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카타르 왕실로부터 받은 고급 보잉 747-8 항공기(사진=로이터/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영국 및 중국과 관세 협상을 체결하고 중동 국가들과는 대규모 경제·안보 패키지에 합의한 가운데 이러한 '빅딜'들이 성사된 배경엔 항공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과 계약 체결이 관세 협상에서 주요 의제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중동 순방 2번째 방문국인 카타르에서 2435억달러(약 340조원) 규모의 경제·안보 분야 계약을 체결했다. 미 백악관은 이번 계약을 통해 최소 1조2000억달러(약 1678조원) 가치의 경제 교류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6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및 수출 합의를 한 데 이어 걸프 지역 부국과 안보 지원 및 협력 대가로 거액의 '오일 머니'를 받는 '안보-경제 패키지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번 중동 국가들과 빅딜에 보잉 항공기를 구매하는 내용이 모두 포함됐다는 부분이다.
실제 카타르항공은 보잉 항공기 160여대를 주문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0억달러(약 280조원)가 넘는 정말 대단한, 기록적인 계약"이라며 “보잉에 축하를 보낸다"라고 말했다. 이어 “보잉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항공기 주문"이라며 “꽤 좋은 계약"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보잉은 전날 사우디의 글로벌 항공기 임대사 아비리스(Avilease)로부터 최대 30대의 항공기 수주 계약을 맺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잉 항공기는 최근 체결된 영국, 중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떠오른 의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 9일 타결된 미국과 영국의 무역협상의 일환으로 영국항공 모기업 IAG는 보잉으로부터 130억달러 규모의 보잉 787-10 항공기 32대를 주문했다.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에 강력히 반발한 중국은 보잉 항공기 인수 금지를 보복 카드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주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고위급 무역협상 끝에 미중이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기로 하자 중국 당국이 자국 항공사와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보잉이 제작한 항공기 인수를 재개할 수 있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각국과의 협상에서 보잉 항공기가 공동 의제로 떠오른 배경엔 보잉은 미국의 대표적 제조기업인 데다 우주항공은 미국이 전 세계에 막강한 군사·경제·안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미국과 영국의 무역 협상과 관련, “이번 합의에서 보잉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승리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항공기 광팬'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1년 중고로 매입한 개인 전용기 '트럼프 포스 원(보잉 757)'을 보유하고 있고 과거 한때 항공사 '트럼프 셔틀'을 설립해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지난 12일 백악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카타르 왕실로부터 보잉 747-8 기종으로 가격이 약 4억 달러(약 5598억원)에 달하는 이 항공기 선물을 받아 에어포스원으로 활용하겠다고 공식 확인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이런 종류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매우 비싼 항공기를 공짜로 받길 원치 않는다'고 말하면 나는 멍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관세 협상 등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호의를 얻으려면 항공기를 활용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조지 퍼거슨 항공 애널리스트는 “보잉은 미국 최대 수출업체이며 미국은 우주항공 분야를 통해 경쟁적 우위를 갖고 있다"며 “국가들과 수많은 관세 협상에서 보잉 항공기 구매가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이 협상 우선순위에 밀린 듯한 모양새가 나오는 배경 중 하나가 항공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일본은 수십년 간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거의 독점적으로 보잉으로부터 항공기를 구매해 왔다"며 “에어버스는 최근에야 일본에서 더 큰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