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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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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효은 기후변화대사 "국제 그린질서 속 한국 역할-위상 정립에 최선 다할 것"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8.2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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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기후변화대사실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송기우 부국장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 기자] "인류 처음으로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전 세계 그 어디에서도 탄소중립을 해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길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발을 내딛어야 길이 보이는 겁니다. 발을 내딛었는데 길이 안보이면 길을 만들어서 나아가야지요."

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는 지난 24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본청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단독 대면 인터뷰를 갖고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탄소중립을 일단 시작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효은 대사의 이 같은 언급은 전 세계가 세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시작을 하지 않으면 시작 자체가 어려우니 행동하면서 보완하고 계획을 세우는 게 맞다는 말이다.

다음은 김효은 기후변화대사와 일문일답.


 

"국제 그린 질서 만드는 역할
지구촌 속 한국의 자리 확보하겠다" 

 


- 신임 기후변화대사로 임명된 데 대한 간단한 소감과 포부를 듣고 싶다.

▲지금처럼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 때가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문제가 시급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이 제일 큰 문제로 논의돼야 된다는 점에 크게 공감한다. 이런 중요한 시점이 기후변화 대사라는 자리에 올라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을 느낀다. 정말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 오랜 외교 생활을 거쳐 이번에 기후변화 관련 전권 대사자리에 올랐다.

▲누군가 외교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국제 질서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답변한다. 이 질서가 우리 국익에 부합하고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차원이어야 한다. 기후변화 대사가 됐으니 국제사회와 함께 제대로 된 기후변화 대응 질서를 만드는데 힘쓰겠다. 지구촌 번영과 더불어 한국이 어떻게 설 자리를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충분히 살펴야 한다. 대전환의 시기에 중요한 국제질서를 만들어가는 주요 부분을 담당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활동계획이 궁금하다.

▲오는 2023년 열릴 예정인 UN 기후변화협약 총회(COP28)를 꼭 한국에 유치시키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월 서울P4G(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 같은 바램을 밝힌 바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부산과 전남 여수, 인천 송도 등이 총회 개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가 개최국으로 정해져야 도시를 정할 수 있으니 한국이 개최지로 채택되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고 개발도상국을 이끌 수 있는 총회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 기후 기술과 기후 NGO(비정부기구), 기후 관련 전체 연구기관이 한 데 모이는 지구촌 행사다. 보통 개최 직전 해까지는 결정이 지어지니 내년 말까지는 정해질 것 같다. 오는 11월 영국에서 26번째 총회가 열리는데 2023년 총회를 한국에 유치한다면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열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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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기후변화대사실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송기우 부국장

 

 

"그레타 툰베리가 지금은 독특한 소녀지만
미래세대의 주류로 떠오를 것"

 


-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는지.
▲미래세대에는 그레타 툰베리가 주류가 될 것이다. (툰베리는 2019년 16세 나이로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 각국 정상들이 기후변화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해 주목받은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지금은 독특한 소녀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지만 미래세대에는 일반적일 것이다.

탄소중립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대신 행동은 모두가 해야 한다. 지금 ‘2050 탄소중립’에 대해 확실하게 보여줄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인류 역사상 탄소중립은 처음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보이는 길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발을 내딛어야 길이 보이는 것이다.

발을 내딛었는데 길이 안보이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시작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작 자체가 어렵다. 걸어 가면서 보완하고 계획을 세우는 게 맞다. ‘플래닝 바이 두잉, 두잉 바이 플래닝(planning by doing, doing by planning)’ 프로세스가 맞다고 본다.

- 다자외교 방법에 회의적인 시선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다자 협력 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다자 프로세스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각 나라마다 입장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또 모두가 동의하는 결과를 도출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다.

- 그런데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다자외교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맞다. 기후변화 대응은 다른 다자외교와 달리 비교적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외교에 있어서 모든 국가들이 협력하고 진전하는 분야는 기후변화 대응이다. 지난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때 모든 나라(195개 당사국)가 온실가스 줄이자는 말에 동의했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는 말에 모두가 뜻을 같이 했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협상만큼 다자외교가 진전 있는 분야는 없다. 실제로 속도도 빠르다. 국제사회 주류 테마는 ‘2050 탄소중립’이다. 지금 파리기후협상을 한 지 6년 밖에 지나지 않았고 올해가 이 협약 시행 원년인데, ‘1.5도 지구온난화’나 ‘탄소중립’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하는 나라는 없다. 단지 누구는 더 해야 하고 누구는 시간이 더 걸리는 문제일 뿐, 어느 누구도 ‘아니야, 못하겠어’라고 하지 않는다.

- 우리나라에도 녹색기후기금(GCF),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등 기후환경 관련 여러 국제기구가 유치돼 있다. 실제 도움을 받는 부분이 있는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국제기구 진출을 위한 예비훈련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국제기구는 인턴십 등 국제기구 경험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려고 한다. 국내 유치한 국제기구에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

이는 국제기구에 정식 직원이 되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국제기구의 사업 이행기구로 등록되면 국제기구가 추진하는 사업을 함께 할 수 있다. 나아가 등록된 이행기구들은 사업을 함께 할 파트너를 데려오는 게 가능하다. 국내에 유치된 국제기구에 우리나라 기관이나 기업들이 사업이행기구로 등록되면 주변 협력 기관 또는 기업들까지도 이행기구 파트너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GCF 사무국이 인천 송도에 유치된 뒤 무상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을 하는 코이카(KOICA), 한국산업은행(KDB) 등이 GCF 사업 이행기구로 등록됐다.


 

"한국, 농업 등 1차 산업도 개도국 지원 충분히 가능해" 

 


- 지난 5월 서울P4G정상회의에서 식량안보와 기후위기 관련 발표를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서울P4G정상회담 기간 중 정상회담에 앞서 진행된 식량·농업 세션 2부 토론에 좌장으로 참석했다. 농업세션을 맡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개도국에서는 농업과 관광이 주요 산업이고 가장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분야다.

기후변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산업도 농업분야다. 즉 많은 개도국들이 기후변화 때문에 주요 산업에서 타격을 받는 셈이다. 개도국 국민들은 해마다 식량과 농업분야에 들이닥치는 피해를 몸으로 겪는다. 그들은 ‘왜 올해에는 비가 안오지?’ 혹은 ‘왜 작년에 작황이 좋았던 농작물이 올해에는 안 좋지?’ 등에 대한 의문점을 늘 가질 수 밖에 없다.

-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개도국과의 식량·농업분야 협력에서 외교부문 성과를 낼 방법이 있는가.
▲세네갈 대사로 일할 때 우리나라 농업 기술이 엄청 뛰어나다는 걸 느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농산물처럼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게 작황이 좋은 국가는 없다. 그래서 개도국과 농업분야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종자나 품종 뿐 아니라 농기구와 농법까지도 말이다. 우리는 주로 에너지나 산업분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개도국 사람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들은 농업과 수산업 등 1차 산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에 관심이 많다.

- 개도국들은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할텐데 우리나라가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보는가.
▲당연하다. 개도국에게 있어서 한국은 스타다. 내가 이전에 몸 담았던 GGGI는 선진국들로부터 돈을 받아 개도국이 기후변화 대응이나 녹색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구다. 개도국들에 GGGI에 대해 설명하면 대부분 ‘GGGI는 유엔도 아니고 최근에 생겼어?’라면서 미온적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한국에 있다고 하면 ‘아, 한국에 있는 거구나’라면서 반가워 한다. 우리나라에 유치돼 있는 국제기구를 통해서도 개도국과 협력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농업과 임업의 결합, 그리고 쓰레기 처리 기술 등 우리나라가 개도국에 지원할 분야가 많다. 산업분야에서도 개도국의 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에 우리나라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등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너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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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기후변화대사실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송기우 부국장

 

 

"탄소중립=스마트폰…실현 이후 이전의 세상 상상 못할 것"

 


- 제조업 중심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탄소중립 속도가 빠르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탄소중립을 비교하자면 스마트폰과 똑같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 아무 불편 없이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 없이 살기 불편해졌다. 스마트폰을 쓰기 전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아찔하다.

탄소중립 속도는 스마트폰이 보급됐던 속도만큼 빨라질 거다. 과거에 빨리 반도체 사업에 투자하고 스마트폰을 보급했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시간이 지나면 선점하기도 어렵고 비용도 더 들어간다. 연명 치료한 뒤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다.

삼성 스마트폰, 현대 자동차 등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제품을 쓴다. 이미 선진국이고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니고 영향력이 없으니 탄소중립 천천히 해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 우리나라의 녹색성장은 어느 정도 수준인건지.

▲우리나라 녹색성장 정책으로는 뉴딜정책이 있다. 우리나라 뉴딜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사회적 뉴딜로 크게 세 가지다. 굉장히 좋은 개념이다. 경제성장하면서 기술력 발전시키고 환경도 챙기고 소외받는 사회 계층도 챙기겠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뉴딜은 개도국에 좋은 모델이다. 세네갈의 경우 전기가 없던 상황에서 화석연료가 아닌 신재생에너지로 바로 건너뛰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디지털이나 환경에 관심이 많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그 해결책이 한국판 뉴딜이 될 수 있다. 한국판 뉴딜을 기반으로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보여진다.

-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후악당’이라는 오명도 얻고 있다.

▲과거의 패턴에서 끊어내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석탄발전 투자나 신규 석탄 건설, 내연기관 차 운행 등 벗어나야 하는 부문이 있다. 어느 시점이 적절한가에 대해서 정부부처 뿐 아니라 시민 사회와 업계 등 진지한 토의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탄소중립위원회에서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 우리나라 탄소중립 계획이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는가. 민간을 설득하고 참여유도 하고 협력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가.

▲정말 맞는 말이다. 빨리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진정으로 도와주는 거다. 이대로 버틴다고 연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에너지를 많이 쓴다. 주력 산업인 철강·반도체·석유·화학 등이 탄소를 많이 배출한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처지인 건 맞다. 가장 좋은 건 민간에서 투자가 일어나고 그 투자로 이익이 창출되는 선순환이다. 초기 투자 부분과 기술개발에 필요한 시드머니(종자돈)를 어느 정도 정부가 지원을 하고 성과와 이익을 창출하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겠냐. 우리 기업들이 ‘죽음의 계곡’ 시기를 잘 버틸 수 있도록 정부가 최대한 지원하고, 이후 실제 혁신이 일어나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해서 이익을 창출하는 식으로 성장하는 게 필요하다.

-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건 맞다. 그러나 특정기업만 지원하고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기후변화나 탄소중립 등 국가정책을 실현하는데 여러 부작용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은가.

▲모두가 알 만한 기업으로 예를 들어보자. 현대자동차가 대기업이지만 여기에 납품하는 기업도 상당하다. 삼성전자도 단일기업만 놓고 보면 큰 규모인데 협력사와 협력사에 협력사를 합치면 어마어마해진다. 결국 특정 기업을 지원하는 게 아닌 전체적으로 우리 경제를 지원하는 셈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담 : 구동본 에너지환경 부장(부국장)
정리 : 오세영 에너지환경부 기자
사진 : 송기우 부국장


□ 김효은 대사 프로필

△ 출생
- 1967년(55세) 서울

△ 학력
- 미국 워싱턴대 국제관계학 석사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 세화여고

△주요경력
- GGGI 사무차장(2018∼)
- 주 세네갈 대사(2016∼2018)
-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기획정책국장(2013)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참사관·OECD 무역환경공동회의 부의장(2010∼)
- 외교통상부 기후변화환경과(2008∼)
- APEC 예산운영위원회 의장(2006)
-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실무(2005)
- 외교부 세계무역기구(WTO)과장·기후변화환경과장(2005)
- 외무고시 26회(1992년)

△주요저서
- "외교관은 국가대표 멀티플레이어"
- "청춘, 국제기구에 거침없이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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