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S건설 사옥 그랑서울. 사진=GS건설
GS건설이 2020년 인수한 영국 모듈러 자회사 '엘리먼츠 유럽(Elements Europe)'을 결국 청산하기로 하면서 모듈러 주택 사업 전략이 기로에 섰다. 업계 일각에선 애초에 무리한 투자였다며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GS건설은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활로를 찾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GS건설은 최근 영국 본사의 자회사 엘리먼츠 유럽에 대한 청산 절차에 돌입했다. 2020년 1월 약 342억 원을 투입해 지분 75%를 인수했지만, 이후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손실 규모가 인수 금액을 넘어서게 됐다. 매각도 어려운 상황이 되자 결국 약 1000억 원에 달하는 청산 비용을 감수하고 사업을 접기로 했다.
엘리먼츠 유럽은 중고층 아파트, 호텔, 병원 등을 대상으로 스틸 프레임 기반 모듈러 건축물을 제작·시공하는 업체로, GS건설은 유럽 모듈러 시장 진입을 위해 해당 회사를 인수했다. 당시 폴란드 자회사 '단우드(Danwood S.A.)'와의 연계 확장도 구상했지만 실적은 정반대로 흘렀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관세 혜택 소멸, 인력 수급 불안정, 코로나19에 따른 자재·인건비 급등까지 겹치며 사업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인수 첫해 순이익은 400만 원에 그쳤고, 2022년과 2023년엔 각각 20억 원, 259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여기에 지난해 446억 원, 올해 1분기에도 약 470억 원의 손실이 더해지며 적자가 누적됐다.
GS건설은 이번 청산이 전략적인 선택으로 사업 철수 여부 등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GS건설 관계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략적으로 재정비하는 차원에서 청산을 결정한 것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한 내실경영의 일환"이라며 “영국 사업 철수와는 별개로, 국내 자회사와 공장을 중심으로 스틸모듈러 기술을 내재화하고 사업은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GS건설 측은 또 이번 청산이 내부 문제가 아닌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현지 청산 관리인을 선임해 절차를 진행 중이며, 추정 손실은 이미 회계에 반영됐다"며 “독일에서 사업을 진행 중인 자회사 단우드를 중심으로 유럽 내 시장 확장은 계속 모색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또 영국에서 습득한 중고층 스틸모듈러 기술을 국내 사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프리패브 공법 확장을 위해 하이브리드 구조,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주택 등 다양한 제품 개발도 진행 중인 만큼 기술 확보 차원에서는 '남는 장사'를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GS건설의 모듈러 주택 사업 전략이 “너무 앞서나갔다"는 시각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모듈러는 공기를 줄이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소비자 인식 부족과 디자인·품질 제약으로 아직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 지원 없이 기업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에서는 GS건설처럼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도 “모듈러는 빠른 공기, 저렴한 가격, 높은 품질이라는 세 요소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며 “시장 정착까지는 충분한 검증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번 GS건설 사례는 타 건설사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DL이앤씨와 현대건설 등 다른 기업들도 자체 또는 협력 생산라인을 통해 프리패브 기반 모듈러 유닛을 제작·실증하고 있지만, 아직은 뚜렷한 대형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기술 선점보다 수익성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줬다"며 “고금리와 자재비 상승으로 인해 모듈러조차 손익 계산이 쉽지 않은 사업이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모듈러 주택이 갖고 있는 장점이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미래 주택 시장의 주력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을 통해 육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권 교수는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 같은 정형화된 유형에선 가능성이 있지만, 공동주택 등 대규모 공급에 있어선 기술적·제도적 한계계가 있다"면서 “기업의 부담으로만 넘기지 말고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을 통해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