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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SK 실트론 직원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글로벌 시장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대형 인수합병(M&A)’ 소식이 최근 연이어 들려오자 우리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수십조원대 자금이 오가며 업종별 경쟁 구도나 산업 판도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매물을 찾고 있는 삼성전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 중인 대한항공 등 우리 기업들의 움직임도 전세계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게임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687억달러(약 93조원)가 들어간 ‘빅딜’이다. 미국 석유업체 엑손모빌은 600억달러(약 81조원)을 쏟아 셰일오일 시추업체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시스를 품기로 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일본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키옥시아와 WD의 경영통합은 우리 경제에 가장 직접적인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관측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WD는 반도체 메모리 사업부를 분리해 키옥시아홀딩스(옛 도시바메모리)와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두 기업이 합병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는 낸드플래시(낸드) 시장 내 경쟁 양상이 바뀔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자료를 보면 지난 2분기 기준 전세계 낸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31.1%), 키옥시아(19.6%), SK하이닉스(17.8%), WD(14.7%) 순이다.
합병이 성사될 경우 ‘규모의 경제’를 이뤄 삼성·SK의 점유율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특히 지분관계가 얽혀있는 SK하이닉스는 속내가 더욱 복잡하다. 키옥시아 최대 주주는 베인캐피털 등이 참여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이다. SK하이닉스는 이 컨소시엄에 지난 2018년 약 4조원을 투자했다. 사실상 ‘허락’이 필요한 셈이다. 일본 언론사들은 SK하이닉스가 양사 합병에 반대하고 있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SK하이닉스 측은 이와 관련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엑손모빌의 ‘통큰 베팅’은 간접적으로 우리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무력충돌 등으로 국제유가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 미국 최대 메이저 업체가 셰일오일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엑손모빌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지 않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유가 안정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또 다시 ‘셰일오일 붐’이 불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우리가 직접 수입하는 원유는 아니지만 전세계적으로 수요는 일정한데 공급이 늘어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경제는 원유 가격 등락에 큰 영향을 받는 구조다. 우리나라 정유사와 석유화학 업체들은 더욱 직접적인 수혜 또는 타격이 예상된다.
MS의 블리자드 인수는 우리 게임사들이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측된다. 블리자드의 주요 게임 IP를 확보한 MS가 클라우드·콘솔 게임 부문에서 독점적 지위를 행사할 수 있다. 한국 게임 업체들은 과금형 구조 등 낡은 구조로 국내에서만 돈을 벌어 ‘우물 안 개구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사업 확장이 절실한데 ‘공룡’이 탄생하면 뻗어나갈 수 있는 시장이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우리 기업들의 행보에 전세계 이목이 쏠리는 경우도 있다. ‘의미있는 규모의 M&A를 추진 중’이라고 공식화한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별도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 80조원에 이른다. 주력 업종인 반도체·IT 뿐 아니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바이오, 로봇 등에서도 빅딜이 일어날 수 있는 셈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도 글로벌 항공 업계에서는 중요한 이벤트다. 양사가 온전히 힘을 합칠 경우 전세계 7위권의 대형사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슬롯을 대거 토해내거나 화물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등 반쪽짜리 합병이 이뤄질 경우 외국 항공사들이 큰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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