데 정부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기후변화 대응보다 우선하고 있다. 긴 안목에서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 미래 세대와 지구 환경을 위해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에 뒷걸음질을 할 것이 아니라 전력질주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