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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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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남아돈다”…재생에너지 모범국 스페인의 역설 [이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9.07 14:25

재생에너지 비중 60%…전기요금은 유럽 최저권
공급과잉에 마이너스 전력가격·투자 위축 부작용
정전·전력망 병목까지…“ESS 확충이 다음 과제”

EUROPE-WEATHER/BRITAIN

▲태양광 발전단지(사진=로이터/연합)


스페인이 유럽의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모범국으로 자리 잡았지만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전력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투자 수익성이 악화되는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대규모 정전 사태까지 겪으면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확대만으로는 에너지 전환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전력망 확충과 함께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투자가 청정에너지 전환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재 스페인 전력망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유럽연합(EU) 전체 평균인 약 50%, 전 세계 평균인 약 3분의 1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 같은 재생에너지 확대 덕분에 스페인의 전기요금도 크게 낮아졌다. 현재 전력 가격은 최근 중동 분쟁이 발생하기 전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보다도 낮은 수준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스페인이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자연환경이 큰 역할을 했다. 스페인은 풍력과 일조량이 풍부한 데다 에너지 프로젝트를 건설할 수 있는 넓은 유휴부지를 갖추고 있다. 수력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방대한 저수지망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청정에너지의 경제성까지 크게 개선되면서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은 2배 이상 늘었다.


호안 그로이자드 스페인 생태계전환부 에너지 담당 장관은 “스페인의 전력 구성은 어느 때보다 탈탄소화됐고 비용 경쟁력 역시 높아졌다"며 “과거 유럽에서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5개국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가정과 산업 모두에서 가장 저렴한 국가 중 하나가 됐다"고 설명했다.


◇ 너무 많이 만든 전기…가격 마이너스·투자 위축


그러나 최근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오히려 전력이 남아도는 문제가 커지고 있다.


스페인 전력망 운영사 레드 일렉트리카에 따르면 지난달 5일 스페인 태양광 발전량은 281.2기가와트시(GWh)로 하루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달까지 스페인 태양광 발전량은 7445GWh로 전년 동기 대비 27.5% 급증했다.


지난 15년간 태양광 투자가 급증한 영향이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 붐으로 전력 공급이 수요를 크게 웃돌면서 피크 시간대 전력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사례도 갈수록 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4일까지 스페인에서 전력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시간은 총 681시간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기록을 넘어선 수치다.


저렴한 전기요금은 소비자에게는 혜택이지만 발전사업자와 투자자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전력 공급이 과도하게 늘어나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발전소는 생산량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태양광 발전단지의 자산가치는 급락했고 투자자들은 매각을 모색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일부 개발업체는 아예 사업에서 철수하는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6월 최근 몇 달간 스페인에서 최소 4개의 태양광 프로젝트 또는 관련 기업이 매물로 나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파트리시오 알바레스 선임 애널리스트는 전력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지면 신규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뒷받침하는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격 신호 자체가 왜곡된다"며 “투자자들이 겁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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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28일 정전된 바르셀로나의 지역 라디오 방송사에 인파가 몰린 모습(사진=AFP/연합)

◇ 전력 넘쳐도 정전은 발생…재생에너지의 또 다른 역설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에 맞춰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페인은 지난해 4월 이베리아반도 전역을 덮친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었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5000만명 이상이 거의 반나절 동안 전력 공급을 받지 못했고 전자결제 시스템이 중단되면서 상점과 기업들도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정전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여러 예비 조사 결과에서는 당시 스페인 남부 태양광 발전단지에서 발생한 급격한 전력 주파수 변동을 전력망이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던 정황이 나타났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빠르게 늘어난 것과 달리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 투자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가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블룸버그NEF(BNEF)에 따르면 스페인의 전력망 투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0.3% 수준으로, 재생에너지 규모 대비 전력망 투자 비율은 EU 회원국과 영국 가운데 가장 낮다. 기존 전력망의 여유 용량도 부족해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은 물론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까지 전력망 접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언스트앤영(EY)의 스페인 에너지 부문을 이끄는 마르타 산체스 파트너는 전력망 부족은 투자를 늦추고 궁극적으로 기업들이 다른 국가로 이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2030년까지 전력망에 136억유로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부는 이를 통해 고압 송전망 용량을 대폭 늘리고 현재 중단된 약 70억유로 규모의 산업 프로젝트도 다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체스는 “전력망 용량 부족은 전력 수요 증가를 막는다"며 “수요가 증가하지 않으면 추가 재생에너지 보급도 제한된다"고 말했다.


◇ 해법은 ESS…스페인, 2030년 목표의 2%도 못 채워


이 같은 전력 공급 과잉과 변동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는 대규모 ESS가 꼽힌다.


ESS는 낮 시간대 넘쳐나는 태양광 전력을 저장했다가 밤에 다시 전력망으로 공급할 수 있다. 날씨 변화 등으로 발전량이 갑자기 줄어들 경우 저장된 전기를 즉시 방출해 전력망을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현재는 원전과 가스발전소가 이런 역할을 주로 담당하지만, ESS는 별도의 가동 준비시간 없이 즉각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스페인의 ESS 보급 속도가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BNEF에 따르면 스페인의 2025년 배터리 저장장치 설치 용량은 약 400메가와트(MW)에 그쳤다. 스페인이 2030년까지 확보하려는 목표치 22.5기가와트(GW)의 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BNEF는 2026년 스페인의 배터리 설치 용량이 3배 이상 늘어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보조금을 포함한 각종 프로그램에 약 20억유로를 투입했고 인허가 절차도 간소화했다.


그러나 규제 장벽이 해소되더라도 기술적인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알바레스 애널리스트는 하루 2~4시간 동안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대형 배터리는 비용 측면에서 가스발전과 경쟁할 수 있지만 장기간 전력을 저장하는 기술은 여전히 비용이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돈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기술 역시 그 수준까지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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