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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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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1호기 운전정지 5년 됐는데 해체사업은 '제자리'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7.13 16:08

- 文 ‘원전해체 500조 시장’ 3년 전 선언…원안위는 여전히 해체계획서 승인 안해



- "탈(脫)원전 대안으로 내세웠으나 사용후핵연료와 더불어 차일피일 미뤄"



- 尹정부도 "원전일감 1300억원 확대" 발표…신규건설·수출에만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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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6월 19일 40년의 운영을 마치고 영구정지에 들어간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전경.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원전 해체산업이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영구정지 후 5년 간 제자리 걸음이다.

원전 해체산업은 문재인 정부가 고리 1호기 폐쇄 조치를 한 뒤 ‘500조원 시장’ 청사진을 제시하며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또는 백지화의 대안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탈(脫)원전을 내세우면서 정작 원전의 가장 큰 문제인 사용후핵연료 문제와 해체 산업 육성은 등한시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미래 유망 사업으로 꼽히는 원전 해체 산업 키우기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비록 탈원전 폐기를 공식화했지만 최근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건설과 설계수명 도래 노후 원전 계속운전 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원전 1호기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2017년 6월 19일 영구정지된 뒤 5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로부터 고리 1호기 해체계획서조차 승인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수원 관계자는 "해체도 건설과 마찬가지로 사업의 영역이다 보니 규제기관이 해체계획서를 승인해야 한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관련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초 정부의 계획은 올 상반기 중 고리 1호기 해체 관련 최종 승인을 거쳐 올 하반기 작업에 착수, 10년 후인 오는 2032년 해체작업을 마무리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원안위 승인이 늦어지면서 이달 시작된 전문가 심사가 끝난 직후인 오는 2024년 곧바로 해체 작업에 들어가도 해체 종료는 2037년에나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체에 필요한 절차들이 지지부진한 사이 한수원이 예상한 고리 1호기 해체 기간이 당초 10년 6개월에서 13년으로 2년 6개월 늘어나게 된 것이다.

원천 해체에 필요한 핵심기술 개발도 늦어지고 있다.

해체작업에 들어가더라도 일정이 추가 지연될 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고리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방사선폐기물처리장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별도의 방폐장을 갖추고 있지 않아 임시 저장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로드맵을 마련한 이유다. 다만 정부는 부지 선정 절차 착수 후 영구처분시설 구축까지 37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천해체 산업 발전이 뒤쳐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리 1호기를 계기로 해체 산업을 본격 육성해 2035년까지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점유율을 10%로 끌어올리는 게 정부의 당초 구상이었다.

이에 한수원은 지난해까지 원전 해체에 필요한 상용화 기술 58개를 확보하는 등 기술 개발에 속도를 냈지만 아직 상업용 원전 해체 경험은 전무한 상황으로 전해졌다.

관련 기술개발을 위해 2017년 12월에 발족된 원전해체산업민관협의회는 2019년 7월 3차 회의 이후 2년여간 활동을 중단됐다가 지난해 8월 다시 시작됐다. 경수로(고리), 중수로(월성) 해체연구소도 2020년에야 착공을 시작했다.

‘원전 최강국’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에서도 신규원전 건설과 수출에만 치중할 뿐 해체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날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해 올해 원전 일감을 1300억원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대부분이 신한울 3·4호기 건설과 해외수출 지원 외에 원전해체 사업과 관련된 예산은 빠졌다.

원전 업계에서는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과정 중 발생한 안전사고가 없는 점 등을 감안해 방사선 및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시설에 대해서는 원자로 및 관계시설의 해체 이전에 해체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 정비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운영 중인 원전 약 450기 중 운영 연수가 30년 이상 된 원전은 67.8% 가량인 305기로, 202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글로벌 원전해체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경제 컨설팅 기업 ‘베이츠 화이트’에 따르면 세계 원전 해체 시장 규모는 549조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원전 해체실적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등 3개국뿐이며 영구정지된 원전 173기 중 해체가 완료된 원전은 21개에 불과하다.

신영호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전문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들은 원전 영구정지와 해체 사이에 비방사선 분야 선제 해체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원자력안전법에 묶여 고리1호기 정지 후 5년 동안 아무 것도 진행된 게 없다. 과도기에 할 수 있는 활동을 해 원전해체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철 한수원 원전사후관리처 해체사업부장도 "해체실적(Track Record)을 가진 검증된 기업만이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현행 법·제도 하에서는 해체승인 전(최소 7년)까지 실질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해체공사도 착수가 불가하다. 원전건설, 운영시장 감소 후 해체시장 형성 지연으로 기존 업체들의 생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비방사성 시설의 해체시 개발 및 축적된 해체 기술을 현장실증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해 해체기술 고도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해당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1대 후반기 원 구성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법안 처리도 지연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안전성 확보를 전제로 해체승인 이전에 비방사선 시설에 대한 해체가 가능하다면 해체산업 생태계 조기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산업부는 관련 규제 개선을 위해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회 및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는 원전 해체산업 육성을 위해 원전해체연구소 설립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해체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예타) 사업이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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