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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으면서 경영 정상화에는 속도를 낼 전망이다. 21년간 따라 붙던 ‘주인 없는 회사’ 꼬리표를 떼고 나면 기존 사업에 대한 재평가와 미래 전략 사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26일 재계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대우조선이 한화그룹 품에 안기면 조선업 ‘슈퍼사이클’에 대한 대응 능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력이 탄탄한 한화를 모기업으로 두면 조선업 역량 강화, 방산 사업 시너지 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그간 상당 기간 리더십 부재 상태로 표류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 이번 매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다.
세계 최대 규모 조선소를 보유한 대우조선(옛 대우중공업)은 1999년 8월 대우그룹 해체 여파로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2001년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매각작업에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최대 채권자인 산업은행이 조선업 경쟁력이 탄탄한 대우조선의 매각 작업을 서두르지 않았던 영향도 있다.
대우조선 매각전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8년 이후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산은 민영화 등을 거론하며 급물살을 탔다. 조선업 호황기였던 당시 포스코, GS, 두산, 현대중공업, 한화 등이 대우조선에 관심을 가졌다. 한화그룹은 당시 6조원이 넘는 인수 금액을 써내 대우조선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되기도 했다.
다만 곧바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딜이 최종 무산됐다. 한화 측이 산은에 잔금 납부 시한 연기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우조선 민영화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은 2018년께부터다. 당시에는 조선업이 극심한 불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기다. 산은은 ‘빅3’ 구조였던 국내 조선업을 ‘빅2’로 바꾼다는 구상을 세웠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이 2019년2월 대우조선 인수 후보자로 선정됐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 인수를 위해 지배구조도 바꿨다. 조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새로 출범시키며 기존 현대중공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총 6개국에서 통과해야 하는 기업결합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올해 1월 유럽연합(EU)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점을 이유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 인수를 불허한 게 결정타였다.
현대중공업그룹 인수 불발 이후 대우조선은 큰 위기를 겪어야 했다. 조선 업황은 다시 회복세를 보이며 수주가 빠르게 쌓여갔지만 꾸준히 쌓여온 노사·노노 갈등이 끝내 폭발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는 지난 6월 국내 최대 조선소 중 하나인 거제 옥포조선소의 5개 독(dock·선박 건조장) 중 가장 큰 제1독을 점거한 채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파업은 51일만에 마무리됐지만 작업 중단으로 회사는 8165억원 가량의 매출 손실을 입어야 했다.
지역 사회 역시 이번 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해진다.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매각이 무산된 이후 분리 매각설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를 잠재웠다는 이유에서다. 거제시는 지난 20일 발표한 대우조선 매각 관련 입장문에서 "기술력이 해외 유출되지 않도록 상선 부문만 분리해서 매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대우조선지회는 아직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인수 후보자로 한화가 지정된 데 대해서는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매각 추진 때와 달리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가 작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화그룹 입장에서 대우조선 인수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대우조선 재무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 환경도 녹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상반기 기준 영업손실 5696억원을 기록했다. 작년에는 1조7547억원 적자를 냈다. 2019년 말 200% 수준이었던 부채비율은 올해 6월 676%까지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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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전략적 투자유치 절차 개시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강 회장은 이날 대우조선과 한화그룹이 2조원의 유상증자 방안을 포함한 조건부 투자합의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경영 주체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대우조선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도 이 같은 상황과 그 궤를 같이한다.
민간 대주주 전환이 대우조선 정상화에 속도를 내는 방법이라는 점에는 업게 내에서 이견이 없어 보인다. 강 회장은 이날 산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지난 1월 현대중공업과 합병 무산 직후부터 경영 컨설팅을 진행한 결과 현재 경쟁력 수준과 시장 환경에서는 자력에 의한 정상화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나왔다"며 "대우조선의 체질을 개선하고 중장기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역량 있는 민간 주인 찾기가 근본 해결책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대우조선의 경영 효율화를 위해 매각 여건을 개선하는 한편 통매각, 분리매각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해당 사업 이해도가 높으며 재무적으로도 뒷받침이 가능한 매수자를 물색해 왔다"며 "경영 및 재무역량이 검증된 국내 대기업 계열에 투자 의향을 타진했으며 그 결과 한화그룹이 인수 의향을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 투자유치를 통해 대우조선은 2조원의 자본확충으로 향후 부족 자금에 대응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민간 대주주의 등장으로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 등을 통해 국내 조선업의 질적 성장을 유도함으로써 한국 조선업 경쟁력 한층 더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화그룹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그룹의 핵심역량을 글로벌 톱티어인 대우조선의 설계·생산 능력과 결합해 회사의 조기 흑자전환은 물론, 방산과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서 ‘글로벌 메이저’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한화그룹은 이번 인수로 ‘빅 사이클’ 초입에 진입한 조선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그룹 주력인 방산 분야에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전세계에서 지정학적인 위기로 한국 무기체계에 대한 주요국의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통합 방산 생산능력과 글로벌 수출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는 게 한화 측 구상이다.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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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 ‘빅3’ 중 하나인 대우조선해양이 20년 넘는 기나긴 매각 작업 끝에 새 주인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001년 8월 23일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생산지원센터 4층에서 정성립사장(왼쪽에서 세번째)과 직원들이 워크아웃 졸업을 기념해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