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생에너지(사진=AP/연합)
한때 투자자들은 물론 기업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경영 열풍이 식고 있다. ESG 펀드 수익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와중에 미국에서 ESG 논쟁이 정치화돼자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경영에서 ESG를 배제하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어 ESG란 단어가 존폐 위기에 놓이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8일 야후파이낸스가 인용한 리서치업체 모닝스타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ESG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지난해 4분기 50억 달러의 투자자금이 빠져나가 2022년 4분기부터 5개 분기 연속으로 순유출을 이어갔다. 작년 전체로 보면 ESG ETF에서 130억 달러가 순유출됐는데 이는 모닝스타가 첫 집계한 이후 최대 규모이자 유럽 ESG 시장에 유입된 118억 달러를 상쇄시킨 수준이다.
모닝스타는 또 지난해 4분기 일본 ESG 펀드에서 12억 달러가 유출됐다고 추산했다.
ESG ETF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투자열풍이 일기 시작하면서 시장 규모도 2017년 950억달러에서 2021년 3580억달러까지 불어난 바 있다.
이처럼 ESG ETF 투자 열기가 갈수록 냉각되고 있는 배경엔 투자수익률이 저조하기 때문인데 대다수는 기후변화 대응과 청정에너지에 연관돼있다. ETF 데이터 분석업체 트랙인사이트는 유엔(UN)의 17개 SGD(지속가능발전목표)별로 ESG ETF를 구분하고 있는데 13번 목표(기후 행동)와 연관된 ETF가 277개로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로 가장 많이 차지하는 ETF는 7번 목표(청정에너지)로, 83개에 달한다.
문제는 청정에너지와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오스테드, 선파워 등 청정에너지와 관련된 기업들로 구성된 'S&P 글로벌 청정에너지 지수'는 지난해 20% 넘게 하락한 데 이어 올들어서도 10% 가량 더 떨어졌다.
투자 열기가 식자 ESG ETF가 청산되는 사례도 목격됐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21년에 출시한 Goldman Sachs ActiveBeta Paris-Aligned Climate U.S. Large Cap Equity ETF(GPAL)를 지난달 12일 청산했다. 해당 ETF는 파기기후협약에 따른 탄소감축을 이행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는데 자금 유출이 지속되자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글로벌 ESG 평가기관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도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ESG와 관련해 고객들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ESG가 갈수록 정치화되고 있는 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온라인매체 제로헤지에 따르면 작년에만 미국에서 최소 165건의 '반 ESG' 법안이 발의됐다.
미 공화당은 ESG를 두고 '워크 자본주의'(깨어있는 척하는 자본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 환경과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의 의제에 대해 '자본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진보세력의 선동'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모닝스타의 알리사 스탠키비츠 지속가능성 연구 부국장은 “특히 그린워싱 논란 때문에 미 정치권에선 ESG 펀드 단속에 나섰다"며 “이는 투자수요를 냉각시켰다"고 설명했다.

▲블랙록 로고(사진=로이터/연합)
이런 가운데 미국 기업 경영진들은 정치권 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ESG란 단어를 배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는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ESG란 단어가 새로운 금기어로 떠올랐다"고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이끄는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6월 ESG가 너무 정치화됐다며 이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대표사례다. 핑크 CEO는 ESG 투자 확산에 공헌한 인물로 꼽힌다.
또 팩트셋에 따르면 S&P500 상장사들의 분기별 실적발표에서 경영진들이 언급한 ESG 횟수는 2021년 4분기 155건에서 작년 2분기 61건으로 쪼그라들었다.
텍사스주 법무장관 켄 팩스터는 이와 관련해 지난달 성명을 내고 “CEO들은 ESG 언급에 따른 법적 리스크로 고객들이 떠날 수 있음을 깨닫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ESG란 용어가 아예 사라져야 하는 주장도 나온다. 옥스퍼드대학교의 밥 이클리스 교수는 “ESG 투자라는 용어는 그냥 없어져야 한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일각에선 기후변화 대응 등이 여전히 화두인 만큼 ESG를 직접 언급하는 대신 '지속가능한 투자', '책임감있는 비즈니스', '에너지전환 투자' 등 다양한 표현을 활용하는 방법이 기업들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다고 야후파이낸스는 전했다. 코카콜라의 경우 2022년엔 '비즈니스 & ESG'란 제목으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작년엔 제목을 '비즈니스와 지속가능성'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