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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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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인종 우대정책 폐지,더 팍팍해진 미국[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7.02 00:14
USA-RACE/COLLEGES

▲소수인종 우대 정책 찬성파와 반대파가 6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각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연방 대법원은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사진=로이터/연합


<요약> 미국 연방 대법원이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앞으로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은 명문대 입학의 문이 더 좁아졌다. 백인과 아시아계 학생들에겐 문이 더 넓어졌다. 이번 판결은 기업 채용 관행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수십년 간 미국의 관용과 다양성을 상징해온 정책이 폐지된 것은 못내 아쉽다. 공무원 채용과 대학입시에서 소득과 지역에 따라 일부 계층을 우대해온 한국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소수인종 우대 정책 폐지로 미국이 시끌벅적하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6월 29일(현지시간) 사립 하버드대와 공립 노스캐롤라이나대가 시행 중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두 대학이 입학 전형에서 흑인과 히스패닉계를 부당하게 우대하고 백인과 아시아계를 차별했다고 봤다. 이것이 평등보호(Equal Protection)를 규정한 수정헌법 14조를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적인 법원이 아니다"라며 "법원의 결정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거친 반응을 보였다. 현재 대법원은 전체 9명 중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구성돼 있다. 보수 공화당 출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이다. 앞서 지난해 5월엔 대법원이 낙태 허용 판례를 뒤집을 거란 보도가 나왔다. 낙태와 소수인종우대 정책은 내년 미국 대선에서 뜨거운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대학입시와 공무원 채용에서 소득과 지역을 기준으로 일부 계층을 우대한다. 장차 이민자가 늘면 인종이 기준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처럼 치열한 찬반 논쟁이 예상된다.


◇ 어퍼머티브 액션이 뭔가

1961년 진보성향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행정명령(10925호)에 서명했다. 공무원을 채용할 때 인종, 신조, 피부색, 출신국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선발하는 ‘적극적인 행동’(Affirmative Action)을 취하라는 내용이다. 1965년 민주당 출신 린든 존슨 대통령 역시 비슷한 내용의 행정명령(11246호)를 발동했다.

1960년대는 미국 민권운동이 꽃을 피운 시기다. 1963년 8월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수도 워싱턴 DC에서 저 유명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a a dream)라는 연설로 미국은 물론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이어 1964년 역사적인 민권법이 시행됐다. 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종교, 성(性)에 따른 차별을 금지했다. 자연스럽게 어퍼머티브 액션은 미국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정책으로 기업 채용과 대학 입시에 뿌리를 내렸다.


◇ 소수인종 우대는 정의에 부합하는가

어퍼머티브 액션은 줄기차게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명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한 장(제7장)을 이 논쟁에 할애했다.

찬성론자들이 제시한 논거는 세가지다. 첫째, 시험 격차 바로잡기다. "사우스브롱크스의 열악한 공립학교에 다닌 학생이 학업적성시험(SAT)에서 700점을 받았다면,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일류 사립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700점을 받은 것보다 더 잘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의 사우스브롱크스는 흑인과 히스패닉 밀집 지역이다. 어퍼이스트사이드는 거주자의 약 80%가 백인인 부자동네다. 이 논리는 딱히 반박할 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 과거의 잘못 보상하기다. 소수인종 학생들을 불리한 처지에 몰아넣은 역사적 차별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이들을 우대해야 한다는 논리다. 대표적인 차별은 흑인 노예제일 것이다.

하지만 보상 논리는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한다. "풍요로운 휴스턴 교외에 사는 흑인 학생이 그들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백인 여학생보다 더 큰 혜택을 누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대답이 군색해진다. 사실 흑인이나 히스패닉 학생 중에도 부모가 의사·변호사·교수 등 전문직이거나 재력이 풍부한 사람이 꽤 많다.

셋째, 다양성 증대 논리다. 학교에 여러 인종이 고루 섞여 있으면 서로에 대해 더 배울 수 있고, 소수인종 학생들이 공직이나 전문직으로 갈 경우 지역 발전과 공동선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그에 속한 학생들의 자부심을 훼손하고, 인종 간 긴장을 높이며, 백인의 분노를 유발할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요컨대 소수인종 우대 정책은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데다 득보다 해가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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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있는 미국 최고 명문 하버드대학교의 모습. 하버드대는 신입생을 선발할 때 흑인과 히스패닉계 등 소수인종을 우대했으나 연방 대법원은 이같은 관행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사진=AP/연합뉴스



◇ 아슬아슬한 판결의 연속


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1978년에 처음 나왔다. 해병 장교 출신 앨런 바키는 캘리포니아대(UC) 데이비스 의대에 응시했으나 두 번 떨어졌다. 바키는 소송을 냈다. 주 대법원은 바키의 손을 들어주면서 입학 허가를 명령했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은 어퍼머티브 액션이 헌법과 민권법에 부합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UC 데이비스 의대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은 지나친 감이 있다며 폐지를 명하는 한편 바키를 입학시키라고 명했다. 경계선에 선 법원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92년 백인 여학생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셰릴 홉우드는 텍사스대 로스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한 자기는 떨어진 반면 점수가 낮은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은 붙었기 때문이다. 1심은 대학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홉우드의 편에 섰다. 텍사스대는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연방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항소심 판결이 최종심이 됐다. 항소심 판결은 관할권이 있는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미시시피주에 적용됐다.

2003년 바바라 그루터는 미시간대 로스쿨을 상대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 대법원은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수정헌법 14조(평등보호 조항)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2016년에는 아비가일 피셔가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를 상대로 위헌 소송을 냈으나 연방 대법원은 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합헌 판결을 내렸다.

그러다 마침내 2023년 6월 연방 대법원이 종례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연방 대법원은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FA·Students for Fair Admissions)이란 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소수인종 우대 정책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SFFA는 2만여명의 학생과 학부모를 회원으로 둔 단체로, 백인과 아시아계 학생들이 명문대 입학에서 역차별당하지 않도록 지원한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학생은 인종이 아닌 개인으로서 경험을 바탕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의 흐름에서 보듯 소수인종 우대 정책은 합헌과 위헌의 경계선을 걸었다. 그러다 결국 보수가 지배하는 연방 대법원이 결정타를 날렸다.

이번 판결은 대학을 넘어 기업 채용 관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판에서 구글, 애플, 메타플랫폼(페이스북) 등 약 80여개 기업은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지지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냈으나 소용없었다. 앞으로 누군가 채용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소송을 내면 기업들은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


◇ 국내에도 영향 미칠 것

미국은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자본주의의 천국이지만 빌 게이츠가 세운 자선 재단 사례에서 보듯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숨통을 터준다. 소수인종 우대 정책은 초점을 개인에 두면 억울한 백인 학생이 나올 수 있는 불완전한 제도다. 그러나 초점을 공동선에 두면 공동체 유지라는 대의(大義)에 부합하는 제도다. 미국이 소수인종에 대한 관용과 포용, 다양성을 상징하는 근사한 정책을 끝내 폐지한 게 못내 아쉽다.

인종은 아니지만 우리도 소득과 지역을 기준으로 채용과 입학에서 일부 혜택를 준다. 9급 공무원 채용엔 저소득층 기초수급자 몫의 쿼터가 있다. 또 지방대육성법 개정에 따라 의대, 약대, 간호대에서 지역인재 선발은 의무가 됐다.

이같은 제도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수도권 집중을 막아 국토 균형발전을 촉진한다는 대의 아래 큰 반발 없이 시행 중이다.

장차 저출생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민이 늘면 인종이 기준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대학입시에 목을 맨다. 미국에서 나타난 갈등이 몇 배 더 센 강도로 국내에서 되풀이 될 수 있다. 미국 사례를 꼼꼼히 들여다 봐야 할 이유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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