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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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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기업 베셀①] 오너리스크, 문제의 알파이자 오메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9.18 16:08

올 7월 매각시도 실패 후 유상·무상증자 카드 꺼내



디스플레이 업종 경험 없는 오너, 장기 대안 부재



유증 대금, 차입금 상환과 적자 감내 용도 '미봉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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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박기범 기자] 통상 오너리스크는 오너의 사법적인 문제와 연동되곤 하지만 베셀은 다르다. 오너의 의지와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유·무상 증자 역시 주요 내용들이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5일 디스플레이 제조 장비를 생산하는 코스닥 상장사 베셀은 주주우선공모 방식으로 1337만919주를 유상증자해 359억원을 조달하기로 발표했다. 구주 1주당 신주 1.0127829800주를 배정하는 것이다. 또 소유 주식 1주당 2주의 비율로 신주를 무상으로 배정하는 증자도 시행한다.

요약하면 100% 유상증자 및 200% 무상증자를 동시에 발표한 것으로 100주를 보유한 주주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300주를 받는 셈이다. 베셀 이사회는 소액주주들에게 2배 무상증자라는 달콤한 유인책을 제공했다. 하지만 궁여지책이라는 지적이다.

베셀은 현재 총체적인 난국이다. 그중에서도 오너리스크는 베셀을 특히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우선 현 경영진이 베셀을 경영할 의지가 있는지부터 불분명해 보인다. 현재 베셀의 최대주주는 팝콘TV를 운영 중인 THE E&M(이하 더이앤엠)이다. 더이앤엠은 올 2월 베셀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그런데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매각을 시도했다. 단기간 급성장을 시켜 비싼 값에 파는 것이 아니고, 올 2월에 인수한 가격과 같은 가격에 매각하려고 했다.

투자금 회수(Exit) 기간이 단기인 점, 금액이 같은 점 등을 고려할 때 매각에 실패하니 현 상황을 타계할 다른 방법으로 유·무증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 자금 활용 방식에 장기 계획 없어


유상증자 자금 활용 방식에서도 현 최대주주 측의 경영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베셀의 유상증자 공시는 유증 이후 회사의 장기적인 경영 방향이 담겨져 있지 않다. 향후 예상 적자 금액만 담겨 있다.

공시에 따르면 베셀은 자금 유입 시 우선 180억원은 차입금을 상환하고 나머지는 운영자금으로 쓸 계획이다. 운영자금은 국책 과제를 수행하는 데 30억원, 예상 적자를 감당하는데 145억원을 쓸 예정이다. 베셀의 예상 자금수지에 따르면 올 3분기부터 내년 4분기까지 도합 221억원가량의 자금의 순지출이 예상된다.

통상 기관투자자 등 장기 보유 주주를 설득할 때는 향후 성장 계획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번 베셀의 유상증자는 성장 계획이 없다. 지금까지의 빚을 갚고 내년 예상 적자를 메꾸는데 쓰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유상증자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 겸직 중인 ‘모든’ 등기이사, 디스플레이 제조와 무관


베셀의 등기 이사진들은 더이앤엠과 겸직 중인데 두 회사를 동시에 경영하는 것에 시너지가 적어보인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더이앤엠의 주력 서비스인 팝콘TV는 성인용 인터넷 방송이다. 그런데 베셀은 제조업이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으로 업태부터 다르다. 게다가 더이앤엠은 내수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 반면 베셀은 수출 중심이다. 또한 더이앤엠은 소비자와 맞닿아있는 전방 산업인데 반해 베셀은 후방 산업이다. 즉, 양 사는 사업의 골격 자체가 다르다.

아울러 전문성도 의심스럽다. 경영 전반에 대한 주요 의사 결정을 해야하는 이사진들 중 디스플레이 사업 종사자는 없다. 과거 권현기 대표이사는 조선기자재 제조사를, 신환률 이사는 자동차 부품사 세원을 경영한 이력이 있을 뿐이다. 김태규 이사는 더이앤엠 이외의 주요 경력이 없다. 즉, 단 한 명의 등기이사도 디스플레이 산업과 연이 없었다.

이사진들의 전문성 부족은 베셀이 처한 문제점인 매출처 편중 문제를 해결하는데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베셀은 중국 2위 디스플레이 업체인 CSOT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80%를 넘어섰다. 2020년 이후 중국 1위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와의 거래가 중단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매출처 편중 문제는 교섭력을 약화시키고, 주요 거래처의 경영 환경 변동에 직격탄을 맞을 위험이 높인다. 게다가 디스플레이 장비산업은 후방 산업으로 거래처 후보들의 규모가 베셀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 성장 불확실성 커져… CSOT 의존도가 발목


이번 증자를 위해 실사를 한 상상인증권은 "디스플레이 장비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주요 매출처인 디스플레이 제조사에 대해서는 다소 제한된 교섭력 갖는다"면서 "디스플레이 산업이 기술이 아닌 가격으로 경쟁하는 상황이 심화되면서 베셀과 같은 디스플레이 장비회사들의 교섭력은 오히려 악화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CSOT 역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CSOT의 대표는 한국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인이다. LG디스플레이 부사장까지 지냈던 김우식 전 대표는 고문으로 물러나고 자오 준(Zhao Jun)이 신임 대표가 됐다.

이는 베셀에 악재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베셀은 CSOT와의 공급계약 관련 3차례 공시가 있었지만 올해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인증권은 "베셀은 CSOT 의존도가 매우 높아져 향후 실적도 CSOT의 성장 사이클에 따른 불확실성에 노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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