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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금융·마약·부동산 등 여러 현안을 두고 핑퐁질을 반복하면서 ‘덮어두자’는 식의 정치권 관성은 결국 세계잼버리대회 파행이라는 문제를 야기시켰다. 문제 해결을 제쳐두고 남 탓만 반복하던 정치권의 고질병으로 결국 국제 망신만 얻은 셈이다. 하필 잼버리 기간 동안 숨 막히는 폭염이 이어지는 등 불가피한 점도 있었지만 간척지인 새만금에 야영장을 마련했으니 그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형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미리 알았을 터다. 대회 개최 전부터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우려도 이미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회 기간 중에도 ‘곰팡이 달걀’과 시중보다 비싼 ‘바가지 얼음컵’ 등 먹거리 문제에 수백명이 탈진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영국과 미국 등 일부 참가국들이 텐트를 접고 퇴영하기도 했다. 세계 행사인 만큼 준비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5년이 넘는 준비 기간, 5명의 공동위원장, 1000억원의 예산이 무색할 정도로 부실하게 진행됐다.
나름의 기지를 발휘해 전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아이돌 그룹들의 공연으로 겨우 마무리했지만 스카우트 대원들이 떠난 자리에는 정쟁만 남았다. 공동위원장 5명에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3개 부처 장관이 선임됐다. 그러다 보니 관가에서는 책임이 분산돼 버렸다.
정계에서는 여야가 유치 시기와 개최 시기를 두고 다투고 있다. 여야는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던 문재인 전 정권 때 유치됐고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 개최했다는 점에서 해결보다 정쟁에 힘을 쏟고 있다. 몇 년 전 풍경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지난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을 마무리한 뒤 국민의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치한 결실’, 더불어민주당은 ‘짧은 기간 준비를 잘한 덕’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과 상반되는 말이 있다. ‘반구제기(反求諸己)’다. 화살이 적중하지 않았을 때 본인에게서 원인을 찾는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 남을 탓하지 않고 본인의 자세와 실력을 탓하는 자세다. 핑계댈 거리는 지천에 깔렸다.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서, 입고 나온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보기 싫은 사람을 마주쳐서 등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남 탓 하기는 쉽다. 하지만 한 나라의 정책을 좌우하는 사람들이라면 스스로를 먼저 살펴 문제점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채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