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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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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에너지 요금정책과 정치경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3.08 10:24

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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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에 평균 기온마저 평년을 크게 밑돌며 에너지 소비량이 급증한 가운데 전기, 가스, 열 등 에너지 요금에 택시, 지하철과 버스요금까지 그동안 억눌렸던 공공요금 인상의 봇물이 터졌다. 지속된 인상 요인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꽁꽁 묶어두었던 공공요금이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과 맞물려 임계점을 넘어 일시에 터져버린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에너지 요금 인상이 이루어지자 갑자기 두 배 가까운 청구서를 받아 든 소비자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시장가격을 반영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말이다.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는 에너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에게 지원금을 줌으로써 부담을 완화해 주고 있다. 서민들에게 지원이 반갑기는 하지만 우왕좌왕하는 땜질식 정책은 자칫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차제에 에너지 관련 요금정책의 정치경제적 문제를 함께 숙고해보자. 세계적 정치학자인 S. Krasner는 Defending National Interest(1978)에서 19세기 후반부터 100여 년에 걸친 미국의 에너지를 비롯한 원자재 획득 관련 정책을 분석한 결과, 고위 정책책임자들이 정의한 ‘국익’의 관점에서 정권교체와 관계 없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 왔음을 밝혀냈다. 이처럼 에너지정책은 가치나 이념이 아니라 무엇이 장기적 국가이익이냐의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우리와 같이 부존자원이 거의 없으면서도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제조업 기반의 나라는 더더욱 그러하다. 에너지의 획득이나 생산비용 절감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금정책은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정부의 개입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필자는 십 수 년 전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는 어느 개도국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그 나라는 정부청사에도 시도 때도 없이 정전이 일어나는데 그 빈도가 하루에도 대여섯 번이나 되었다. 관계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전기공급 부족 때문이란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나다 보니 어떤 지역에는 가로등을 비롯해 가정집에 대낮인 데도 전깃불이 켜져 있었다. 함께 다니던 공무원에게 물으니 그곳은 서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40%에 달하는 저소득층에게는 전기요금을 면제해 주기 때문이란다. 선거 때마다 표를 얻으려 에너지 요금 감면을 약속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부자들이 사는 동네와 건물들에도 항상 전기가 켜져 있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부자들에게는 전기요금 부담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전기사용량에 따라 누진제를 적용하면 절약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더니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서 전기요금 제도를 누진제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전기공급량을 아무리 늘려도 항상 전기는 모자랄 것이다. 그들의 문제는 전기공급의 부족이 아니라 요금제도에 있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극단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요금제도는 소비행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장원리를 벗어난 국가개입은 매우 위험하다. 선거 때마다 통신요금 인하를 약속하는 우리나라가 에너지 요금 인하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정치적 이유로 요금 인상 요인을 시장가격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소비량은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결국 작금의 사례에서 보듯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시점에 반영하려면 그만큼 저항이 크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또다시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세금을 통해 지원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곧 사용자가 아닌 국민이 부담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사용자는 여전히 에너지 요금이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요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싼 것은 이 때문이다. 요금정책의 미래가 위 사례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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