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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가 모습. 에너지경제신문DB |
[에너지경제신문=성우창 기자] 증권업계에서 자기자본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올 1분기 별도기준 자기자본이 4조원대 이상인 증권사는 9곳이었지만, 3조원대 증권사는 전무했다. 2조원대 증권사도 단 한 곳에 불과하다. 1년 전과 비교해 봤을 때 새롭게 1조원대에 진입한 증권사도 ‘0’곳이어서 중소형사의 자기자본 성장 속도가 크게 뒤처졌다는 평가다. 이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중소형사의 미래 먹거리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대형사와의 간극이 더욱 벌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61개 증권사 중 올 1분기 별도 기준 자기자본이 4조원이 넘는 증권사는 9곳으로 나타났다. 3조원대 증권사는 한 곳도 없었으며, 2조원대 증권사는 대신증권(2조261억원)이 유일했다. 1조원대 증권사는 8곳이었다.
이에 증권사 간 자기자본 규모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1분기 키움증권이 유일한 자기자본 3조원대 증권사였지만,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규모가 커져 버린 뒤로 그 뒤를 이을 곳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1조원대였던 대신증권이 1년 새 2조원대로 올라왔지만 보유한 자산 가치 변동에 따른 소폭 상승에 불과했다. 새롭게 1조원대로 올라 온 증권사도 전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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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가 여러 사업을 영위하고 자본건전성 및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 성장이 중요하다. 자기자본을 키우는 방법은 좋은 실적을 내 이익을 쌓거나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것이 대표적인데, 현재 중소형사는 두 방법 모두 녹록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상증자의 경우 주식 가치 희석으로 주주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고 증자한 주식을 인수할 만한 충분한 수요가 없다. 그렇다고 꾸준한 이익을 내 자기자본에 반영하기에는 현재 증권 업황이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중소형 증권사의 대표적인 수익원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어려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살아나는 듯 했던 증시 거래대금도 최근 감소 추세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의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도 수요가 있어야 하는데, 지주사가 있는 곳은 그나마 낫지만 증권사 단독으로 존재하는 곳은 충분한 수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과거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PF를 잘 키워 대형사가 된 곳도 있지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고 밝혔다.
이 양극화 현상이 계속될수록 중소형사의 신사업 진입 속도가 늦어져 미래에 대형사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PF를 주요 수익원으로 삼던 중소형사들이 위기에 빠진 것은 이들의 PF가 중후순위 채권 위주로 구성돼서다. 중소형사는 대형사나 타 금융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기자본 규모가 부족해 충분한 신용등급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PF 업황이 악화되자 수익이 악화돼 자기자본을 키우지 못하고, 이에 신사업에 진입하지 못해 수익 다각화에 실패하며 또다시 대형사에 뒤처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주식투자 열풍이 불 당시 대형사를 중심으로 간편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마이데이터 도입 등 디지털 전환 움직임이 활발했지만,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사들은 상대적으로 도입이 늦었다. 차세대 먹거리로 평가받는 토큰증권(STO)도 대형사들은 한창 플랫폼 준비에 여념이 없지만, 중소형사 대부분은 손가락만 빨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에서도 별다른 방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지난달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가 인수합병 기업에 제공할 수 있는 대출 규모를 늘리는 정책을 내놨지만, 종투사가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증권사만 얻을 수 있는 자격인 만큼 중소형사들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작년 신용위기를 맞은 중소형사를 위해 금융당국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을 지원하는 등 대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위기 상황에 대한 지원책일 뿐 중소형사의 수익성이나 새로운 활로를 찾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서유석 금투협회장은 중소형사 성장 지원을 공언하며 중소형사지원팀을 조직 내 신설하기도 했지만 ABCP 매입 프로그램 기간 연장 외 별다른 지원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게자는 "금융당국이 뭔가 중소형 증권사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고 싶어도 경쟁에 개입하게 되는 셈이니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며 "금투협이라면 뭔가 지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지만, 결국 증시가 잘 풀려서 업황이 살아나는 것이 최중요 관건"이라고 말했다.
su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