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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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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지금이 신재생에너지 R&D투자 늘릴 때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0.26 08:17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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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가정이지만 ‘만일 십오 년 전 녹색성장 때부터 신재생에너지를 기술기반의 국내 산업 육성 방향으로 이끌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전열에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안타깝게 당시에도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R&D보다는 보급 주도의 정책이 지배적이었다. 기술개발에 자금을 쏟기보다는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설치만 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으니, 아직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국산 보다는 당장 설치 가능한 수입산으로 물량 목표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 결과 국내의 태양광·풍력 발전 산업 생태계는 붕괴됐고, 오늘날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은 해외 종속형으로 변질됐다.

탄소중립도 좋고 넷제로도 좋고 2030 온실가스 감축도 다 좋지만, 장기적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국내 산업기반이 없고 부가가치 제고로 연결되는 글로벌 밸류체인 구축에도 실패한다면 좋다고 하는 이 모든 정책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무의미하다. 미국, 유럽, 중국, 호주, 일본 모두 자국의 기술과 산업, 자원 육성을 근간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정부는 최근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R&D 예산을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보조금 나눠먹기 식으로 무분별하게 집행된 재생에너지의 보급 관련 예산을 조정하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산업육성을 위한 R&D 예산은 이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일수록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우선되어야 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시장간의 역할이 분권화된 미국에서는 화석연료를 선호하고 재생에너지를 터부시했던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 오히려 재생에너지 보급속도는 역대 최대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 여부와는 상관없이 결과가 그랬기에 트럼프를 이은 바이든 행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에서 비교우위를 갖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팔 전쟁으로 인한 중동위기 고조, 미국의 경기침체설 재부상 등 거시경제 지표가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의 신재생 에너지 분야 투자가 끊이지 않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옥시덴털 페트롤리움은 탄소포집저장 사업인 스트라토스(Stratos)에 11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여기에는 아마존, 쇼피파이와 같은 이커머스 기업은 물론 휴스턴 텍사스 풋볼팀까지 가세했다. GE는 올해 해상풍력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는 데도 관련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R&D 예산을 줄이면서 일부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기도 한다. 사업성 갖춘 R&D는 굳이 정부 재정 지원없이 민간이 주체적으로 수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력 및 가스시장을 보면 이러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공공 물가안정 차원에서 철저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미국의 옥시덴탈도 바이든 행정부의 투자 인센티브 없이는 탄소포집 사업을 개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전 정부의 탈원전 내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 분야 투자를 게을리 하는 사이에 해외 유수 메이저들의 저탄소 전열은 재정비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에 이르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가혹한 에너지 전환 비용 청구서를 받게 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탈원전 정책 속에서 혼선을 겪었고 지금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비슷한 경험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치적 구호와 목표수치로만 점철되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대립구도 아래서는 지속가능한 기술개발과 산업생태계를 이룰 수 없다. 사회적 피로현상만 누적될 뿐이다.

송전 계통과 ESS 등 제반 장애요인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태양광과 풍력의 보급은 속도조절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동안 2030 NDC 목표에 매몰돼 물량위주로 추진된 부작용을 해소한 후 전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R&D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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