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센스의 116인치 RGB 미니 LED TV. 사진 = 하이센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TV 업계가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지난해 처음으로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중국 업체에 내준 데 이어, 그동안 '최후의 방어선'으로 여겨온 프리미엄 시장마저 위협받고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의 전략을 펼쳐온 한국 기업에 비해, 미니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본격화되면서 주도권이 뒤바뀔 가능성도 제기된다.
◇ OLED vs 미니 LED, 프리미엄 시장 주도권 경쟁 본격화
7일 업계에 따르면 프리미엄 TV 시장은 일반적으로 OLED, 퀀텀닷 액정표시장치(QD-LCD), 미니 LED 등 고급 패널 기술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OLED TV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OLED TV 라인업을 42형부터 83형까지로 대폭 확장하며, 'SF95', 'SF90', 'SF85' 등 총 14개 모델을 선보였다. 지난달 개최된 '언박스 & 디스커버 2025' 행사에서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은 “OLED 라인업을 소형부터 대형까지 다양화했으며, 향후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전자 역시 12년 연속 글로벌 OLED TV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는 '올레드 에보' 시리즈(M5·G5·C5)와 일반형(B5)을 통해 42형부터 97형까지 업계 최다 크기 옵션을 제공한다. LG는 유럽 8개국을 포함한 전 세계 20여개국에 OLED 신제품을 선출시했으며, 이를 150개국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반면 중국 업체들은 프리미엄 시장에서 미니 LED 기술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TCL은 지난 2019년 세계 최초로 미니 LED TV를 상용화한 이후, 빠른 속도로 제품군을 확장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하이센스 역시 CES 2025에서 인공지능(AI) 기반 미니 LED TV 신제품을 공개하며 기술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 미니 LED, OLED보다 빠른 성장…가격·기술 격차 좁히는 中
이처럼 국내 업체와 중국 제조사 간 프리미엄 TV 경쟁은 OLED와 미니 LED 중심으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주도해온 OLED TV는 출하량 성장세가 상대적으로 둔화되고 있어, 프리미엄 시장 주도권을 중국 제조사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미니 LED TV 출하량은 전년 대비 50% 증가한 1156만대로 예상된다. 반면 OLED TV 출하량은 679만대로, 전년 대비 7.1%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OLED의 출하량은 당분간 600만~700만대 수준에서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격차는 '가격 경쟁력'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니 LED TV는 LCD 백라이트에 100~20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LED를 촘촘하게 배치해 명암비를 개선한 LCD 기반 TV다. 패널 구조상 OLED 대비 생산단가가 낮고, 성능 역시 빠르게 개선되고 있어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화질 TV를 원하는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전 세계 55인치 미니 LED TV 평균 가격은 901달러로, 동일 크기의 OLED TV(1317달러)보다 400달러 이상 저렴했다.
트렌드포스는 보고서를 통해 “OLED TV는 미니 LED LCD TV 대비 소매가가 높고, 패널 생산 능력도 제한적"이라며 “중장기적으로 OLED TV는 경쟁 심화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들은 기술력 강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하이센스가 CES 2025에서 선보인 116인치 'RGB 미니 LED TV'는 주목을 받았다. 이 제품은 기존의 백색 LED 방식이 아닌 빨강(R)·초록(G)·파랑(B) LED가 직접 발광하는 구조로, 보다 정확하고 선명한 색상 표현이 가능하다.
◇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도 흔들…韓, 中의 추격에 위기감 고조
프리미엄 TV 시장은 중국 제조사들의 공세 속에서도 국내 업체들이 비교적 우위를 유지해온 마지막 보루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TCL, 하이센스, 샤오미 등 중국 제조사의 지난해 출하량 기준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 점유율은 31.2%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합산 점유율(28.4%)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대형 화면 수요가 증가하면서 초대형 TV 시장을 선점한 중국 업체들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대응해 삼성과 LG는 OLED 중심의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미니 LED TV의 빠른 성장세로 인해 주도권 변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합산 점유율은 48%로, 전년 동기 대비 19%p 하락했다. 같은 기간 하이센스와 TCL 등 중국 업체의 점유율은 22%에서 36%로 상승하며, 양측 간 격차는 45%p에서 12%p로 급격히 좁혀졌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TV 제조사들이 그동안 한국이 주도하던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며 “특히 미니 LED가 OLED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은 삼성과 LG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