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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메타버스와 게임의 차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8.18 13:05

정희순 산업부 기자

정희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김춘수 시인의 작품 ‘꽃’이 떠오른 것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의 강연 때문이었다. 한 블록체인 행사에서 이루어진 강연에서 그는 ‘메타버스’에 대해 "현실을 초월한 ‘가상세계’"라고 정의하며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가 지금껏 해왔던 것이 ‘가상세계의 구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메타버스’와 ‘MMORPG’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잠깐 송 대표에 대해 부연하자면 그는 국내를 대표하는 스타 개발자다. 넥슨의 ‘바람의나라’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카카오게임즈의 ‘달빛조각사’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강연에서 그는 "‘바람의나라’와 ‘리니지’는 가상세계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개발했고, 당시 여러 기술적·현실적 제약 때문에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이 됐다"면서 "지금에야 ‘바람의나라’가 세계 최초의 MMORPG라 불리지만, 당시엔 마땅한 장르명이 없어 ‘그래픽 머드’라 불렸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사실 메타버스의 성공 사례로 제시되는 대부분은 게임이다. 로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등이 대표적인 예다.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포장되긴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네이버Z의 제페토도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으로 부르느냐의 차이일 뿐 알맹이는 비슷하다. 게임과 메타버스의 차이를 두고 "재미가 있으면 게임, 재미가 없으면 메타버스"라는 말이 농담처럼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게임과 메타버스를 구분 지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결국 규제 탓이다. 게임으로 분류되면 국내 게임법의 규제를 받게 된다. 국내법은 게임 내 재화를 현금화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메타버스가 게임으로 분류되면 동력을 잃게 된다.

우리는 세계 최초의 MMORPG, 송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세계 최초의 메타버스를 만든 나라다. 최고 수준의 기술을 제대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제도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 때야 비로소 메타버스는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될 것이라 믿는다.
hsju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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