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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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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핵폐기물] 스위스, 정부-지역회의-전담사업자 ‘3박자’로 방폐물 처리에 속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0.15 11:10

② 해외사례-스위스

작년 9월 고준위방폐장 부지선정…허가 절차 등 건설 진행 중

안전성 최우선 과제로 지역 주민들과 장기간 소통해 공감대 형성

“주민의견 경청의지 중요…설득 아닌 협력 존중 스위스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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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 조감도. (사진=스위스 연방에너지청)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다는 국내 원전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으로 지적됐다.

‘탈(脫)원전’ 정책으로 고사위기를 맞았던 국내 원전 산업에 다시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국내에 핵폐기물 처리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 신세가 되고 있다.

원전 산업 부활만큼 중요한 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다.

원전업계와 학계에서는 진정한 원전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되는 특별법안 입법 조차 국회에 발이 묶인 상태다.

에너지경제신문은 고준위 방폐장 시설 마련에 고충을 겪는 국내 현주소를 알리고 해외사례에서 해법을 찾고자 ‘갈 곳 없는 핵폐기물’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스위스, 핀란드, 프랑스 등 선진국을 찾아 현장의 생생한 사례를 소개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모았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국내 실태·대책

② 해외사례-스위스

③ 해외사례-핀란드

④ 해외사례-프랑스



[에너지경제신문/취리히(스위스)=김종환 기자] "스위스는 정부, 지역회의, 전담사업자의 3박자로 방사성 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작년 9월 스위스가 고준위 방페장 예정 부지를 선정했기 때문입니다. 내년에 NAGRA(나그라)가 허가 신청을 완료하고 정부가 이를 승인을 하면 본궤도에 오릅니다."

스위스는 내년에 전담사업자인 나그라가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위해 운영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는 절차를 앞두고 있다. 신청서가 정부의 승인을 거치면 그 다음은 연방의회로 공이 넘어간다. 연방의회까지 승인을 거치면 마지막 단계인 국민투표로 넘어가 국민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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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 부지 선정 이후 향후 계획. (자료=나그라)



부지 선정 과정 속에는 국가가 직접 나서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역할만 했던 정부, 주민들의 참여를 위한 기구인 지역회의, 방폐장의 부지선정부터 대화채널까지 구축해 주민 설득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나그라의 3박자가 있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지난 9월 4박 6일간 스위스 현지를 방문해 나그라를 찾아 펠릭스 글라우저(Felix Glauser) 홍보담당자에게 방폐장 부지를 어떻게 선정할 수 있었는지 향후 일정이 어떻게 되고 해결과제는 무엇인지 들어 보았다.

스위스 연방에너지청 파스칼 쿤지(Pascale.Kuenzi) 관계자, 북부 레게렌 지역회의 크리스토퍼 뮐러(Christopher Miller) 회장을 만나 정부와 지역회의의 역할을 이해하고 주민들의 반응도 물어보며 성공적인 방폐장 건설을 위한 조언도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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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레게렌 지역에 설치된 방문객 센터. (사진=나그라)



◇ "안전성 최우선 과제로 순조롭게 진행 중"

부지가 선정된 만큼 가장 큰 산은 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순조롭게 진행돼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안전성과 기술적 실현가능성에 관한 부지의 평가기준을 명시해 3단계로 나눠 단계적으로 축소해 제시했다. 최종으로 적합하다고 판단을 거친 북부 레게렌 지역의 선정에 따라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펠릭스 글라우저는 "부지 선정 절차의 목적은 스위스에서 저장소를 위한 가장 안전한 부지를 발굴하는 것"이라며 "6개 지역을 선정해서 자세히 살펴본 다음에 3개 지역을 선정해서 아주 자세히 살펴본 다음에 1개 지역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다만 승인 신청은 스위스 원자력 안전 검사국(ENSI)에서 안전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릴 경우 거부될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도 내놨다.

승인 절차에 대한 질문에 대해 파스칼 쿤지는 "심사를 거친 후 공개 청문회가 진행되며 그 후 정부가 프레임 승인 신청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등 승인 절차는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며 안전성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스위스가 얼마나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신경을 쓰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렇다 보니 국민들도 정파를 떠나 국가의 대승적인 과제 앞에 신뢰하며 참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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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의 참여 장면. (사진=나그라)



◇ 국가가 직접 나서는 한국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스위스

스위스는 국가가 직접 나서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스위스의 연방에너지청은 직접 개입하지 않고 나그라의 사업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난 1972년 방폐물 관리 전담사업자인 나그라 설립부터 48년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등 단계적으로 로드맵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펠릭스 글라우저는 "나그라의 권한은 지질 심층 저장소를 계획하고 건설하는 것"이라며 "수십 년간의 연구 끝에 견고한 과학적 기반을 만들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현재 지질 심층 저장소에 가장 적합한 부지를 제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고준위 방폐장 선정 부지인 북부 레게렌 지역은 취리히 시내에서 불과 20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앞서 나그라는 북부 레게렌 지역과 함께 쥐라 동부, 취리히 북동부 지역을 제안했다. 나그라는 연구 끝에 북부 레게렌 지역이 과학적으로 방폐장 건설에 최적지라고 판단했다.

과학적인 근거를 만들고 오랜 기간 동안 지역 주민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부지를 확정했다. 그만큼 기술적으로 인정을 받아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지역 주민들과 소통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정보를 제공하고 생산적인 토론도 한다.

특히 앞서 스위스는 지난 2012년 연방의회에서 총 5기의 원전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해체하기로 의결했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속도를 내는 국가들은 상위 10개국에 모두 들어가 있지만 스위스의 경우만 유일하게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은 방폐물에 대한 처리가 국민들의 안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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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의 참여 모습. (사진=스위스 연방에너지청)



◇ 방폐물 컨트롤타워 나그라 전담사업자의 역할

나그라는 방폐장 부지선정부터 관리시설 건설·운영, 저장·처분 분야 연구개발 기획, 대국민 홍보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전담할 수 있는 사업자를 설립하고 정부가 아닌 전담사업자로 하여금 전문성을 가지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

프랑스의 ANDRA, 핀란드의 POSIVA, 스웨덴의 SKB 등도 이같은 방식으로 전담사업자가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안정적인 방폐물 처리를 위해 먼저 시행한 나라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도 전담사업자가 전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방안이 빨리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으로 보면 고준위 방페물을 처리해야 하는 깊은 지질학적 저장소의 기본 개념은 같다. 스위스도 방식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지질학적 저장소를 통해 고준위 방폐물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다른 지질학과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암석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저장소를 건설할 때 같은 암석형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저장소의 개념에 대한 세부적인 부분들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펠릭스 글라우저는 "북부 레게렌 지역이 방폐장의 부지로 선정되었을 때 어떤 지역도 기뻐하지 않았다"며 "소통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국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기꺼이 수용했다"고 밝혔다.

나그라는 지역 주민들에게 고준위 방폐장을 설명하기 위해 컨테이너로 방문객 센터를 마련했다. 이곳에서 지역 주민들은 고준위 방폐장 건설과 관련해 궁금한 점을 묻거나 찬반 의견을 공유하며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펠릭스 글라우저는 "10년 동안 연구 속에 많은 지식이 쌓였고 지역 주민들도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며 "지역 주민들을 동등한 동반자로 존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도 나그라가 기술력을 바탕으로 10년의 오랜 기간 동안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줬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신뢰도를 쌓아 갈 수 있었다고 전반적으로 총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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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 장면. (사진=스위스 연방에너지청)



◇ 소통 거버넌스인 지역회의 성공 모델로 꼽혀

여기에 더해 43개 지역의 133명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 지역회의의 모델이 있다. 지역회의는 지질 심층 저장소 계획 절차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다만 지역회의는 어떠한 사항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조직은 아니다. 4개의 전문 그룹이 있는데 안전 문제를 다루며 오는 2050년 지역 발전 비전을 개발하고 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요구 사항을 종합적으로 처리한다. 여기에는 인근인 독일의 대표자도 참여하고 있다. 이 절차는 스위스 연방에너지청에서 주도하고 있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을 묻는 질문에 대해 크리스토퍼 뮐러 회장은 "지역 주민 중 일부는 지하 저장소에 반대하고 일부는 지지하며 아직 알 수 없는 사항들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극단화가 있다"며 "지역회의에는 비판적인 단체뿐만 아니라 지지하는 단체도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러한 단체들은 토론을 통해 협력하며 최상의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면서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의견을 표출하는 투명한 절차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최우선 순위로 안전을 꼽았다. 그 다음은 환경 친화성, 공간 계획 기준 및 모든 관련 당사자들의 호환성과 수용성 순으로 지역 주민이 거부 권한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역회의는 주민들의 참여를 위한 기구로 지역에서 나오는 지식이 과정에 반영되도록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회원들이 의견을 나누며 마지막에 지역 지방자치단체에게 전달할 권고안을 제시하고 있다.

스위스의 현장에서 고준위 방폐장 건설 진행사항을 들으면서 수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40여년간 방폐물 관리정책이 제자리걸음을 거듭한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문적으로 방폐장만 전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장기적으로 소통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신뢰를 쌓아 나갈 때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을 향해 크리스토퍼 뮐러 회장은 "잠재적인 위치의 주민을 초기에 참여시키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명확한 역할 분담, 단계적인 접근을 갖는 투명한 절차 등이 있을 수 있다"며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진정한 의지는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설득이 아니라 협력을 존중하는 것이 스위스의 성공 비결"이라고 조언했다.


axkjh@ekn.kr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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