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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尹정부 징용 해법안, 한일 정상화의 재물인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3.08 15:06

오세영 정치경제부 정치경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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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곧 지하철 역 도착하거든? 빨리 나와줘."

몇 년 전 어느 날 밤. 친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급하게 마중을 나와달라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전단지 아르바이트 구합니다’라는 공지를 보고 지원한 게 화근이었다. 공고를 올린 사람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검은 봉고차 한 대가 나타났다고 했다. 친구는 ‘뭐지? 조금 이상한데?’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별 일은 없겠지’라고 스스로 안심하며 탑승했다. 수상한 사람들과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키스방’.

친구는 상황파악도 하기 전에 사람들 손에 밀려 작은 방으로 내던져 졌고 무작위로 배치된 ‘손님’이라는 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틈을 타 부리나케 도망쳤다. 무작정 큰 길로 달려 택시를 탄 뒤 가까운 지하철 역에 내려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정신이 없던 친구에게 따듯한 국밥을 사주고 조금 진정됐을 쯤 귀가했다.

명백한 범죄다. 진작 알았으면 지원하지도 않았을 일인데 사람을 속여가면서 납치까지 했으니 말이다. 궁금했다. 저 조직들은 아직도 일말의 죄책감 없이 저렇게 범죄를 저지르고 다닐까. 물론 누군가는 친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피해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저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건 아니다. 친구가 도망치지 않았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지 모른다.

최근 정부는 명백한 피해사실과 피해자가 있음에도 옳지 않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 해법안’이다.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으로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국내 재단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할 재원을 가해자가 아닌 ‘제3자’를 통해 지급하겠다는 말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국 기업 기부로 마련한 기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금을 마련한다는 거다. 곧바로 ‘반쪽 해법’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정부의 해법안을 납득하기 어렵다. 일본이 전범국가이고 일본기업이 전범기업인데 왜 국내 기업이 배상금을 마련하고 국내 재단이 변제를 해야 하는지 말이다. 분명 가해국가와 피해국가가 있는데 피해국가의 정부가 수습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사과를 인정하는 주체도, "해결됐다"고 사안을 매듭지을 주체도 피해자다. 지금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해결됐다"고 인정한 적이 없다. 피해자들의 요구는 하나다. 금전적 배상을 넘어선 도의적 배상이다. 일본이 마음을 다 해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진정성’을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그동안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 등이 있었다. 수많은 사과 속에 ‘강제 동원’ 여부를 인정한 적은 없다. ‘반쪽 사과’에 불과한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피해자 입장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의 공동 이익과 미래 발전에 부합하는 방안을 모색해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물론 한일관계 정상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역사 문제는 따로 놓고 봐야 한다. 일본은 외교·경제협력을 인질로 내세워 역사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묻고 가려 한다. 지지율이 ‘1%’만 나오더라도 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피해자를 외면한 피해 배상’은 있을 수 없다. 역사 문제 해결의 원칙과 피해자 인권, 국민의 품격을 버리는 외교방안은 정상화의 탈을 쓴 요행일 뿐이다.


claudia@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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