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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째 비건(Vegan, 채식주의) 생활을 실천하는 식품업계 관계자로부터 들은 하소연이다. 가치소비 트렌드와 맞물리며 ‘비건 열풍’이 지속되고 있지만 실생활에선 메뉴 하나 고르는 데 눈치보기는 매한가지라는 얘기였다.
물론 시장 규모로 보면 국내 비건식품은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비건인증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4년 간 비건 인증을 받은 식품 수는 612개에 이른다. 지난해만 286개가 인증을 받아 2019년보다 151%, 지난해보다 44% 늘어났다.
이같은 성장세에 식품업계도 미래 먹거리로 ‘식물성 식품’을 키우는 동시에 신제품 출시에 공들이고 있다. 비건식품이 없어 못 먹던 시절에서 벗어나 이제 골라서 먹을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면서 과거처럼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채식을 중단하는 일도 없어질 만큼 식문화도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비건산업이 가야할 길은 멀다. 우선, 비건식품의 생산과 판매가 가정시장에 국한돼 있다. 상대적으로 외식시장에서 비건 선택의 폭이 좁다. 지난 5월 농심과 풀무원이 각각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과 강남구 코엑스몰에 선보인 비건 레스토랑은 제한된 선택 사례에 불과하다.
더욱이 여전히 우리나라 식사 문화에서 개인이 ‘비건 정체성’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조직문화 특성상 부회식·송년회 등 단체식사 장소에선 다수가 선호하는 메뉴로 선택되는 경우가 흔한데 비건 정체성을 드러내면 자칫 전체의 기호에 딴지를 걸며 ‘유난 떤다’는 오해를 받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비건 정체성을 공개하지 못하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육류 섭취’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설령, 혼자서 눈칫밥을 먹는 경우라도 선택할 수 있는 대안 공간도 마땅치 않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08년 15만명을 기록한 국내 채식 인구는 2018년 150만명으로 10배 급증했으며, 지난해 2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3%까지 이르렀다. 반면에 비건족이 이용할 수 있는 전용식당은 전국에 350~400개로 추산돼 턱없이 부족하다.
비건 시장이 성장하려면 시설과 제품 규모가 커져야 하는 것과 동시에 비건족의 ‘채식할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식사문화도 보장돼야 한다.
inaho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