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
전력거래소는 지난해 6월부터 시장원리에 기반을 둔 '전력시장 제도개선 제주 시범사업'을 운영해 왔다. 이 시범사업은 크게 실시간시장, 예비력시장 그리고 재생에너지 입찰제가 그 핵심이다. 실시간시장은 지금까지의 하루전시장을 하루전시장과 15분 단위 실시간시장의 이중시장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예비력시장은 계통유연성을 공급하는 피크자원에 대해 정당한 보조서비스 제공대가를 지급하는 형태로써 15분 단위의 예비력시장을 도입하여 예비력을 시장 상품화하여 실시간으로 거래한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는 재생에너지도 전력시장 입찰에 참여하여 발전량과 시장가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중앙급전발전기와 동일한 급전지시 이행의무를 부여하고 이에 따른 보상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한 마디로 실시간 시장에 가까운 가격입찰제를 시행하고 재생에너지와 예비력에 가격을 붙여 발전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다.
금년 5월 말까지의 시범사업 운영에 대한 중간평가는 꽤 긍정적이다. 재생에너지 입찰제에 참여하는 참여사업자 수가 17개 → 21개 → 23개로 늘어났고, 참여 설비용량도 403.8MW → 426.7MW → 548.0MW로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무엇보다도 시장가격은 미도입을 가정했을 때보다 하루전 SMP는 6.86%, 실시간 SMP는 8.09% 하락하였다. 그 이유로는 시범사업 도입 후 전력수요가 감소하고 태양광 이용률이 높아지는 봄·가을철의 경부하기 낮 시간대 및 주말에 음(-)의 SMP가 발생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도 재생에너지의 중앙급전자원화를 실현할 수 있었고 강제적 출력제어가 97.7% 줄어들었다는 점이 돋보였다. 이에 더하여 시범사업 개시 후 중개사업자(VPP)가 증가하였고, 배전망 직접연계형 ESS 등 새로운 전력자원의 시장참여가 확대되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전력시장은 비용평가 방식을 25년간 고집하고 있다. 사실 원가규제에 가까운 비용평가 시장은 매우 경직적이다. 모든 발전기의 연료를 일일이 비용을 검증하기 위하여 샘플을 취해 실험한 열량 수치를 확인해서 전력거래소에 보고해야 한다. 이에 따른 인력과 자원의 낭비와 복잡한 관료적 절차는 그나마 눈에 보이는 명시적인 비용이다.
눈에 안 보이는 암묵적 기회비용은 가격입찰을 시행했었다면 얻어질 수 있었던 편익이다. 연료비와는 무관하게 발전기 가동을 높이고 싶어도 무조건 비용평가 순으로 발전기를 가동해야 해서 발전사업자간 경쟁을 유도할 수도 없다. 일례로 껐다 켰다를 반복할 때 생기는 기동비용을 줄이고 발전기 수명을 늘리기 위해 돈을 적게 받고서라도 발전기를 연속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값싼 연료를 대량으로 빨리 도입하기 위해 기존 연료를 급속히 소모하는 유연한 발전방식도 현 체제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비용평가의 한계 때문에 시장원리에 가까운 가격입찰 방식으로 전력거래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 지도 비용평가 시장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규제 당국은 요지부동이었다. 해외의 전력시장은 대부분 가격입찰 방식이라는 국제비교도 통하지 않았다. 한편, 제주도와 전남 등에서 인위적 출력제어가 빈번해지자 이 역시 강제로 하지 말고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를 통해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 시범사업의 목표였다.
가격입찰을 잘못 시행하면 발전사업자의 담합 등으로 오히려 전력 도매가격이 상승하여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 시범사업의 운영결과는 실시간시장의 도입으로 실제 수급에 따른 실시간가격을 실현하고, 전력 도매가격을 낮추고, 강제적인 출력제어도 자발적 조정으로 대체하고, 예비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다양한 전력자원을 발굴하게 된 점이다. 자원을 제값에 팔고 사는 것이 어떤 총명한 독재자의 눈부신 지휘보다도 우월하다는 평범한 시장원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가격원리를 중시하는 전력시장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