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3일(월)



[EE칼럼] 소형모듈원자로 사업화는 민간기업 중심으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2.12 11:47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 전 한국원자력학회장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 전 한국원자력학회장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 전 한국원자력학회장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대응수단으로서의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한 관심이 높다. 원자력 선진국들이 모두 SMR 개발에 뛰어들었고,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이미 여러 기가 운영 또는 건설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도 2010년대에 개발된 SMART의 해외 수출을 모색하는 한편으로 경제성, 안전성, 운전편의성 등을 더욱 강화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i-SMR 개발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총 3992억원(국고 2747억원 포함) 규모의 사업으로, 2028년까지 설계개발과 검증 및 규제기관 인증(표준설계인가)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해상용 용융염원자로를 비롯한 다른 원자로형 개발은 물론 민간기업과 외국 SMR 개발업체와의 협력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과 공기업 중심의 기술개발 및 사업화를 통해 대형원전 기술의 독립과 선진화를 이루고, 국내 건설과 해외 수출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왔다. 공기업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국책연구기관과 대학이 기술개발과 검증을 지원하고 민간기업이 설비 공급과 건설에 참여하는 국내 원자력 산업체계의 경쟁력은 국내외 대형원전 사업을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 현재 i-SMR 개발도 공기업과 국책연구소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민간의 관심이 높고 다양한 전문기술의 도입도 필요해 40여 민간기업이 분담금을 부담하며 참여하고 있다.


개발되는 i-SMR의 사업화에는 민간기업의 역할이 훨씬 더 커져야 한다는 데에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i-SMR 최초호기 국내 건설 사업을 공기업 중심으로 민간기업이 적극 참여하는 형태로 신속하게 착수해야 한다. 둘째, 본격적인 국내외 건설에서는 민간기업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국가 차원의 원전기술 개발 역량은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중요한 이유를 좀더 살펴본다.


최초호기의 신속한 국내 건설 필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최대 쾌거인 APR1400형 원전 4기의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은 같은 노형인 신고리 3·4호기(현 새울 1·2호기) 국내 건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에 세계 최초로 규제기관 인증을 획득한 SMART 원자로의 해외 수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국내 건설계획이 없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i-SMR은 새롭게 도입되는 모듈형 원자로이므로 정부, 공기업, 민간기업이 협력하여 위험을 분담하면서 성능을 실증하고, 향후 본격적인 상용화에 필요한 상세설계, 제작·건설, 운영기술 등을 완성할 필요가 있다. 민간 대기업들은 최초호기 건설사업에 참여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스스로 사업을 주도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간 주도 사업화가 중요한 첫째 이유는 SMR의 이용 분야와 운영 방식이 매우 다양하여 소수의 공기업 중심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철, 반도체, 화학 분야의 에너지 다소비 대기업군은 주도적으로 SMR을 건설·운영하면서 필요한 전력이나 열을 공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폐쇄될 화력발전소를 대체하여 기존 발전공기업이 민간기업과 협력하여 SMR을 건설·운영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숨어있는 외국 시장을 개척하는 데도 민간기업이 더욱 유리할 것이다. 민간 대기업들은 과거 올림픽이나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지금은 세계적 영향력이 더 크다. 물론 한수원은 대형 원전 국내 건설·운영 및 수출사업을 계속하면서, i-SMR 최초호기를 포함하여 국내외 i-SMR 건설사업을 계속해야 한다. 즉, i-SMR 사업화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양날개 전략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전 기술개발역량 유지·강화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기적적으로 구축한 원전 개발 및 설계·건설 사업체계는 자유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으며, i-SMR 개발사업의 성공을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SMR의 개발과 사업화에서 민간기업의 역할이 확대하더라도 국가적인 기술개발역량의 약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투자자본이 지배한 웨스팅하우스의 사례나 프랑스, 영국, 미국 등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배경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민간기업이 i-SMR 사업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제도적 측면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SMR이 안전성과 운전유연성 등의 장점을 살리면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전력시장 제도와 안전규제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여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전력수급기본계획에 i-SMR 건설을 반영하고, 이를 위한 추진 일정 및 체계 등에 대한 논의를 조속히 착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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