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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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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가곡으로 미리 인사한 '스로체스토봄 흐리스토빔!'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12.21 15:10

세계음악협회 14회 정기연주회 성황...정선화·김순향·진성원·남완 등 감동무대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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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정선화가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의 ‘만약 내가 알았다면’을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에너지경제신문=민병무 기자] 소프라노 정선화가 차이콥스키의 ‘만약 내가 알았다면’을 노래하자 객석을 가득 메운 400여명은 "이게 바로 로망스의 매력이구나"라며 빠져 들었다. 그는 러시아 유학파 파워를 제대로 뽐냈다. 가사 한줄 한줄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부르니 노랫말에 담긴 의미가 고스란히 전달됐다. 러시아어를 전혀 몰라도 한국말로 자동번역돼 귀에 착착 꽂혔다고나 할까.

목소리는 안정되고 편안했다. 또 맑고 밝았다. 약하게 흐를 땐 자연스럽게 힘을 빼는 베테랑 관록이 드러났고, 강하게 뛰어야 할 땐 적당히 핏대를 세우는 스킬을 자랑했다. 모두가 꼼짝없이 노래의 포로가 됐다.

정선화는 한국 가곡 ‘그대 어디쯤 오고 있을까(김명희 시·이안삼 곡)’에서도 격이 다른 클래스를 선보였다. 아련함, 안타까움, 기대, 희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절묘하게 토해냈다. 관객은 "꿈을 꾸듯 환한 미소 지으며" 선율에 흠뻑 취했고 브라바로 화답했다. 이심전심.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하나가 됐다. 눈송이를 닮은 하얀 드레스는 또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남완

▲바리톤 남완이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포민의 ‘한번만’을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남완 역시 포민의 ‘한번만’으로 러시아 가곡의 진수를 선사했다. 그도 모스크바에서 공부했다. 묵직한 저음임에도 높고 낮은 음을 뚜렷하게 구사해 ‘고막 바리톤’의 실력을 발휘했다. "저 멀리 숲 사이로 내 마음 달려가나 / 아 겨울새 보이지 않고 흰 여운만 남아 있다오" 겨울이면 빠지지 않고 애창되는 한국 가곡 ‘눈(김효근 시·곡)’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소리 없는 탄성이 터졌다. 뒤이어 "눈 감고 들어보리라 끝 없는 님의 노래여 / 나 어느새 흰눈 되어 산길 걸어간다오"라고 절정을 마무리하자 폭풍박수가 이어졌다. 함박눈 내려앉은 들판에 남완의 이름이 확실히 새겨졌다.

한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클래식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세계음악협회가 아름답고 풍성한 노래로 미리 ‘스로체스토봄 흐리스토빔!(러시아어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뜻)’ 인사를 건넸다.

세계음악협회는 18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러시아 가곡과 한국 가곡을 절반씩 섞어 제14회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겨울, 또 하나의 그리움’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러시아 로망스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김순향

▲소프라노 김순향이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부르고 있다. 피아노 반주는 정영하가 맡았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무대에 오른 성악가 11명 모두 실력이 엑설런트다.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선보인 소프라노 김순향의 매직 보이스는 놀라웠다. 특정한 가사 없이 그냥 모음만으로 흥얼거렸는데도 목소리가 가장 완벽한 악기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콘서트장을 뒤흔들었다. 김순향이 ‘아∼’ ‘어∼’ 퍼레이드를 이어가자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 방해되면 어쩌나 아예 숨을 멈추고 듣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다빈 시·이안삼 곡의 ‘비록’을 부를땐 그 절절함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감동이 금세 두배 세배 네배가 됐다.

진성원

▲테너 진성원이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내 황금같은 젊은 날은 어디로 갔는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겨울 시즌이면 러시아에서 항상 공연되는 오페라가 푸시킨의 운문소설에 차이콥스키가 곡을 붙인 ‘예브게니 오게닌’이다. 테너 진성원은 여기에 나오는 렌스키의 아리아 ‘내 황금같은 젊은 날은 어디로 갔는가’를 불렀다. 친구 오네긴과의 결투를 앞두고 사랑의 덧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렌스키의 심정을 ‘진성원 스타일’로 잘 표현했다. 그는 이어 평생을 함께 한 반쪽에게 바치는 러브송 ‘아내의 일생(이상윤 시·이안삼 곡)’을 들려줬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부부들은 틀림없이 이 노래를 들으며 지그시 손을 잡았으리라.

하성림

▲소프라노 하성림이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블란테르의 ‘카츄사’를 부르고 있다. 피아노 반주는 정영하가 맡았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소프라노 하성림은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 늘 행복 바이러스를 뿌린다. 그는 블란테르가 작곡한 ‘카츄사’에서 트레이드 마크인 활기찬 음성에 어우러진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줬다. 전쟁터로 나간 애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여인의 간절한 소망을 특급 제스처까지 곁들여 노래했다. 신작 가곡 ‘꽃피는 날(정환호 시·곡)’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모진 풍파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난 꽃을 묘사하면서 젊은이들에게 꿈을 잃지 말라는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이효섭

▲테너 이효섭이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노래하지 마오’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바람은 불어불어 청산을 가고 / 냇물은 흘러흘러 천리를 가네 / 냇물 따라 가고 싶은 나의 마음은 / 추억의 꽃잎을 타며 가는 내 마음 / 아 엷은 손수건에 얼룩이지고 / 찌들은 내마음 옷깃에 감추고 / 가는 삼월 / 발길마다 밟히는 너의 그림자" 테너 이효섭은 라흐마니노프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노래하지 마오’에 이어 이기철 시인의 세심한 언어에 김동환 작곡가의 묵직한 음이 빛나는 ‘그리운 마음’을 불렀다. 겉은 우직하지만 속은 여린 사내의 마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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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송정아가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여기 좋네요’를 부르고 있다. 피아노 반주는 문인영이 맡았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소프라노 송정아는 라흐마니노프의 ‘여기 좋네요’에 이어 홍사라 작곡가의 ‘팔복’을 노래했다. 이날 초연된 ‘팔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로 시작되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여덟 가지 복을 노랫말로 해 작곡된 작품이다.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송현지

▲소프라노 송현지가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의 ‘자강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내 땀의 한 방울도 날줄에 스며 / 그대 영혼 감싸기에 따뜻하거라 / 고즈너기 풀어감은 고통의 실꾸리 / 한평생 오가는 만남의 잉아 / 우리님 생각과 실실이 짜여 / 새벽바람 막아줄 실비단이거라 / 기다리마 기다리마 기다리마 / 하루에도 열두 번 끊기는 실이여 / 무작정 풀리기엔 무서운 맘이거든 / 단번에 끝내기엔 아쉬운 밤이거든 / 허천들린 사랑가 / 평생 동안 불러주마 / 기다리다 흘린 눈물 모조리 스며 /그대 아픔 덮어주는 비단길이거라" 소프라노 송현지는 차이콥스키의 ’자장가‘에 이어 ’베틀노래‘를 연주했다. ’베틀노래‘는 2009년 제1회 세일 한국가곡 콩쿠르 작곡부문 1위를 차지한 곡이다. 송현지는 고정희 시인의 절창과 이원주 작곡가의 애끓는 선율을 잘 담아냈다.

김수현

▲소프라노 김수현이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의 ‘한낮인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소프라노 김수현은 차이콥스키의 ‘한낮인가’를 부른 뒤 "고향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라는 뭉클한 가사의 ’고향의 노래(김재호 시·이수인 곡)‘를 연주했다.

이정식

▲바리톤 이정식이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프렌켈의 ‘백학’을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가곡 애호가 겸 아마추어 성악가인 바리톤 이정식(서울문화사 사장)도 수준급 솜씨를 보여줬다. 고현정과 최민수가 주역을 맡았던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음악으로 사용돼 인기를 끌었던 프렌켈의 ’백학‘을 들려준 뒤, 남북 화해 분위기에 맞물려 최근 더 자주 연주되는 ’그리운 금강산(한상억 시·최영섭 곡)‘을 멋지게 불렀다.

문인영

▲피아니스트 문인영이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김현정

▲피아니스트 김현정이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막심 므라비차의 ‘크로아티안 랩소디’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오동국

▲바리톤 오동국이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성악으로만 이루어진 공연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액센트를 주기 위해 피아노 연주도 펼쳐졌다. 문인영은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op.23 no.6, 2‘를, 김현정은 크로아티아 출신 막심 므라비차의 ’크로아티안 랩소디‘와 ’쿠바나‘를 연주했다. 두 사람은 열정적인 건반 터치는 찬바람을 저 멀리 밀어냈다. 또 문인영은 정영하와 번갈아 피아노 반주로 성악가들과 호흡을 맞췄다. 바리톤 오동국은 사회를 맡아 음악회를 매끄럽게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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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출연자들이 모두 나와 ‘오 거룩한 밤’을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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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계음악협회 제14회 정기연주회에서 출연자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출연자들은 피날레로 ‘오 거룩한 밤(O holy night)’을 합창했다. 노래가 끝났는데도 관객의 앙코르가 이어지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이어 부르며 2시간 30분의 공연을 마무리했다.

공연을 마친 뒤 정선화 세계음악협회 회장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이렇게 멋진 음악회를 선물할 수 있어 정말 뿌듯하다"라며 "새해에도 더 알토란 같은 공연으로 사랑받는 협회가 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동안 큰 도움을 줬던 이안삼 작곡가께서 몸이 편찮아 참석 못했다"며 "오늘 콘서트에는 선생님의 빠른 쾌유를 비는 마음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안삼 작품을 3곡 연주해 존경과 감사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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