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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핵폐기물] 韓, 임시저장 시설 7년뒤 포화…고준위방폐장 특별법, 2년째 국회 내 '낮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0.09 10:29

① 국내 실태·대책
원전 부지 내 핵폐기 임시저장시설, 2030년쯤 포화
고준위방폐장 특별법, 국회 상임위 소위서 계류중
고준위방폐장, 부지선정부터 영구시설 마련 '37년'
전문가들 "진정한 원전 강국, 에너지 폐기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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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신한울 원전 1호기.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다는 국내 원전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으로 지적됐다. ‘탈(脫)원전’ 정책으로 고사위기를 맞았던 국내 원전 산업에 다시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국내에 핵폐기물 처리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 신세가 되고 있다.

원전 산업 부활만큼 중요한 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다. 원전업계와 학계에서는 진정한 원전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되는 특별법안 입법 조차 국회에 발이 묶인 상태다. 에너지경제신문은 고준위 방폐장 시설 마련에 고충을 겪는 국내 현주소를 알리고 해외사례에서 해법을 찾고자 ‘갈 곳 없는 핵폐기물’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스위스, 핀란드, 프랑스 등 선진국을 찾아 현장의 생생한 사례를 소개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모았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국내 실태·대책

② 해외사례-스위스

③ 해외사례-핀란드

④ 해외사례-프랑스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 기자] 정부가 ‘원전 르네상스’를 목표로 두고 원전 확대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발전소 건설만큼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설치다. 원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려면 고준위 방폐장을 설립해야 한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란 사용후 핵연료 등 열과 방사능 농도가 높은 폐기물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사용후 핵연료가 대부분이다. 원자력발전은 핵연료를 원자로 속에서 핵분열을 일으켜 나오는 열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한다. 사용후 핵연료란 이 때 연료로 사용되고 난 뒤 남은 핵연료물질이다.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가장 안전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방식은 심층처분이다. 높은 열과 방사선을 방출하는 고준위 방폐물을 처분용기에 담아 지하 500~1000m 천연암반 내 시설에 영구 보관하는 방식이다.

고준위 방폐장을 설립할 법적 근거가 될 관련 특별법이 2년 전 발의됐지만 아직도 국회에서 계류중이다. 이에 에너지업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미 사용후 핵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할 ‘골든타임’이 지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장 법을 제정한다고 해도 고준위 방폐장이 지어지기까지 37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고준위 방폐장에 중간저장시설과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을 함께 설치할 계획이다. 부지선정 기간만 13년 정도 걸린다.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설 수 있는 지역을 사전에 조사하고 선정된 지역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한다. 주민 동의 등 절차를 거쳐 첫 삽을 뜨면 7년 만에 중간저장시설을 완공한다. 이후 17년 동안 영구격리시설을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 한국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설치 진행 현황

연도 내용
1988년 한국전력공사가 중간저장시설 가동시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부지내에서 관리
1994년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건설의 저장방식을 습식 또는 건식으로 결정
1998년 방사성폐기물 부지규모 및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건설 결정
2004년 원전 부지내 임시저장능력을 확충해 사용후핵연료를 2016년까지 각 원전부지 내에서 관리
2012년 사용후핵연료관리대책을 수립함에 있어 공론화위원회의운영을 통한 사회적 수용성 최대한 확보
2013~2015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추진 및 대정부 권고안 제출
2016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절차와 방식 등을 중심으로 단계별 로드맵 제시
2017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국정과제 60번에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검토’ 결정
2018년 사전의견수렴 및 공론화 방안 마련을 위해 정책건의서 정부 제출
2019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발족 및 공론화 활동의 대정부 권고안 제출
2021년 방폐물 관리법(제6조 2)에 따른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수립
2021~2022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3가지 법안 발의
(자료=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 韓,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 시설물 포화 상태

한국은 원전을 운영한 지 50년이 돼가지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을 세울 부지 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 시점은 1978년이다. 1980년대부터 부지를 선정하려고 추진했지만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지역 주민 반발이 심한 탓에 무산됐다.

지금까지는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분장과 중간 저장시설이 없어 원전 부지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달한 상태다. 원전 부지에서 임시로 사용하는 저장시설 마저도 당장 7년 뒤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차고 넘치기 시작하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2월 발표한 ‘사용후 핵연료 발생량·포화 전망 재산정 결과’에 따르면 오는 2030년쯤이면 대부분의 저장시설이 포화될 상황이다.

앞서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가 ‘9차 전력기본계획’을 전제로 산정한 포화 시점보다도 1∼2년 빨라졌다. 산업부가 10차 전기본에 따라 저장시설 포화 시점을 재산정한 결과, 사용후 핵연료 예상 발생량이 지난 2021년 12월 당시 63만5329다발에서 79만3955다발로 1년여사이 15만8626다발 늘어나면서다.

주요 원전별 사용후 핵연료 포화율이 고리 87.5%, 한빛 77.9%, 월성 75.5%, 한울 74.7% 등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한빛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 시점은 오는 2031년에서 2030년으로 1년 빨라졌다. 경상북도 울진군 한울원전은 기존 2032년에서 2031년으로, 경북 경주시에 있는 신월성원전은 애초 2044년에서 2042년으로 당겨졌다.

반면 부산시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전의 경우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 시점이 기존 2031년에서 2032년으로 늦춰졌다.

9차 전기본에서는 고리 2호기의 조밀저장대(핵연료 간격을 줄여 전체 저장용량을 늘리는 장치) 설치를 검토하지 않았지만 10차 전기본에서는 해당 원전의 계속운전이 반영됨에 따라 조밀저장대를 설치하는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리원전의 습식저장조에는 2032년쯤 사용후 핵연료가 포화될 예정이다.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건식저장시설)을 확충하지 못할 경우 고리원전(고리 2~4호기, 신고리 1·2호기)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 관련 법안 발의 현황

제안대수 일시 대표 발의 의안명 심사진행상태
21대  국회 2022년 8월 이인선 국민의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소위심사
2022년 8월 김영식 국민의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등에 관한 특별법안
2021년 9월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20대 국회 2019년 1월 김경진 민주평화당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 마련 및 안전관리 강화 촉구 결의안 임기만료폐기
2018년 7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2016년 11월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 부지선정 법률안
2016년 11월 정부입법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절차 및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안
(자료=국회 의안정보시스템)



◇ 국회,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 발의 3건…2년째 ‘낮잠’ 중

고준위 방폐장을 짓기 위한 첫 발걸음은 특별법 통과다. 국회에서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부지를 선정하고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설 지역 주민들에게 지원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고준위 방폐장 관련 법안은 20대 국회인 지난 2016년 11월 박근혜 전 정부에서 정부안으로 처음 제출됐다. 이후 의원법안도 3건이 추가로 발의됐지만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2020년 5월 임기 만료에 맞춰 모두 폐기됐다.

현재 21대 국회에서는 고준위 방폐장 관련 특별법 총 3건 이 계류중이다. 첫 관문인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특별법을 발의한 의원은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영식·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이다.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8월 발의한 법안에는 방폐장 유치 지역에 대한 특별지원금 지원과 공공기관 이전, 지역주민 우선 고용 등의 지원 방안이 담겼다.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제일 난관이 될 주민 수용성을 높이고자 지원안을 마련한 것이다. 부지 확보나 처분시설 운영 시점은 정부의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따르도록 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당 김영식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은 ‘부지내저장시설에 저장된 사용후 핵연료를 2043년부터 중간저장시설로 이전하며 2050년부터는 사용후 핵연료를 처분시설로 이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관리시설 부지를 2035년 이내에 확보하고 중간저장시설을 2043년, 처분시설을 2050년에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관리시설 관련 시점도 명시했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1년 9월 발의한 법안에는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현재 건설·운영 중인 발전용 원자로의 설계수명 기간에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만 저장하도록 규정한 셈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여야 위원들은 ‘방폐장 저장용량 규모’와 ‘방폐장 확보 시점 명시’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김성환 의원은 ‘설계수명 기간 동안의 발생 예측량’을 기준으로 두고 수명이 끝나면 저장시설 용량을 늘릴 수 없도록 했다. 반면 김영식·이인선 의원은 저장용량 기준에 대해 ‘원전운영허가 기간 동안 발생 예측량’으로 명시하면서 원전 수명 연장의 가능성을 열어놨다.

여야 대립도 첨예하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제2의 탈원전을 획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처리에 적극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야당은 논의를 통해 최종처분시설 목표 시점을 명시하고 규모 역시 계속운전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 수명을 기준으로 한 발생량으로 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으로 국정감사가 시작되고 내년 4월 총선이 예정돼 있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미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 통과 ‘골든타임’이 지난 셈이다. 이대로 국회 임기가 끝나면 특별법안은 자동 폐기되고 내년 총선 후 구성되는 차기 국회에서 다시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 원전 운영 상위 10개국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관련 현황

국가 가동 원전 수 현황 부지명 연도
미국 93기 전국 단위 신규 고준위 방폐장 입지 조사 실시 발표   2023년
프랑스 56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설치 허가 신청 시제오 2023년
중국 55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부지 선정 완료 베이샨 2020년
러시아 37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을위한 지하연구시설(URL) 건설 니즈네칸스키 2018년
한국 25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발의(처분시설 부지선정 전)   2021년
캐나다 19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후보지 2곳 조사   2020년
인도 19기 처분시설 부지 없음/습식재처리로 관리    
우크라이나 15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을 위한 시설 건설 계획 카몐스코예 2023년
일본 10기 훗카이도 2개 지역 문헌 조사 실시   2020년
영국 9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4개 후보지 선정   2022년
스웨덴 6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사업 허가 발급 포르스마크 2022년
핀란드 5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운영 허가 신청 온칼로 2021년
스위스 4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 선정 완료 레게렌 2022년
* 자료=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 전문가 "핵폐기물 처리 방안 없는 원전 확대 정책은 사상누각"

에너지·원전 전문가들은 이미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고 나아가 원전을 확대한다는 목표라면 사용후 핵연료 처분 계획도 발 맞춰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의융합대학 학장은 "방폐장 없이 원전을 운영한다는 건 쓰레기 매립장이나 처분에 대한 계획없이 쓰레기를 계속 늘린다는 말과 같다"며 "정치권에서 고준위 방폐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원전을 확대할 수 없다는 데에 강력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특별법을 빨리 통과시켜 방폐장 설립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게 국회가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라며 "정부도 원전 확대 계획만 펼칠 게 아니라 공론화위원회 등 고준위 방폐장을 설치하기 위한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핵 폐기물 처리에 대한 계획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전 확대 정책을 펼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폐기물 정책이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가 원전 산업을 복구하고 확대 및 수출까지 하려면 폐기물 저장소가 무조건 필요한 상황"이라며 "페기물 시설에 대한 계획을 만들고 차근차근 수립해나가야 우리 원전도 경제성이 있고 친환경적이면서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원전을 청정에너지화 하려면 폐기물 처분장이 필요하다"며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서도 폐기장 확보에 대한 계획을 전제로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라고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권에서도 발전원별 이념 싸움으로 접근할 게 아니다"라며 "에너지 믹스가 필요한 상황인 만큼 발전원 시설들을 어디에 어떻게 설치해야 하고 이를 지역에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결법을 정치권에서 풀어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동욱 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일부 원전 반대론자들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고준위 방폐장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위험할수록 빨리 처리 시설을 마련해서 핵폐기물을 보관해야 한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처리시설이 세워지는 걸 미룰 수없다"고 말했다.

정 전 학회장은 "오히려 우리가 한 발자국 앞서 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며 "전세계적으로 원전 능력을 인정받은 만큼 고준위 방폐장 시설에 대해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고준위 방폐장 설립을 빨리 시작하고 안전하다는 게 확인이 된다면 새로운 수출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claudia@ekn.kr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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