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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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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한미통화스왑 종료와 ‘금융안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1.10 10:22

조영제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한국금융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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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제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한국금융연수원장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일이다. 당시 필자는 금융감독원의 외환업무실장을 맡고 있었다. 추석날 제삿상을 물릴 무렵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의 리만브라더스가 곧 파산하니 시장상황을 점검하라는 것이었다. 마침 산업은행이 리만브라더스를 매입하려다 포기한 터라 리만 파산 소식을 미리 알았다.

급히 국내은행 자금부장 회의를 소집해 해외차입 규모와 해외채권 보유 상황을 체크했다. 다행히 1997년 외환위기 후 외환건전성을 위해 갭비율이란 안전장치를 마련해놓아 국내은행들이 2개월 정도 버틸 여유는 있었다. 갭비율은 차입금 만기시 갚을 자금을 1주일 전까지 일정비율 이상 확보하라는 지도비율이었다. 그때만 해도 2개월 정도면 금융위기는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2개월이 지나도 글로벌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은 풀리지 않았다. 국내은행들은 만기 때 갚을 외화를 확보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그렇다고 실물경제에 미칠 타격 때문에 기업들에 빌려준 외화를 회수할 수도 없었다. 해외 금융기관들도 얼어붙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자금 확보에 애를 먹고 있던 터라 모두 ‘내 코가 석자’였다.

별 수단을 다 썼다. 얼어붙은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은행들의 외화차입을 지원하기 위해 국회에서 국가지급보증 동의까지 받았다. 그래도 신용경색은 풀리지 않았다. 그러자 우리 정부는 한은이 보유한 미국 국채라도 팔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들렸다.

가뜩이나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혼신을 쏟던 미국도 한국의 이런 움직임에 부담을 느꼈을지 모른다. 갑자기 미국은 한국과 통화스왑을 하기로 결정했다. 목말랐던 외화차입 길이 열린 것이다. 이듬해 1월 드디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이 각각 1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채권 발행에 성공하며 신용경색은 풀렸다.

지난해말 한은은 미 연준과 체결했던 600억 달러 통화스왑계약의 만기가 도래하자 연장 없이 이를 종료시켰다. 한미 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은은 금융경제상황이 안정되고 한미통화스왑을 통해 공급된 자금은 지난해 7월 전액 상환된 후 수요가 없으며 미 연준과 600억 달러규모의 ‘레포거래(FIMA Repo Facility)’에 합의했기 때문에 유사시 달러 조달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 금융시장은 외국자본의 유출입에 대해 어느 정도 조절능력은 갖고 있다. 현재 한국의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은 20bp(0.2%) 수준으로 매우 낮고, 외화보유고도 46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으며, 지속적 수출 호조로 누적되는 무역흑자는 외환보유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래도 미국과의 통화스왑 종결은 아쉬움을 남긴다. 당장 국내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더라도 글로벌 시장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대외변화에 취약한 우리 금융시장의 속성상 위기관리는 늘 중요하다. 안전망은 두터울수록 좋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극심했던 신용경색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한은은 미 연준과 FIMA에 합의했다지만 연리 0.25%의 하루짜리 초단기물이다. 통화스왑과 비교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곧 테이퍼링이 가속화된다. 지난 5일 공개된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12월 회의록에서 위원들이 예상보다 빨리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긴축 가능성을 논의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금융시장이 계속 안정적일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 아닐까. 환율은 이미 1달러 당 1200원 대로 올라섰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또 다시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큰일이다. 미국이 통화긴축에 나설 때 유동성 흡수는 해외에서도 발생한다. 미국은 통화정책 결정시 자국 금융시장 안정을 우선으로 고려할 것이기 때문에 저수지 물이 가장자리부터 마르듯 신흥국 언저리의 한국은 먼저 자금난에 직면할 수 있다.

사실 한은이 미 연준과 체결했던 통화스왑은 진정한 의미의 통화스왑은 아니다. 통화스왑은 국가 간에 대등한 입장에서 일정기간 통화를 교환하는 것인데, 원화는 국제통화 반열에 들지 못하기 때문에 외국 통화와의 교환대상도 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통화스왑은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언제든 자국통화를 빌려 쓰라고 길을 열어준 크레디트 라인에 불과하다.

한미통화스왑은 그동안 우리 금융시장에 든든한 안전망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당장 필요치 않더라도 금융국방을 튼튼히 한다는 차원에서 한미통화스왑은 앞으로도 존치시키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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