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지난 8월 19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는 이례적인 고소장이 접수됐다. OBS 소속 기자가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브리핑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이 이제 법정으로 번져든 셈이다. 단순한 취재 현장의 충돌이 아니라, 언론 자유와 권력의 언어를 둘러싼 새로운 시험대가 열린 것이다.
대통령실 브리핑실은 그 자체로 권력의 무대다. 정면에 설치된 카메라는 기자들의 표정과 손짓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질문 하나가 곧바로 전국으로 송출된다. 과거에는 농담이 오가며 긴장이 풀리던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조크조차 허용되지 않는 공간"으로 변했다.
강유정 대변인은 영화·문학 평론가 출신답게 언어의 리듬과 장치를 능숙하게 활용한다. 질문이 조금만 각을 세워도 차분한 어조로 재배치하며, 논리의 질서를 덧씌운다. 질문자는 순식간에 수세로 몰리고, 기자실은 대변인의 언어로 장악된다. OBS 기자가 비공개 일정과 관련해 질문했다가 대변인에게 “비공식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는 호통 섞인 지적을 받았던 장면은 대표적 사례다. 그 장면은 짧은 쇼츠 영상으로 확산되며 기자 개인에게 치명적인 낙인을 남겼고, 결국 그는 회사로부터 출입처 교체라는 처분을 받았다. 질문권은 권력의 언어 앞에서 점점 위축되고 있다.
하지만 기자들의 고통은 브리핑실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자들은 수많은 유튜브 채널의 소재가 되고 있다. 유튜브 영상의 초점은 질문이 아니라 대변인의 '반응'이다. “기가 차지만 꾹 참는 강유정 대변인", “말귀 못 알아듣는 기자" 같은 제목이 붙고, 기자는 무능하거나 악의적인 존재로 재단된다. 정치적 프레임은 언제나 “대통령실·여권 vs 기자"로 고정된다.
지난 6일 채널A 기자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사면 문제를 물었을 때, 이는 모든 언론이 다루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일부 유튜브 채널은 “브리핑 주제와 무관하다"며 기자를 공격하는 영상으로 포장했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출입을 시작했을 때는 “기자단 잡으러 간다"라는 과장된 제목이 달린 영상이 460만 회를 넘기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기자의 실제 발언은 사라지고, 자극적 편집만 남았다.
왜곡은 때로는 오보로까지 확장된다. 지난 12일 조세일보 기자가 질문했는데, 여러 유튜브 채널이 이를 '조선일보 기자'라고 잘못 보도했다. '조선일보 기자가 숨어서 질문한다' 같은 영상은 수십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일부 방송사는 사과했지만, 여전히 오보를 유지한 채 조회수를 챙기는 채널도 있다.
마감에 쫓기는 기자들은 대응할 여유가 거의 없다. 유튜브에 영상을 신고하거나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하지만, 오히려 신고 사실이 다시 조롱 콘텐츠로 소비된다. “이 기자가 우리 채널을 신고했다"는 식의 영상이 올라오면 수천 개의 조롱 댓글이 달리고, 기자 개인의 SNS 계정에는 욕설과 인신공격이 쏟아진다. 결국 몇몇은 계정을 닫거나 활동을 접는다. 브리핑실 안에서 위축된 기자가 브리핑실 밖에서는 대중의 조롱거리가 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OBS 기자의 고소는 단순한 개인의 대응이 아니다. 그는 브리핑 현장에서의 면박과 그 이후 유튜브에서의 조롱, 왜곡된 이미지가 결합된 결과로 법적 대응을 선택했다. 고소장은 대통령실과 언론, 그리고 대중 사이에 쌓인 긴장의 총합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언론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때로는 투박하고 엉뚱한 질문도 던진다. 바로 그 우문 속에서 현답이 나오는 것이 언론의 본령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통령실 브리핑은 그 우문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다. 기자의 질문은 차단되고, 대중은 이를 유튜브에서 '오락'으로 소비한다.
정치는 언어의 싸움이다. 기자의 질문은 권력에 대한 견제이고, 대변인의 답변은 권력의 정당화다. 유투브는 권력이 아닌, 기자들의 실수를 취재한다. 이렇다보니, 지금의 대통령실 브리핑은 철저히 대변인의 언어로만 짜여진 일방적 교본처럼 흘러간다. 기자들이 유투버의 '놀잇감'으로 소비되는 상황에서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남는다. 권력은 유투브와 같은 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