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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순 산업부 기자. hsjung@ekn.kr |
KT가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차기 대표 선출은 진즉에 물 건너갔고, 이사회 구성마저 못할 상황이다. KT의 차기 수장을 뽑는 절차가 시작된 지도 4~5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정리가 안 됐고, 앞으로 5개월은 더 걸릴 거라고 한다. 연매출 25조원, 임직원 2만명을 거느린 재계 서열 12위 KT가 처한 현실이 이렇다.
KT 차기 대표 후보 선출 과정을 취재하면서 ‘이해관계자’의 영향력에 매우 놀랐다. 구 대표가 이사회의 연임 적격 판정을 받고도 다른 후보들과 경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후, KT는 후보 선출을 위한 절차를 소개하면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한 심사기준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최근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맡은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은 경영 안정화와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지를 밝히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KT에 ‘이해관계자’가 누구인지를 물었을 때 KT는 ‘국내외 주주’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결국 ‘이해관계자’는 국민연금을 앞세운 정부·여당이라는 게 자명해 보인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 내부에 ‘건강한 지배구조 개선위원회’(가칭)를 구성해 소유분산 기업 지배구조 개선점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KT와 같은 소유분산 기업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지배구조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위원 인선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맡는다고 한다. 국민연금 이사장 자리가 전직 장차관들의 텃밭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외풍에서 벗어나겠다는 KT의 의지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노조 조합원을 비롯한 소액주주들은 정치권 외풍만은 막아야 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에 바로잡지 못하면 다음 정부에서 또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KT의 차기 대표 선임 절차는 다시 원점이다.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 전문성과 정당성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 공정하게 선출돼 KT의 기업가치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hsjung@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