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민병무 기자

joshuamin@ekn.kr

민병무 기자기자 기사모음




역시 이마에스트리!...클래식 공연에 ‘휴대폰 플래시’ 깜짝 퍼포먼스 등장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6.15 10:54

제14회 정기연주회서 관객들 ‘풋유어핸드폰즈업’ 진풍경 연출
아리아·가곡 등 새롭게 편곡 ‘이마에스트리 버전 14곡’ 감동

마에스트리01

▲남성 보이스 오케스트라 이마에스트리 정기연주회에서 클래식 무대에서는좀처럼 보기 힘든 '핸드폰 플래시 퍼포먼스'가 깜짝 등장했다. 양재무 감독의 지휘에 맞춰 관객들이 노래하자 무대 뒷편에 휴대폰 불빛이 여기저기서 반짝이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민병무 기자] ‘사건’은 네번째 앙코르곡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부를 때 일어났다. 양재무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들어 90명의 목소리를 다시 하나로 모았다.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무대를 출발한 첫 소절은 1층, 2층, 3층으로 동시에 퍼졌다. 이 남자들 정말 에너자이저다. 2시간 30분을 숨차게 달려왔지만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첫 곡보다 더 힘차게 목청을 높인다.

양 감독은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댔다. ‘쉬∼잇∼’ 단원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준 것. 그리고 관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객석에 앉아 있던 2500여명이 현장에서 방금 캐스팅돼 새로운 멤버가 됐다. 양 감독의 손끝에 맞춰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을 이어 불렀다.

그 순간, 합창석에 앉아 있던 몇몇 사람이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 모드에 놓고 흔들었다. 노래에 맞춰 불빛이 좌우로 반짝반짝 흔들렸다. 클래식 음악회에서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다. 내부 안내를 맡은 직원이 가장 먼저 놀랐다. 이러시면 안된다며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금세 아름다운 불빛이 공연장을 꽉 채우며 춤을 췄다.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몇몇 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명품 보이스 어벤저스의 떼창도 감동인데 이런 진풍경까지 볼 수 있다니 완전 쇼킹이다. ‘풋 유어 핸즈 업(Put your hands up)’을 뛰어넘어 ‘풋 유어 핸드폰즈 업(Put your handphones up)’이다. 팬들이 최고의 찬사를 보낸 것이다. 모두들 ‘작은 혁명’을 즐겼다. BTS의 ‘아미(Army·방탄소년단 공식 팬클럽)’도 이 모습을 봤다면 부러워 했으리라. 공연이 끝난 뒤 양 감독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깜짝 반딧불 퍼포먼스가 연출돼 너무 황홀했다"고 고백했다. 출연진과 관객 모두가 못잊을 특급 케미 무대를 만든 셈이다.

역시 이마에스트리(I Maestri)였다. 정상급 전문 오페라 연주자들로 구성된 세계 최초·세계 유일의 남성 보이스 오케스트라의 노래는 단 한 곡도 흥분되지 않은 레퍼토리가 없었다.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14회 정기연주회도 대박을 터뜨렸다. 양재무, 김대윤, 박용빈, 정한결, 정승재 등이 편곡한 ‘이마에스트리 버전 14곡’은 음악의 끝판을 보여줬다.

◇ 뮤지컬 넘버 3곡으로 화려한 오프닝

오프닝은 우리 귀에 친숙한 뮤지컬 넘버 3곡으로 열었다.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메인 주제가 ‘The phantom of the opera’는 타악기의 다이내믹한 도입부가 돋보였고, 마지막 클로징 부분에서 처음의 도입부를 한번 더 되풀이해 박진감을 살렸다. 웅장하고 화려한 합창은 처음부터 가슴을 둥둥둥 울렸다.

애니메이션 ‘이집트의 왕자’에 흐르는 ‘When you believe’를 통해서는 "기적은 온다네, 믿는다는 희망이 있으면"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레미제라블’을 빛낸 ‘Do you hear the people sing’에서는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군중의 힘찬 함성을 녹여냈다. 클라이막스가 몇번 반복돼 노래 중간 갑자기 브라보 환호가 터져 나왔지만 문제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방해’가 환상 콘서트를 만드는 의외의 중요 요소가 됐다.

◇ 화해 코드에 맞춰 남북 대표 가곡 한무대에

다음은 ‘평화로...하나로...희망의 나라로’라는 타이틀이 붙은 무대. 먼저 테너 문익환이 한국민요 ‘신경복궁타령’을 연주했다. ‘산화한 남대문이여!’라는 작은 제목을 따로 단 이유는, 10여년전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숭례문 화재 사건 아픔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곡 후반부에 따로 상여가와 방아타령의 일부분을 덧붙여 이런 마음을 적절히 담아냈다.

테너 강신모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나오는 ‘대성당의 시대(Les temps des cathedrales)’를 불렀다. 일부러 마이크를 사용해 살짝 샹송 분위기를 연출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도 얼마전 화재로 일부가 소실됐다. 여기서 이마에스트리의 음악적 세심함이 돋보인다. ‘신경복궁타령’과 ‘대성당의 시대’를 나란히 배치한 것은 화재로 불탄 두 문화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마에스트리의 예술적 열정과 도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대중가요와 클래식의 아름다운 콜라보를 보여주는 ‘향수(정지용 시·김희갑 곡)’에 이어 남북의 대표가곡이 잇따라 연주됐다. 최근의 화해 코드에 맞춰 북한가곡 ‘임진강(박세영 시·고종환 곡)’을 선사한 뒤 테너 김충희가 한국가곡 ‘그리운 금강산(한상억 시·최영섭 곡)’을 불렀다.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가느냐"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라는 두 노래의 가사가 묘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오랜 반목을 넘어 통일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내 나라 내 겨레(김민기 시·송창식 곡)’에서도 어떠한 역경이 온다 해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한민족의 기상을 그려냈다.

◇ 모차르트·로시니가 만든 ‘두명의 피가로’

대결은 항상 흥미진진하다. 모차르트와 로시니가 탄생시킨 ‘두명의 피가로’가 한 무대에서 솜씨를 뽐냈다. 바리톤 오동규는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더 이상 날지 못하리(Non piu andrai)’를 불렀다. 피가로의 약혼녀 수잔나에게 수작을 부리던 케루비노가 이번엔 알마비바 백작의 부인인 로지나에게 접근했다가 큰코를 다친다. 더 이상 마을의 여성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백작이 군대에 입대시켜 멀리 쫓아 보낸다. 피가로가 그런 바람둥이 케루비노를 향해 부르는 ‘야유의 노래’다.

바리톤 박정민은 ‘세비야의 이발사’ 속 유쾌한 노래 ‘나는 마을의 일인자(Largo al factotum della citta)’를 연주했다. ‘해결사’ ‘만능일꾼’이 쏟아내는 랄라라 랄라라는 거의 속사포 랩이다. 이마에스트리 멤버들과 서로 노래를 주고 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박정민의 재치도 번뜩였다. 중간에 애드리브로 록그룹 퀸의 ‘Ay-Oh’를 넣어 한바탕 웃음을 선사했다.

◇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 사운드

다음 무대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이마에스트리만의 ‘입체감 있는 독보적 사운드’가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테너 김주완은 소로자발의 오페라 ‘항구의 선술집’에 흐르는 ‘그럴리 없어(No puede ser)’에서 한 남자의 핏빛 절규를 토해냈다. 폭발적인 고음 처리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테너 김지호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공주는 잠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불렀다. 칼라프 왕자의 목소리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모든 여성들도 잠못 이루었으리라. 특히 단선율의 독창 아리아를 4성부로 바꿔 더 깊이 있는 음악으로 만들었다.

영화 ‘아바타’의 주제곡으로 쓰인 칼 젠키스의 ‘Adiemus & Kayanma’는 마치 지구밖 외계의 노래 같았다. 모음으로만 노래하는 보칼리제 스타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단순한 가사를 붙였다. 자음과 모음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전달매체로서의 언어 기능은 없다. 그냥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날것 그대로의 통렬한 아름다움이 기가 막히다. 절대 음악적 가치를 표현하고 추구하는데 이런 단순한 소리가 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이마에스트리만 해낼 수 있는 전매 특허다.

정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난뒤 박수와 환호가 이어지자 ‘최진사댁 셋째딸’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내가 아노라’ ‘그리운 금강산’ 등 앙코르를 4곡 불렀다. 피아니스트 김한길, 조이 오브 스트링스, 카로스 타악기 앙상블이 이마에스트리와 호흡을 맞춰 멋진 음악에 큰 힘을 보탰다.

한편 이마에스트리는 오는 10월에 ‘우리 가곡 부르는 날’이라는 타이틀로 불후의 한국가곡 콘서트를 연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