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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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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th, 에너지가 미래다] 에너지 변방에서 중심으로…한국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5.26 06:00

에너지 연 230조원 수입하지만 시총 10위 안 에너지기업 없어

공기업 독과점 속 요금 인상 제한으로 그나마 성장마저 멈춰

미국 화석연료 회귀, 러시아 종전 가능성으로 아시아 에너지 몰려

알래스카 LNG 경제성 부족하지만 에너지 안보에선 높은 점수

한미 강력한 에너지동맹으로 에너지허브 구축해 국가 성장동력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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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항에 위치한 코리아에너지터미널(KET) 전경. LNG와 석유제품을 저장할 수 있는 탱크가 설치돼 있고, 향후 탄소와 청정수소 저장시설도 구축해 동북아 에너지 허브로 거듭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진=KET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100%를 수입한다. 연간 수입액만 230조원으로, 국가 전체 수입액의 1/5에 이른다. 이처럼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소비하는데도 에너지산업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공기업 독점 구조 때문에 민간 기업의 활동 영역이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에 심상치 않은 새로운 에너지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의 막대한 석유가스를 개발해 에너지 패권지위를 더욱 강화하려 하고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종전 이후 세계 최대급의 에너지 공급량을 아시아에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그 접점에 서게 되면서 아시아의 새로운 에너지 허브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에너지 제도를 미리 정비해 에너지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26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에너지(광물성연료) 수입액은 약 226조원이다. 여기에 금속자원 수입액 약 33조원을 더하면 에너지·자원 총 수입액은 약 260조원이다. 국가 전체 수입액의 29.6%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원 수입액은 중국, 미국, 인도, 일본에 이은 세계 5위 수준이다. 이처럼 많은 에너지 자원을 수입하고 소비하면서도 21일 기준으로 국내 시가총액 10대 기업 안에는 에너지 기업이 하나도 없다. 40대까지 넓혀야 14위 두산에너빌리티, 23위 한국전력, 37위 SK이노베이션이 간신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전은 국가 송배전망 및 전력 도소매시장을 완전 독점하고 있고, 자회사를 통해 발전시장도 60%를 점유하고 있는 독보적인 에너지 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매출액은 약 93조원으로 삼성전자 매출의 1/3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력, 천연가스, 열 등 주요 에너지 시장은 공기업 독과점으로 운영되고 있고, 나머지 시장마저 소수 대기업이 차지하면서 신규 진입도 없고 발전도 없는 고인물 시장으로 후퇴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와 정치권의 요금 통제로 공기업 재무상태가 상당히 열악해지면서 송전망, 수소관 등 미래 에너지를 맞이할 인프라 구축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5월 2일 본지와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미래포럼, 자원경제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서울에너지포럼에서 에너지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낡고 시대에 맞지 않는 에너지제도를 당장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은 에너지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마침 글로벌 에너지시장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까지만 해도 탄소중립이 대세였지만,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그리고 이후 출범한 트럼프 정부가 화석연료 회귀정책을 선포하면서 이제는 에너지안보, 에너지 패권싸움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에너지 패권지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알래스카에 매장된 100억배럴의 석유가스를 개발 및 수출하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총 사업비 440억달러가 투입되는 이 사업에 한국, 일본, 대만의 참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사업은 경제성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중동산 에너지 수입루트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에너지안보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알래스카 에너지는 한국까지 일주일이면 운송이 가능하고, 호르무즈해협이나 말라카해협 같은 병목구간도 없어 매우 안정적이라는 평가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막대한 양의 러시아 에너지가 아시아 시장으로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러시아 에너지는 동남아에 있는 싱가포르 허브에서 취급하기 힘들다. 한국이 아시아의 새로운 에너지 허브로 각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미국과 러시아 에너지 공급루트의 접점에 위치해 있고,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지역인 동북아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특히 지질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일본보다 유리하다.


한국이 싱가포르처럼 에너지허브 산업을 제대로 갖춘다면 강력한 에너지 안보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가장 저렴한 에너지 확보로 제조업의 부흥을 이끌 수 있다. 국가의 미래 먹거리와 기반을 동시에 다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는 6월 3일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관련 정책과 제도를 과감하게 개선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은정 공주대 국제학과 교수는 “한국에 에너지허브 기회가 오고 있다는 인식에 공감한다. 허브가 구축되면 어려운 정유 및 석유화학 설비를 다시 활용함으로써 지역경제 발전 및 인구 감소도 막을 수 있고, 일본과 협업하면 시너지를 더 올릴 수 있다"며 “그러기 위해선 시장 개방 등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세현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미국은 '라스트 카드'인 알래스카 에너지 개발을 일찍 꺼내들었다. 이는 그만큼 에너지 패권지위를 더 빨리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과 한국이 강력한 에너지 안보동맹을 맺으면 한국은 아시아의 에너지 패권국이 될 수 있고, 협력범위를 원자력까지 확대해 유럽, 중동, 동남아로 원전 수출까지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러시아 종전에 대비해 야말 및 아크틱 가스전, 동시베리아 에스포(ESPO) 프로젝트와의 협력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며 “한국이 에너지 분야에서 전래없던 훌륭한 기회를 맞고 있다는 것은 틀림 없다. 차기 정부가 이를 잘 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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