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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인근 편의점에서 기자가 구매한 ‘신라면 블랙 사발’, ‘챔라면’, ‘백종원의 고기짬뽕’ 제품. 사진=조하니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 조하니 기자] 고물가시대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짠내 소비족’의 억제된 욕구를 무너뜨리기 위해 도발하듯 프리미엄 꼬리표를 단 ‘고가 컵라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 프리미엄 라면 시장의 포문을 연 것으로 알려진 농심 ‘신라면 블랙 사발’(이하 블랙 사발) 제품에 이어 최근 편의점 CU에서 인기몰이 중인 더본코리아의 ‘백종원의 고기짬뽕’(이하 고기짬뽕), 하림의 야심작 ‘챔라면’이 대표사례다.
용기면 시장 매출 1위인 농심 ‘육개장 사발면’의 판매가가 1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프리미엄 컵라면은 1000원 후반대에서 3000원 후반대에 이르는 다소 높은 가격표를 달고 있다. 편의점 기준 ‘블랙 사발’1800원, ‘고기짬뽕’ 1900원이고, ‘챔라면’은 거의 4배 수준인 3800원이다.
과연 프리미엄 컵라면이 높은 가격만큼 차별화된 ‘맛 값’을 하는 지 소비자 입장에서 직접 구매해 면발·맵기·향·토핑·활용도 등을 비교해 보았다.
◇ 면발 - 백종원 고기짬뽕 ‘두툼’, 챔라면 끓은 뒤에도 ‘쫄깃’
먼저, 식감에 영향을 미치는 면발 굵기는 ‘고기짬뽕’이 가장 두꺼워 보였다. ‘블랙 사발’과 ‘챔라면’은 ‘육개장 사발면’의 면발과 비슷해 상대적으로 얇은 편에 속했다.
실제로 끓여서 먹었을 때, ‘챔라면’은 시간이 지나도 불어나는 정도가 더뎌 ‘퉁퉁 불은 라면’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 맵기 - 신라면블랙사발·챔라면 ‘적당’, 백종원 고기짬봉 ‘첫맛부터 칼칼’
맵기는 불향을 담은 ‘고기짬뽕’이 가장 강했다. 농심 ‘신라면’보다 강한 매운 맛으로 첫입부터 칼칼한 국물맛이 느껴졌다.
‘챔라면’은 맵찔이(매운 음식에 약한 사람)가 도전할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맵기를 지녔고, 우골맛과 얼큰함이 어우러진 ‘블랙 사발’은 부드러운 맛이 부각됐다.
◇ 토핑 - 신라면 블랙사발 ‘큼직한 버섯’, 백종원 고기짬봉 ‘계란 후레이크’, 챔라면 ‘햄·소시지’
라면에 얹어 먹는 토핑의 구성을 살펴보면 ‘챔라면’은 맛의 핵심인 햄·소시지를 비롯해 용기 자체에 담긴 건더기 토핑으로 구성됐다.
‘고기짬뽕’의 경우 매운 맛을 중화해 줄 계란 후레이크가 눈에 띄었으며, ‘블랙 사발’은 큼지막한 버섯 조각을 포함해 풍성한 토핑을 자랑했다. 특히, 조리 후 향을 맡아봤을 때 ‘챔라면’·‘고기짬뽕’은 소스 냄새가 더 크게 느껴졌고, ‘블랙 사발’은 토핑 냄새가 매우 진하게 올라왔다.
활용도 측면에서 챔라면이 다양한 레시피를 접목하기 적합해보였다. 기존 라면 제품에 없던 부대찌개맛을 내는 덕분에 취향에 따라 다양한 토핑을 더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시중 부대찌개 밀키트가 2~3인분 기준 9900원에 판매되는 점을 감안하면, 1인 가구가 먹기 양도 간단하고 조리법도 간단해 편리하다고 생각됐다.
◇ 고기짬봉 한달새 100만개 돌파, 챔라면 ‘3900원 고수’…장기흥행 여부 관심
제품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녔지만 컵라면은 서민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따라서 고가 상품이라면 흥행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로 업계 선두주자로 꼽히는 2017년 출시된 신라면 블랙 사발도 시장 안착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1년 블랙 시리즈의 원조인 ‘신라면 블랙(봉지)’이 공개된 당시 소비자가 1600원을 내세웠다가 거센 소비자 저항에 부딪혔다. 출시 첫 달과 둘째 달 합산 매출 150억원을 기록했지만 이후 가격 논란에 월 매출이 20억원으로 떨어졌다. 지속된 정부·여론 압박에 제품값도 1450원으로 인하했지만, 손익분기점마저 넘기기 어려워져 일시적으로 생산 중단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출시 초기 높은 판매고를 기록 중인 ‘백종원의 고기짬뽕’도 장기 흥행은 미지수라는 업계 지적이다. 백종원 대표의 특제 조리법 등 제품 본연의 가치보다 그의 브랜드 파워가 소비 심리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기준 ‘백종원의 고기짬뽕’은 출시 한 달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개를 넘어섰다. 한 개 당 1900원 비싼 가격에도 출시 20일 만에 50만개를 넘어서고, 열흘 만에 50만개가 추가 판매돼 눈길을 끌었다.
2021년 라면 시장에 진출한 하림은 두 번째 작품인 챔라면 역시 그대로 고가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제품 고급화에 따른 높은 가격 책정이 향후 라면 사업의 폭마저 좁히는 게 아니냐는 업계 지적도 나온다.
앞서 하림은 같은 해 10월 ‘The 미식 장인라면’ 봉지·컵라면 제품을 각각 공개했다. 이른바 ‘이정재 라면’으로 화제를 모으면서 출시 한 달 만에 봉지라면 기준 누적 판매량 300만 봉을 넘어섰다.
그러나, 편의점 기준 봉지라면과 컵라면 각각 2200원, 2800원으로 초고가 논란에 소비자 혹평이 이어졌고, 지난해 라면 연매출 700억원 목표 달성에도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고가 전략에 따른 사업 실패 위험에도 업계가 지속 상품을 출시하는 이유는 틈새시장을 겨냥한 시장 진출 의지라고 분석하는 한편, 라면 시장에 대한 해석이 부족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히트 상품이 되는 등 제품 성패 조건은 단건 구매가 아니라 두 차례 이상 재구매가 지속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며 "국내 시장에서 라면은 저가 음식으로 포지셔닝 된 탓에 고가 책정 시 소비자 저항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높은 가격 만큼 제품 품질도 합당한지 따져보는 소비 심리가 높아 고객 만족도를 채우기 더욱 까다로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inaho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