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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반도체 산업 지원’ 우리도 선 넘어보자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3.06 14:01

여헌우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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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우 산업부 기자

청첩장을 받았다. 성대한 결혼식이다. 축의금은 필요 없단다. 오히려 용돈을 두둑이 챙겨준다니 솔깃하다. 초대에 응했다. 그제야 이런저런 말이 나온다. 앞으로는 다른 결혼식에 가지 말란다. 행사 도중 참석자가 무슨 색깔 속옷을 입었는지 수시로 검사한다고 한다. 감정이 상한다. 거절할까 생각하는데 상대가 인상을 구기며 주먹을 쥐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가 처한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최근 반도체지원법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보조금을 줄 테니 중국에서는 반도체를 사실상 만들지 말라는 게 핵심이다. 자신들이 원하면 내부 정보도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초과 이익은 반납해야 한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까지 규제하겠다고 하니 ‘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중국이 최대 수요처긴 하지만 미국의 기술력 없이는 반도체 제작이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텍사스주에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정부도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중국을 완전히 누르고 반도체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너무 강력하다. 완성차 업계를 긴장하게 했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오버랩된다. 동맹이라는 단어는 한없이 가볍게만 느껴진다.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우리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노골적인 압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의 근간인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포기할 수도 없다. 정부·국회도 ‘선을 넘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의 전폭적인 지원책을 마련해보자는 뜻이다.

결혼식장 안에서는 강대국들이 총을 들고 싸우고 있을 게 분명하다. 우리 기업들만 몽둥이 하나 들고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 이런 와중에 ‘K-칩스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현행 8%에서 15%로 높이자는 내용이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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