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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찬 미래헌법연구소장 |
‘배드뱅크(Bad Bank)’라는 말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 흔히 IMF사태로 표현되는 외환위기 때부터였다.
당시 과도한 부실채권 때문에 여러 은행이 파산위기에 처했었고 은행의 줄파산을 막아야만 했던 정부로서는 ‘배드뱅크(Bad Bank)’라는 개념을 정책에 도입했었던 것이다.
즉 부실대출채권 때문에 파산위기에 몰린 은행을 구제하기 위하여 정부가 공적자금을 출자하여 설립한 ‘배드뱅크(Bad Bank)’로 하여금, 은행이 가지고 있는 부실대출채권의 대부분을 인수하게 해주면, ‘배드뱅크(Bad Bank)’에 부실채권을 모두 넘긴 은행은 오로지 우량채권만을 가지고 있게 되므로 당연히 정상화가 된다.
이렇게 정상화된 은행은 투자유치 등을 통하여 우량은행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배드뱅크는 경제상황이 나빠져 갑자기 부실채권이 늘어날 때 부실자산을 흡수해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를 막는 부실자산의 정화조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배드뱅크의 순기능 때문에 국가는 법률로서 배드뱅크에 여러 가지 특권과 특혜를 부여하고 있고, 채무자인 국민들 역시 자기들에 대한 채권이 노비문서처럼 팔려 다니는 수모를 당하거나 불필요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도 이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감내했던 것이다.
IMF 기간 동안 공기업인 자산관리공사(KAMCO)는 이런 역할을 나름대로 수행했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완전히 극복된 2009년에 돌연, 뜬금없이, 6개 시중은행이 수 조원의 돈을 투자하여 ‘민간 배드뱅크’를 설립했다.
공적자금의 지원을 받아 외환위기를 간신히 넘긴 이들이 공적 자금을 모구 상환하기도 전에 배드뱅크를 설립한 것은 어찌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중은행들이 배드뱅크를 설립한 이유는 정부가 배드뱅크를 설립했던 이유와는 정반대의 것이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효율적으로 ‘쓰자’고 배드뱅크를 사용했다면, 이들은 배드뱅크에게 부여된 특권을 통해 돈을 ‘벌자’고 하는 것이다.
이들이 아무리 금융 시스템상 민간 배드뱅크의 필요성을 역설해도 이들의 마음이 염불이 아닌 젯밥에 가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채무자들은 은행이 아니라 ‘유동화 회사’로부터 수모를 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배드뱅크는 급격하게 악화된 경제상황으로부터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금융시스템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여러 가지 특권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아닌 상황, 즉 부실채권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상황이 아니라, 돈벌이에 적당할 정도로만 부실채권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배드뱅크에게 부여된 여러 특권들은 대박사업의 보증수표가 된다.
그리고 당연히 이 민간 배드뱅크는 여러 특권에 힘입어 연간 적게는 수 백억원에서 많게는 수 천억원의 돈을 벌어들였다.
아울러 이 민간 배드뱅크의 사장 자리에 금감원 간부 출신의 인사가 9년째 앉아 있다는 사실은 배드뱅크의 돈벌이가 그들에게 부여된 특권에 기인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든다.
반면에 집을 날리고 회사를 빼앗긴 채무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자기들에 대한 채권이 노비문서처럼 팔려 다니는 수모를 견디며 불필요한 연체이자와 수수료의 짐까지 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민간 배드뱅크를 함부로 ‘적폐’로 몰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집 날리고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의 눈물을 생각한다면, 어떠한 공공성도 없이 일반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배드뱅크에 부여된 특권과 특혜가 지나치지는 않은지, 또 민간 배드뱅크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주의 깊게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