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스자산운용.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로 알려진 이지스자산운용의 인수전이 한화생명과 흥국생명의 2파전으로 좁혀진 가운데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시장에선 대형사인 한화생명이 경합에 앞설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지만 태광그룹을 배경으로 둔 흥국생명이 실탄 확보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 섣불리 승패를 점칠 수 없다는 평가다.
인수전 불붙는 이유…글로벌 확장·투자 성과에 핵심적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지스운용의 매각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중순 예비입찰에 참여한 인수의향자들을 두고 심사를 진행한 뒤 인수적격후보자(숏리스트)를 선정해 각 사에 통보했다.
숏리스트에는 한화생명과 흥국생명, 소수의 외국계 사모펀드운용사(PE)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시장에선 한화생명과 흥국생명간 경합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기존 최대주주가 국내 사업자로 매각을 바란다는 관측이 많은데다, 이지스운용이 해외부동산 사업 조직이 많은 까닭에 외국계 인수자와의 조직에 중복 부담이 있다는 평가다. 매각 대상은 창업주 고(故) 김대영 회장의 배우자 손화자 씨의 지분 12.4%와 재무적 투자자(FI) 보유 물량을 합친 지분 66%다.
이지스운용은 올해 6월 말 기준 운용자산(AUM)이 66조8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부동산 펀드 시장 1위 기업이다. 상반기 순익은 381억원으로 전년 대비 275.9% 증가해 매서운 성장세를 나타냈다. 한화생명과 흥국생명에선 이런 강점을 지닌 운용사를 편입하기 위해 각축전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생명보험사로서 부동산 투자 확대를 노리지만, 각사가 기대하는 인수 효과에는 차이가 있다.
한화생명은 최근 김동원 사장을 앞세워 해외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이지스운용 인수를 통해 글로벌 부동산 금융 네트워크를 넓히는 시너지를 기대한다. 김 사장은 2023년 최고글로벌책임자(CGO)에 취임한 뒤 인도네시아 리포손해보험, 인니 노부은행,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지분 인수를 잇따라 추진해왔다.

▲한화생명.
투자 성과 부진을 만회하려는 의도도 뚜렷하다. 한화생명은 자회사 한화자산운용을 통해 전통자산과 대체투자를 병행하고 있지만, 지난해 12월 말 운용자산이익률은 업계 평균(3.5%)에 못 미치는 3.2%였다. 올 상반기 투자손익(410억원)도 전년보다 74.6% 줄며 부진을 이어갔다. 다만 이지스운용을 품게 되면 부동산 분야에서만큼은 업계 최고 수준의 운용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다. 미주법인 한화에셋매니지먼트(USA)와 한화리츠 등 부동산 계열사와의 연계도 가능해진다. 실제로 한화생명은 예비입찰 단계부터 철저한 전략을 세우며 인수전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는 전언이다.
흥국생명의 경우 이번 인수를 통해 사업 외연을 단숨에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회사 태광그룹 금융계열사와의 시너지는 물론 그룹 차원의 신사업 투자에도 힘이 실린다. 실제로 핵심 계열사 태광산업은 리츠,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출자와 지분 투자, 운영 참여업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며 사업 구조 다변화를 모색해왔다. 여기에 애경산업과 메리어트남대문호텔 인수까지 추진하면서 공격적인 M&A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지스운용까지 품게 된다면 단순한 자산 확장을 넘어 부동산 개발 투자로 발을 넓히며 신사업 전반의 투자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적 개선세도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올해 상반기 흥국생명은 전년보다 31.5% 늘어난 138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투자손익이 두 배 이상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이지스운용 편입이 성사될 경우 성장세가 한층 가팔라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대형사가 유리할까…흥국생명 “자본여력에 뒤지지 않아"
최소 5000억원대로 예상되는 인수 금액에 있어 회사별 지불 여력이나 인수 후 재무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당초 시장에선 예비입찰에 참전한 대신파이낸셜그룹을 한화생명과 라이벌로 보고 승패를 가늠했던 만큼, 중소형사인 흥국생명이 다소 약체로 비쳐지는 분위기도 있다. 대신파이낸셜그룹은 대신증권을 통해 9.13%, 계열사인 대신에프앤아이를 통해 3.26%의 이지스운용의 지분을 들고 있는 기존주주다. 이지스운용과의 인연이나 자금력 등을 갖춰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꼽혔지만 숏리스트에 오르지 못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흥국생명.
그러나 시장의 시각과 달리 흥국생명이 자금력 확보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 예상과 다른 결말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인 서울 광화문 신문로 사옥이 감정평가를 마친 상태로, 매각 시 7000억원의 유동성이 확보될 전망이다. 태광그룹이 지난 2022년 발표한 12조원 투자계획에 따라 금융 분야에도 조단위 실탄이 배정된 상태다. 그룹 내 부채비율이 낮고 태광산업의 유보율이 70000%에 달하는 등 현금 유보가 매우 높다는 점도 강점이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그간 다소 낮았던 자산 활용도를 그룹 차원에서 공격적으로 확대할 전망"이라며 “그룹과 흥국생명이 지닌 많은 부동산자산도 이지스운용과의 엄청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화생명의 경우 당장엔 흥국생명보다 단기적 부담이 클 수 있다. 상반기 금융당국의 자본확충 요구에 구체적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인데다, '기본자본 킥스(K-ICS) 비율'을 중시하는 규제 환경 속에서 자본관리 부담이 더해졌다. 금융당국의 해약환급준비금 적립비율 완화 기준 요건은 킥스 비율 170% 선으로, 한화생명은 올 연말 이 비율을 160% 중반 선으로 맞추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아울러 지난해부터 배당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으로, 공격적인 M&A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대도 이어질 수 있다.
숏리스트로 선정된 회사는 향후 1~2개월간 실사에 들어가며 이르면 10월 중 본입찰에서 인수가격을 두고 경합을 벌일 전망이다. 연말 전 최종 결과가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