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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미안하죠"
지난 27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베트남 출장에서 조기 귀국한 직후 나온, ‘채무 이행을 거부한다’는 말로 레고랜드 발 어음 부도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한 공식 입장 표명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사태가 불거진 이후 김 지사는 줄곧 ‘자신은 할 일을 했을 뿐이며,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전임 지사와 채권단의 과민반응’ 때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번 사태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점이라면 강원도와 정부의 신속한 ‘뒷수습’이다. 강원도는 지난 21일 문제가 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2050억원에 대해 내년 1월 전액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27일에는 상환 시기를 올해 12월 15일로 앞당겼다. 중앙 정부에서도 50조 규모 유동성 공급 대책으로 지원 사격에 나섰다.
그러나 전망은 아직 비관적이다. 여전히 채권 시장은 경직됐고, 채권시장 현업의 반응도 향후 닥쳐올 유동성 경색 국면을 피할 수 없다고 보는 편이다. 안 그래도 어려웠던 올해 금융시장에 굳이 닥쳐오지 않았어도 될 위기가 ‘비전문가’인 어느 한 정치인의 실언으로 초래된 것이다.
증권사를 비롯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권자들도 피해자인 양 한발 뒤로 물러나 있으나, 결국 사태의 근간을 따져보자면 이들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제대로 된 사업성·재무건전성 평가를 거치지 않고, PF 호황기에 거둔 성과에 눈이 멀어 부실한 운용을 한 결과다. 그간 성과급 잔치를 벌일 정도로 거뒀던 막대한 PF 수익은 리스크 관리에 쓰이지 않고 어디를 갔나 의구심이 든다.
정작 피해자는 따로 있다. 강원도 재정 2050억원으로 끝났을 이 사태가 ‘50조원+@’라는 국세가 투입된다는 점에서, 결국 피해자는 전 국민이다. 한 지방자치단체의 이슈가 초거대 규모의 국민 혈세로 막아야 할 담론까지 번진 대참사다.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는 과연 ‘좀 미안’이라는, 사과의 객체마저 불분명한 발언으로 책임이 가벼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간 수많은 금융위기를 겪었음에도 정부와 금융계는 교훈을 얻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고 있다. 1997년 IMF 사태부터 2020년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사태까지, 책임 있는 당사자는 피해자로 돌변하고 정부가 매번 국세로 밑 빠진 독을 막아야 하는 굴레를 벗어난 적이 없다. 언젠가 또다시 나타날 시스템 위기 앞에서,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칠 날은 올 것인가.
su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