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추가 공습에 나서고 원유 판매 제재 면제까지 철회하면서 가까스로 유지되던 양국 간 종전 합의가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유가가 보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잠잠해지던 인플레이션 공포도 조금씩 커지는 모습이다.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동 지역에서 미군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는 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미군이 이란에 대한 일련의 강력한 공습을 시작했다"며 “이는 국제 해역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태운 상선을 겨냥한 공격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공습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상선 3척을 이란이 공격한 데 대한 대응"이라며 “이란의 공격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위험했고 휴전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 관계자는 이번 공습이 이란의 방공망과 해안 감시체계, 지대공미사일, 대함 순항미사일, 드론 발사시설 등을 겨냥했다고 밝혔다. 이란 매체들은 최대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에서 폭발음이 여러 차례 들렸고 “적의 발사체"에 따른 파편으로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미 재무부는 이란산 원유의 생산, 인도, 판매를 허용하기 위해 지난달 21일자로 발급했던 60일짜리 임시 일반면허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개방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제공했던 핵심 경제적 이익을 박탈하기로 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지난달 17일 양국이 체결한 종전 양해각서(MOU)를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전했다. 미국과 이란이 60일 안에 영구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진행 중이던 후속 협상도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에 대한 공격 중단과 이란산 원유 판매를 60일간 허용하는 조치는 MOU의 주요 내용에 속한다.
양측은 MOU 위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상선 공격이 휴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란을 배후로 지목했다. 이날 합동해상정보센터(JMIC)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위협 수준을 '심각'으로 다시 격상했다.
미국의 한 정부 관계자는 “이란이 합의에 따른 혜택을 누리려면 먼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다만 그는 양국 협상단이 최종 합의를 위해 여전히 성실하게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며 미국이 종전 협상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란은 미국의 공습과 원유 제재 면제 철회가 양국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무차관은 “단호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해협(사진=로이터/연합)
양국간 갈등 고조는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과 수출이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MOU 체결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고 미국이 이란산 원유 판매를 허용하자 글로벌 원유시장에서 공급 부족 우려가 완화됐고, 국제유가도 전쟁 이전 수준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다시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란이 고강도 대응에 나서거나 미국이 추가적인 조치에 나설 경우, 이미 전망이 밝지 않았던 양측의 후속 협상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60일간의 후속 협상에서 핵심 쟁점인 이란 비핵화가 짧은 기간 안에 타결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달 말에도 이란의 상선 공격에 대응해 미국이 이란 군사시설을 공습하고, 이란이 중동 내 미군 기지를 겨냥해 반격하는 일이 연이틀 이어졌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4월 말부터 하락세를 이어오던 국제유가도 반등하고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한국시간 기준 8일 오전 11시 40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75.85달러를 나타내고 있다. 브렌트유는 한때 배럴당 76.60달러까지 치솟으며 지난달 24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2일 기록된 저점(배럴당 70.14달러)과 비교하면 약 8% 상승한 수준이다.
유가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도 재차 커지고 있다. 최근 온스당 4200달러까지 반등했던 국제 금값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현재 4130달러 수준으로 밀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시장에서 연준이 이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전날 25.7%에서 현재 29.4%로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미국과 이란의 종전 후속 협상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반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라피단그룹의 밥 맥널리 대표는 “원유 제재 면제 철회는 휴전이 시장이 생각했던 것만큼 견고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안일한 시장에 경고하는 신호"라며 “시장도 다시 지정학적 위험을 가격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데이비드 셴커 연구원은 미국의 이번 조치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의 좌절감을 보여준다"며 “이란이 순순히 합의를 이행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전쟁은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우리는 합의를 이루거나 아니면 끝을 낼 것"이라며 “우리는 1시간 안에 이란의 교량을 무너뜨리고 에너지 공급망도 마비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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