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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협력의 의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분야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를 주문한다. 한국과 일본은 이 분야에서 서로 고민과 과제가 매우 비슷하여 함께 힘을 합친다면 공통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첫째, 한국과 일본은 부존자원이 전무하다시피해 제조업을 기본으로하여 수출을 통해 국부를 키워왔기에 에너지 수급의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 둘째, 두 나라 모두 지리적으로 섬 구조이다 보니 자원의 조달을 모두 해상 수송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셋째, 두 나라 모두 초고령사회, 낮은 출생률, 인구 감소, 1인 가구 증가, 지방 소멸과 같은 인구 및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공통된 과제를 공유한다. 이렇게 두 나라가 구조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고민도 비슷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두 나라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는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2021년 기준으로 발전량의 34.3%를 석탄에, 29.2%를 가스에 의존했다. 일본도 발전량의 80% 가까이를 석탄과 가스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두 나라 모두 국제적으로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이것을 국내적으로도 법제화하고 있다. 그런 만큼 발전 부문의 탈탄소화는 두 나라에게 매우 시급한 과제다. 이는 결국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같은 저탄소전력원을 늘려가는 길 밖에 없다. 이런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력계통이나 저장장치 기술의 혁신과 발전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석탄 보다는 유해 대기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천연가스 의존도가 당분간은 쉽게 줄어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연료가격의 변동 폭이 커지면서 가스의 안정적인 공급에 대한 우려도 계속해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은 소위 ‘아시아 프리미엄’을 지불하며 다른 지역들 보다 높은 가격으로 가스를 매입해 왔고, 동맹국인 미국산 LNG도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들이다. 그런데 전쟁 상황으로 인해 탈 러시아산 가스를 추구하는 유럽 국가들마저 미국산 LNG 수입을 크게 늘리면서 가스를 둘러싼 쟁탈전이 점점 치열해 지고 있다.
따라서 사정이 비슷한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가스 도입의 다변화를 위해서 서로 협력을 도모하며 공급국에 레버리지를 키울 방안을 모색하는 데 머리를 맛댈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인도네시아 세노로 가스전 사업에서의 한국가스공사와 일본 미쓰비시상사 간에 발생한 마찰은 매우 유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관련 논의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협력 방안에 관한 논의를 계속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 그리드나 미래형 도시, 그린수소와 암모니아 공급망 구축과 같은 분야에서도 공동 의제를 함께 발굴하고, 협업으로 활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협력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양국 간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나라의 관계가 역사적인 이유로 매우 특수한데다 양국의 에너지 시장 구조에서 차이가 있는 만큼 협력에 속도를 내기가 쉽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나라가 가진 공통의 고민들에 대한 정책적 아이디어들을 담담히 공유하면서 실질적인 시너지가 나올 만한 정책들을 발굴해 간다면 과거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통해 유럽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이끌어 냈듯이 한일관계도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