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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과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박수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보건복지부 산하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9월 1일 공청회를 열고 국민연금 개편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했다.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내놨지만, 요약하면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향후 5년에 걸쳐 12% 또는 10년에 걸쳐 15% 또는 15년에 걸쳐 18%까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연금 받는 나이를 현행 65세(2033년)에서 68세(2048년)로 높일 것을 제안했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연금의 건강을 체크해서 국회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맨 먼저 재정계산위가 보고서를 내면 정부는 여론을 수렴한 뒤 대통령 승인을 거쳐 10월말까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국회에 제출한다.
국민연금은 1988년 출발했다. 지금까지 두 번, 1998년 김대중 정부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손질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 연금 개혁을 추진 중이다. 심각한 저출생·고령화 추세 속에서 연금을 고쳐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그러나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면 모두가 손사래를 친다. 윤 정부는 과연 임기 내 국민연금을 뜯어고칠 수 있을까?
◇ 1차 개혁안, 뭘 손봤나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급여 수준(소득대체율)을 70%에서 55%로 낮추고, 연금을 타는 나이를 2013년 이후 5년 단위로 한 살씩 높인다는 내용이다.
당시 국회에선 야당인 한나라당의 힘이 가장 셌다. 1998년 9월 한나라당은 급여 수준을 60%로 낮추는 독자적인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냈다. 정부안대로 55%까지 낮추면 근로자의 최저 노후생활 보장이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국회는 같은 해 12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급여 수준은 한나라당 뜻대로 60%가 됐고, 수급 개시 연령은 정부 뜻대로 2013년부터 61세로 높아졌다. 오는 2033년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로 높아지는 것은 바로 이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 반쪽에 그친 2차 개혁안
참여정부 시절 개혁안은 노무현 대통령이 뒤에서 밀고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총대를 멨다. 2003년 8월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개선 공청회를 가졌다. 이때 재정계산이 처음 실시됐다.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2047년에 기금이 바닥을 드러낸다는 계산이 나왔다.
정부는 애초 세게 나갔다. ‘더 내고 덜 받는 안’을 제시했다. 보험료율을 9%에서 2010년부터 5년마다 1.38%포인트씩 올리자는 내용을 담았다. 이렇게 하면 2030년 보험료율이 15.9%까지 오른다. 소득대체율은 60%에서 50%로 낮추자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정안은 2007년 국회에서 ‘그대로 내고 덜 받는’ 식으로 정리됐다. 보험료율은 9%에서 바뀌지 않았다. 대신 소득대체율은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로 낮추도록 설계됐다. 소득대체율 하향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덕에 기금 소진 시점이 좀 뒤로 미뤄졌다. 그러나 본질적인 개혁과는 거리가 있다.
◇ 기회 흘려보낸 문재인 정부
2018년 8월 4차 재정계산을 두고 여론이 들끓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뒤 재정계산위원회가 공청회에서 개선안을 공개했으나 이미 대통령이 ‘퇴짜’를 놓은 뒤였다. 재정계산위는 소득대체율을 45%로 높이되 보험료율을 2%포인트 즉각 인상하는 안 등을 제시했다.
2018년 12월 복지부는 4가지 안을 담은 종합운영 계획안을 내놨다. 그 중 하나는 맥빠진 ‘현행 유지’다. 연금 개혁은 욕 먹을 각오를 하고 밀어붙여도 될까말까다. 정부가 연금법 개정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데 표에 민감한 국회가 팔 걷고 나설 리가 없다. 그렇게 연금 개혁은 물건너갔다.
국회 의석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가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게 못내 아쉽다. 2020년 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법도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무슨 이유인지 연금 재정의 둑을 쌓고 보장성을 강화할 기회를 흘려보냈다.
◇ 3차 개혁 짐은 윤석열 정부로
지난해 2월 대선 토론에서 윤석열·이재명·안철수 후보는 국민연금 개혁에 뜻을 모았다. 그만큼 현 정부 임기 안에 개혁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크다.
현재 국민연금 개혁은 두 갈래로 진행 중이다. 먼저 국회는 연금개혁특위 아래 민간자문위를 운영 중이다. 1기 자문위는 3월 경과보고서를 특위에 제출했다. 하지만 보험료율(9%), 의무가입상한(59세), 수급개시연령(2033년 65세)을 모두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을 뿐 똑 부러진 방안을 제시하진 못했다. 연금특위는 오는 10월까지 활동하는 2기 민간 자문위를 출범시켰다.
윤 정부 역시 10월까지 국민연금 종합운영 계획을 확정해 국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정부가 과연 단일안를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후 본격적인 개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연금 개혁은 법 개정 사안이라 국회가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다.
내년 4·10 총선은 국민연금 개혁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 지형이 이어지면 난관이 예상된다. 전통적으로 진보 민주당은 연금개혁에서 소득대체율 상향을 중시한다. 반면 보수 국민의힘은 재정 안정에 무게를 둔다.
이번에 재정계산위가 내놓은 개선안엔 소득대체율 부분이 빠졌다. 소득대체율을 중시하는 위원이 표결에서 퇴장하는 일도 있었다.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경우 소득대체율부터 손보자고 나설 게 틀림없다.
총선 결과 여대야소로 지형이 바뀌어도 연금 개혁이 일사천리로 이뤄지길 바라는 건 무리다. 그만큼 연금개혁, 특히 보험료율 조정은 여야 모두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1차, 2차 사례에서 보듯 국민연금 개편은 여야 간 ‘기브 앤 테이크’가 불가피하다.
이왕 대선 토론에서 뜻을 모았으니, 여야 지도자들이 국민연금 개혁을 협치의 모델로 삼으면 좋으련만.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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